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365

갈 등[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빛바랜 건물사이로 책을 펴든 소녀상이 외롭다. 운동장 한편에는 등나무가 주렁주렁 꽃단장을 하고 먼지 쌓여 사위어가는 나무의자에 그늘을 드리웠다. 운치 있게 어우러진 등나무의 파란 잎은 자줏빛 꽃무늬를 수놓은 여인의 치마폭과도 같고, 늘씬하게 뻗어 오른 밑둥치는 치마 밑으로 살짝 드러난 팔등신의 각선미를 보는 듯하다. 폐교 된 어느 시골학교 교정의 고즈넉한 전경이다. 등나무 아래 앉아 사방을 둘러보니 저만치 담 너머에서 우거진 칡덩굴이 산들바람에 나탈대며 살근거린다. 순간 저 칡덩굴이 금방이라도 담을 넘어 등나무와 뒤얽힐 것만 같은 환상에 젖었다. 일이 뒤얽히어 풀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는 갈등(葛藤)의 어원이 칡과 등나무이기 때문이다. 칡과 등나무는 모두 콩과의 덩굴식물들이다. 칡은 팔월에 자주색 꽃이 피..

칼럼 및 논설 2021.06.17

‘기다림’이라는 이름으로[미래교육신문 조기호시인]

마침내 그리움이 온 몸으로 매달리는 것은 기다림이다. 날개를 펼치며 날개깃에 닿는 바람이 당신을 그곳으로 데려갈 것이라 믿는 기다림이란 아직도 당신이 띄울 수백의, 아니 수천수만 통의 편지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애처롭게 등불을 들고 문 밖에서 서성이지 마라 밤하늘을 가리키며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고도 말하지 마라. 언덕에 서서 제 그림자 하나 거꾸로 매달고 살아가는 나무처럼 다만 기다리라 구름 속에서 홀연히 꽃을 피우는 눈송이처럼 당신의 가슴을 흔드는 눈물겨운 이야기들이 내려앉을 때까지 그리하여 기쁨을 위해 당신이 참아왔던 모든 것들이 따뜻한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 때 까지 슬퍼하지 마라, 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는 날들이 다 사랑이다. -------------------- 【시작메모】 --------------..

칼럼 및 논설 2021.06.17

등나무꽃[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가]

김 미 비 갠 후 산책로 따라 걸었다. 푸른 나뭇잎 사이로 청잣빛 하늘이 언뜻언뜻 보였다. 길가의 짙어가는 푸른 잎들이 씻은 얼굴처럼 싱그러웠다. 호젓한 자드락길로 접어드니 휘파람새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 따라 귀를 쫑긋 세워서, 눈을 씻고 찾아보았다. 작고 가벼운 새는 연녹색 감나무 우듬지에 마치 한 떨기 꽃처럼 앉아있었다. 입김으로 불어보고 싶을 만큼 작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5월의 숲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향긋한 냄새에 빠져들게 했다. 터널 같은 등나무 꽃그늘에 닿았다. 벚꽃이 지고 붉은 장미 덩굴이 새잎을 내밀 때 등나무도 꽃과 잎을 피워냈다. 등나무꽃은 아래를 향해 수줍게 늘어뜨린 연보랏빛 꽃 타래였다. 그 꽃은 마치 폭포수가 내리는 것처럼 송이송이 아래로 향해 피었다. 골바람에 연보랏빛 등..

칼럼 및 논설 2021.06.17

출세의 지향주의와 교육의 변질[미래교육신문 김수기논설]

논설위원 김수기 출세에 대한 욕망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들이 추구하는 열망의 추구였다. 벼슬이나 재물 또는 기술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명예를 얻는 이른바 출세의 범위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 지금까지 동서고금을 통해 엄존했다. 그런데 긴 시간을 두고 그 출세의 길이 변하지 않고 한결같이 일관하고 있다는데 오묘한 이치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출세의 바로미터가 학식이나 학력을 전제로 한 지식의 측정을 경쟁을 통한 비교와 차별화에 두고 제비뽑기식 달리기 경주를 방불하는 비교우위의 방법이 변하지 않고 존속되어왔다는데 출세의 방법이 일관된 특이점이다. 과거제도는 물론이고 지금의 사법고시나 고위 공직자의 임용고시에서 일류 기업의 신입사원 체용시험은 고사하고 모든 사안이 머릿속에 든 지식을 점수화하여 ..

칼럼 및 논설 2021.05.13

정의란 무엇인가?[미래교육신문 최성광기고]

최성광(광주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교육학 박사) 정의란 무엇인가? 10여 년 전 하버드대 마이클 샌들 교수가 펴낸 책이 우리 사회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정권을 비롯해 우리 사회 전반에 불공정과 부도덕한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면서 국민 다수가 정의로움에 대해 고찰하던 시기였다. 최순실을 비롯한 권력의 주변에서 발생한 비리와 편법이 극에 달하고 급기야 국정농단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촛불을 들어 정권을 바꾸게 되었다. 당시 국민들이 바라던 것은 정의가 바로 서고 편법이 사라지는 상식적인 세상, ‘나라다운 나라’였다. 그렇게 국민들은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정권을 바꾸었다. 그 후 4년이 지난 지금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은 ‘정의롭다는 착각’으로 바뀌어 있다. 국민들은 불공정과 불평등을 없애고자 정권을 ..

