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구부러진 길[미래교육신문 조기호 시]

교육정책연구소 2021. 5. 13. 19:04

구부러진 길

조기호

 

너의 몸부림을 알지 못한다,

 

머무를 곳 없는 나그네처럼

술에 취한 그림자처럼

한 그루 나무도 없는 길을 홀로 떠돌며

비틀비틀, 그러나 쓰러지지 않기 위해

종일 팔과 다리를 흔들어야 하는

안간힘에 대해서도

 

땡볕에 이마를 데거나

비바람에 눈이 찔리거나

그러다 때로는 폭설 속에서 다리를 잃고서도

외진 세상의 모퉁이를 굽이돌며

숲과 들과 계곡과 벼랑을 오르내리는

지극히 몽매한 걸음과

무던한 희망에 대해서도

 

붉은 꿈과 검푸른 상상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떠나왔을

한 무리의 시간時間들이

뿌옇게 주저앉는 지친 먼지들을 짊어질 때

아득한 길, 이 서러움 올연한 언덕에서

꿈틀꿈틀 오래도록 참아왔던 눈물이란

대체 왜 이렇게 민망하고 부끄러운 것이냐

 

그러나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낯선 황혼을 따라

한없이 구부러진 길을 걸어야 하는

삶의 여정이란

그럼에도 끝이 있으리라는 끊임없는 긍정과

길에 대한 곧은 믿음 때문은 아니었겠느냐

 

바라건대, 나는 감히

너의 몸부림을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 【시작메모】 ----------------------------------

길을 하나의 통로이다. 어딘가로 가야하는, 무엇인가를 구해야 하는,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길. 그런데 그 길이 쉽지 않아서 사람들은 늘 갈망한다. 보다 쉽고 편안하고 안전하고 빠른 길, 그 첩경(捷徑)에 대한 동경이란 누구나의 꿈일 것이다. 한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시골길을 걸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슬그머니 산기슭을 빠져나와 곧게 펼쳐진 들길을 금방 질러갈 수 있는 지름길을 만나는 일이란 얼마나 놀라운 횡재수였던가.

하지만 삶이 그렇게만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불운한 일이라기보다 어쩌면 감사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문득 어렸을 적 시골 할머니댁에 갈 때마다 꼬불꼬불 징그럽게(?) 구부러진 길을 돌아가면서 내게 해주시던 아버지의 말이 떠오르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 길 조금만 더 가면 끝이란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저 끝에 할머니 집이 있단다. 다 왔으니 힘내자!”

비록 몸부림은 아닐지라도 아무런 수고도 없이 그곳으로 간다는 것, 아무런 애태움도 없이 너에게로 간다는 것, 그리고 아무런 외로움 없이 길의 끝에 선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만나고자 하는 길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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