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대문보다 정낭이었으면[미래교육신문 박철한 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1. 5. 13. 19:24

  

                                                                            박 철 한

제주도 성읍민속마을에 들어섰다. 제주의 민속마을이라면 의례 바다와 관련된 어민들의 생활이 연상될지 모르나 성읍민속마을은 그것과는 다르다. 해발 350미터의 내륙에 위치한 마을로서 바다와는 거리가 멀고 주민들이 말과 돼지를 키우고 밭농사를 지으며 실제 거주하는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입구에서 ‘촘’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화산지형인 제주는 육지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리지만 빗물이 하천으로 흘러들기보다는 내리자마자 땅속으로 스며드는 특성이 있다. 촘이란 나무 옆에 항아리를 놓아 빗물을 받기 위한 장치를 말한다. 그런데 그 장치가 매우 과학적이다.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띠로 댕기를 따서 머리부분을 나무줄기에 묶고 끝을 항아리 안으로 넣어둔다. 비가 내리면 빗물이 나무줄기를 타고 내리다가 띠 댕기를 통과하며 걸러지고 깨끗한 물만 항아리에 고인단다. 띠 댕기를 따지 않고 한 줌 가량 그냥 묶어 설치하면 물이 직선으로 뻗은 띠를 타고 거침없이 흘러내리겠지만 이물질이 걸러지지 않으리라. 그러나 세 갈래로 이리저리 꼬인 댕기를 통과하려니 자연히 걸러지게 되는 것이다. 촘이 과학적이라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변질될 우려가 있으므로 항아리에 개구리를 넣어둔다고 한다. 항아리의 개구리가 헤엄을 치면 물이 흔들리니 산소가 공급되어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이 귀한 산간지역에서 빗물을 유용하게 이용했던 선인들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의 안내자를 따라가자 지붕을 새끼줄로 촘촘히 엮은 나지막한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자리하였다. 낮은 지붕과 촘촘히 엮인 새끼줄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지역임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초가지붕 재료가 볏짚이 아니라 산이나 들에 자생하는 띠로 되어있다. 제주도의 논이라야 서귀포 일부지역에만 조금 있을 뿐이고 다른 지역은 볏짚이 있을 리 없으니 이해가 간다. 지붕은 모두 왼새끼로 엮어져 있었는데 왼새끼가 악귀를 쫓는다는 민간신앙 때문인 듯하다.

제주 전통가옥의 특이점은 ㄷ자 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육지의 ㄷ자 집은 글자모형 그대로 연결되어 있으나 제주의 ㄷ자 집은 바람이 안쪽으로 불더라도 통과하도록 모서리가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열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려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굴뚝이 없다는 점이다. 그 유래를 찾으려면 제주도가 몽고족의 침입을 받았던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단다.

13세기 고려는 7차에 걸쳐 몽고의 침입을 받았는데 그 영향은 컸다. 무엇보다 이후 80여 년 동안 원의 간섭을 받으면서 자주성을 크게 침해당하고 부마국으로 전락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문화재 손실은 물론 공물의 수탈로 국토는 거의 황폐하였다. 특히 대몽항쟁으로 유명한 삼별초군의 후기 활동무대였던 제주도에는 탐라총관부가 설치되어 몽고의 직접지배를 받게 되었다. 당시 몽고족들은 제주도를 유린하고 마을을 습격하여 젊은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끌고 갔다. 주민들은 몽고족에게 마을의 존재가 들어나지 않게 숨겨야 했고 그러자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굴뚝에서 나는 연기였다. 예로부터 연기는 나라의 변란 등을 알리는 봉화수단으로 이용될 정도로 멀리서도 잘 보이는 특성이니 당연하지 않았으랴. 그때부터 몽고족이 찾지 못한 산간마을을 중심으로 굴뚝을 없앴다는데 집안의 연기가 잘 빠지지 않다보니 집에 그을음이 많이 낄 수밖에 없는 구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조가 지금껏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집에 그을음이 생기면 페인트처럼 보호막 역할을 하여 보다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전통을 보전한답시고 제주 전통가옥에 굴뚝이 없다하여 계속 그런 집을 지을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연기 때문에 생활이 불편하다면 전통가옥이라도 굴뚝을 세우는 것이 옳지 않으랴.

대문 대신 여기저기 눈에 띠는 한림민속마을의 정낭이 정겹기만 하다. 육지의 대문과 비슷한 의미의 시설물이 제주의 정낭이다. 정낭은 원래 야외에서 방목 중인 가축이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집 입구에 나무막대 서너 개를 걸쳐두었던 데서 유래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다른 사람들에게 집주인의 행방을 알려주는 의미로 활용되었다 한다. 집에 사람이 있으면 3개를 모두 내려놓고 1개가 걸쳐있으면 집안에는 없으나 가까운 곳에 있으니 금방 돌아온다는 의미요, 2개가 걸쳐있으면 조금 먼 곳에 나가 있으나 그날 중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이며 3개가 모두 가로질러 있으면 하루 이상 걸릴 만큼 멀리 나가있다는 의미란다. 이처럼 해학과 정감이 넘치며 멋스러운 집 초입 시설물은 이 세상에 다시없으리라.

바람, 돌, 여자가 많아 삼다도요, 대문, 도둑, 거지가 없어 삼무도라더니 제주시골마을에도 이제는 정낭이 있어야 할 자리에 덩그러니 서 있는 대문이 늘어만 간다. 현대식 주택이어서 당연하다 할지 모르지만 시대가 변했다고 제주에서 정낭이 아닌 대문을 보니 왠지 허전하고 삭막하기도 하다. 현대식 주택이라도 제주의 대문들만큼은 모두 정낭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본다. 도둑이 없는 곳이라는데 대문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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