칼럼 및 논설 2021.05.13

대문보다 정낭이었으면[미래교육신문 박철한 수필]

박 철 한 제주도 성읍민속마을에 들어섰다. 제주의 민속마을이라면 의례 바다와 관련된 어민들의 생활이 연상될지 모르나 성읍민속마을은 그것과는 다르다. 해발 350미터의 내륙에 위치한 마을로서 바다와는 거리가 멀고 주민들이 말과 돼지를 키우고 밭농사를 지으며 실제 거주하는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입구에서 ‘촘’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화산지형인 제주는 육지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리지만 빗물이 하천으로 흘러들기보다는 내리자마자 땅속으로 스며드는 특성이 있다. 촘이란 나무 옆에 항아리를 놓아 빗물을 받기 위한 장치를 말한다. 그런데 그 장치가 매우 과학적이다.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띠로 댕기를 따서 머리부분을 나무줄기에 묶고 끝을 항아리 안으로 넣어둔다. 비가 내리면 빗물이 나무줄기를 타고 내리다가 띠 댕기를 ..

칼럼 및 논설 2021.05.13

오징어[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가]

김 미 비릿한 듯 달큼하고 고소한 냄새가 코를 벌름거리게 한다. 냄새만으로도 온 기가 열린다. 구미가 당겨 순간에 손이 간다. 뜨끈함이 손끝에서 온몸으로 전해진다. 집게와 엄지손가락에 힘을 모아 양 손가락으로 푹푹 찢어 본다. 사람들은 지나친 아부성 발언에 불에 구운 오징어처럼 온몸이 오그라든다고 표현하곤 한다. 부실한 치아를 망각한 채 고무 같은 질감의 오징어 한 가닥을 입안에 넣는다. 예전의 맛이 되살아나 만족스럽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상갓집에 다녀올 때 상 위의 음식들을 손수건에 싸서 주머니 안에 넣어 왔다. 손수건을 펼치면 생선전이며 떡, 쌀강정이 뒤엉켜 들어있었다. 그중에 제일 먼저 손이 가는 것은 도막도막 찢어진 오징어였다. 할머니는 내 손안에 얼른 밀어주었다. 집안에 보관하고 먹을 만큼 ..

칼럼 및 논설 2021.05.13

구부러진 길[미래교육신문 조기호 시]

구부러진 길 조기호 ​ 나는 너의 몸부림을 알지 못한다, 머무를 곳 없는 나그네처럼 술에 취한 그림자처럼 한 그루 나무도 없는 길을 홀로 떠돌며 비틀비틀, 그러나 쓰러지지 않기 위해 종일 팔과 다리를 흔들어야 하는 안간힘에 대해서도 땡볕에 이마를 데거나 비바람에 눈이 찔리거나 그러다 때로는 폭설 속에서 다리를 잃고서도 외진 세상의 모퉁이를 굽이돌며 숲과 들과 계곡과 벼랑을 오르내리는 지극히 몽매한 걸음과 무던한 희망에 대해서도 붉은 꿈과 검푸른 상상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떠나왔을 한 무리의 시간時間들이 뿌옇게 주저앉는 지친 먼지들을 짊어질 때 아득한 길, 이 서러움 올연한 언덕에서 꿈틀꿈틀 오래도록 참아왔던 눈물이란 대체 왜 이렇게 민망하고 부끄러운 것이냐 그러나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낯선 황혼을 따라..

칼럼 및 논설 2021.05.13

장재성 의원 교육시설 부실방지 제도 마련[미래교육신문]

장재성 의원이 교육시설 부실공사 방지 제도화를 마련했다. 광주시의회 장재성 의원(더불어민주당, 서구1)이 대표 발의한 ‘광주시교육청 건설공사 부실방지 조례안’이 최근 해당 상임위 교육문화위원회에서 심사를 통과했다. 학교 신설 등 건설공사 과정이 부실하게 이루어진다면 학생과 교직원들이 안전사고에 노출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 발의한 조례안은 ▲건설공사 부실방지 시책 ▲부실공사 신고·접수 ▲신고인 보호 ▲부실공사방지위원회 설치 등의 사항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 장 의원은 “학교 교육현장에서 진행되는 각종 건설공사 시행의 적정성을 기하고 건설공사의 품질과 안전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건설공사의 부실시공을 방지해 안전한 교육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본 조례안을 발의하게 됐다”고..

칼럼 및 논설 2021.05.13

건강 비결의 첫 번째는 운동[미래교육신문 김원식기고]

전 올림픽 국가대표 마라토너, 스포츠해설가 김원식 건강 비결의 첫 번째는 운동 서양 속담에 ‘두 다리가 의사다’라는 말이 있다. 불로초를 먹었던 진시황제보다 그 불로초를 찾으러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신하가 더 오래 살았고, 매일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그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의 뼈가 더 튼튼하여 장수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운동의 중요성을 풍자한 말이다. 현대인의 생활에서 스포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굳이 계량지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단연 으뜸이다. 스포츠는 개인의 건강 유지와 여가생활로서도 중요하지만, 국력의 상징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느닷없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마라톤도 ‘비대면 대회’로 치러지는가 하면 지난해 도쿄에서 열리기로 했던 올림픽까지 연기될 정도다. 이에 따라 코로나 2년차..

칼럼 및 논설 2021.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