빛바랜 건물사이로 책을 펴든 소녀상이 외롭다. 운동장 한편에는 등나무가 주렁주렁 꽃단장을 하고 먼지 쌓여 사위어가는 나무의자에 그늘을 드리웠다. 운치 있게 어우러진 등나무의 파란 잎은 자줏빛 꽃무늬를 수놓은 여인의 치마폭과도 같고, 늘씬하게 뻗어 오른 밑둥치는 치마 밑으로 살짝 드러난 팔등신의 각선미를 보는 듯하다. 폐교 된 어느 시골학교 교정의 고즈넉한 전경이다. 등나무 아래 앉아 사방을 둘러보니 저만치 담 너머에서 우거진 칡덩굴이 산들바람에 나탈대며 살근거린다. 순간 저 칡덩굴이 금방이라도 담을 넘어 등나무와 뒤얽힐 것만 같은 환상에 젖었다. 일이 뒤얽히어 풀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는 갈등(葛藤)의 어원이 칡과 등나무이기 때문이다. 칡과 등나무는 모두 콩과의 덩굴식물들이다. 칡은 팔월에 자주색 꽃이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