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371

행복한 밥상[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며칠째 비가 이어진다. 조상 대대로 사는 동네에서 살다 보니 덤으로 덕을 보는 일이 많이 생긴다. 요즘은 노인 일자리로 점심을 마을회관에서 준비한다. 홀로 사는 어른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사람들은 점심을 하는 날은 마을회관으로 온다. 각자 놀이에 집중하던 닭들이 모이를 찾아 모여드는 모양새다.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정오가 되면 느린 걸음걸이로 마을회관에 모인다. 덕분에 일주일이면 세 번은 한 가족처럼 모여 식사하게 된다. 꼭 오래전에 살아오던 가족 같다. 식구들이 가족을 챙기듯 누군가는 매번 오던 사람이 오지 않으면, 모두가 무슨 일이 생긴 거냐며 궁금해한다. 함께 사는 아들 때문에, 병원에 있다니 모두 걱정한다. 나이 든 아들을 노모가 챙겨야 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이 더해진다.마을 회관에서는 꼭 지켜야 하..

칼럼 및 논설 2025.03.10

소나무 숲[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꼿꼿하고 정연(整然)한 바늘잎마다 한겨울에도 끄떡없는 기상(氣像)이 서렸다. 늘씬하게 뻗어 오른 허리 줄기와 짙푸른 잎들을 붙잡은 가지가 수줍은 새색시 얼굴빛처럼 불그레하다. 더불어 뿌리에 의존하고 버티며 위로 생명수(生命水)를 보내느라 애쓰는 밑둥치의 검붉고도 앙상한 외피에는 평생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며 세월에 그을린 노부모의 광대등걸만한 처연(悽然)함이 배어 있다.선친이 잠든 소나무 숲, 필자가 코흘리개였던 50여 년 전에 당신께서 헐벗은 땅을 사들이고 정성을 들여 지금은 낙락장송이 울창하게 된 곳이다. 그곳에 이드거니 서서 상큼한 솔향기에 취하며 그 땅을 사들인 일화를 되새겼다. 당시에는 아궁이에 나무를 태워 밥을 짓고 쇠죽이 끓던 가마솥 아래에서 장작불이 이글이글했으니 아침저녁이면 집집마다 피어오르..

칼럼 및 논설 2025.03.10

그녀의 이미지[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그녀는 읍내 거리에서 자주 보았다. 어쩐 일인지 내 눈에 자주 띄었다. 내가 차를 운전하고 갈 때는 바람 한 자락을 보듯 스쳤다. 혹시 길을 걷다가 그녀 모습이 보이면 나는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폈다. 그렇다고 그녀가 나와 연관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와 난 단 한 번의 인사를 나누거나, 말을 걸어본 적도 없었다. 그녀는 내가 소속되어 있는 모임이나, 지역 관련 단체에서도 본 적은 없었다.그녀는 나들이 다니기 좋은 날 작은 골목길이나 길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에서 보다는 후미진 곳에서 내 눈에 띄었다. 그럴 때 그녀의 눈빛은 사람에 대한 경계의 빛이 없었다. 눈, 코도 웃는 듯 벌렁거렸고, 입은 항상 반쯤 벌려져 있었다. 머리카락도 단정한 느낌보다는 ..

칼럼 및 논설 2025.02.10

이름[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중학교 1학년 때였으니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의 일이다. 담임선생님께서 여름방학 전날 종례시간에 “이명호! 네 이름이 ‘명호’가 아니라 ‘강문’이던데, 방학 끝나고 나올 때 이름표를 ‘이강문’으로 바꿔”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여 모두 어리둥절했다. 그러니까 1학기까지 ‘이명호’였던 교복의 이름표가 2학기부터 ‘이강문’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아마 호적에 ‘이강문’으로 올랐으나 이후 ‘이명호’로 개명하고도 그대로 두었으며 담임선생님께서 방학 전에 학생들의 호적을 들춰보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이유야 어떻건 급우들도 이후부터는 ‘강문’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다.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며 씁쓸한 까닭은 어린 학생의 인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던 담임선생님의 경직된 일처리 때문이다. 호적상의 이름이 ..

칼럼 및 논설 2025.02.10

친구의 농사법[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곁에 두고 있어 나는 그 친구의 얼굴만 봐도 마음이 환해진다. 그 친구의 주변은 이런저런 친구들이 갯벌의 고동처럼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웃음이 많아 주변 친구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가을 산에 떨어진 밤을 주워 담듯 담아 와 친구들 허허로운 가슴에 웃음으로 채워준다.우리들은 친구가 입을 열면 먼저 웃을 준비부터 한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였다. 쉬는 시간에 한 개비 남은 담배를 나눠 피우기 위해 수업 종이 울렸지만, 한 개비의 주인이랍시고, 친구가 먼저 화장실에서 빨다가, 다른 친구가 뒤이어 몇 모금을 빨았고, 마지막으로 친구의 차례인데 친구는 먼저 피웠던 친구들에게 야속함을 느꼈다고 했다. 몇 모금을 빨고 나니 손가락이 타들어 갈 ..

칼럼 및 논설 2024.12.09

온몸으로 먹어라[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동물들은 모두 삶에 필요한 영양소 대부분을 입으로 섭취하는 음식에서 얻는다. 그리고 깨어 활동하는 동안에 먹을 것을 확보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연히 인간도 예외일 수 없기에 ‘살기 힘들다’가 아닌 ‘먹고 살기 힘들다’라는 말이 자연스럽다.인체는 물,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무기 염류, 비타민 등의 영양소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음식섭취만으로 필요량을 충족하기가 매우 어렵고 햇빛(자외선)을 쐬어야만 피부에서 생성되는 영양소가 있으니 비타민D가 대표적이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만성피로, 골다공증, 심근경색 등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의 93%가 비타민D 결핍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그래서 비타민D 결핍 예방에 ..

칼럼 및 논설 2024.12.09

흑색점[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흑색점이다. 오른쪽 발바닥 새끼발가락에서 손가락 한 마디쯤 떨어진 곳이 걷는 데 불편했다. 언젠가는 한 번 확인하리라 마음먹었지만, 일과를 마무리하고 발을 씻고 나면 낮에 먹었던 생각은 사라졌다. 까맣게 잊었다. 그냥 몸이 편한 자세로 지내다가, 아침이 되면 일터로 뛰어다니기에 바빴다. 어느 날은 발바닥 상태가 심상치 않아, 양말을 벗고 확인하려고 몸부림을 쳤다. 검은 흑색점이 있었다. 심장이 ‘쿵!’ 소리가 날 만큼 겁이 났다. 사람이 어려운 일 다 치르고 살만하면 죽는다는 인생의 공식 같은 말이 나를 두려움 속에 가두었다.친밀하게 지내던 이웃이 발뒤꿈치에 녹두만 한 흑색점을 무시했다가, 수년간 시름시름 하며 병원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간혹 죽음이 어떤 신호처럼 발에 나타난 흑색점의 정체로 시작되는..

칼럼 및 논설 2024.11.11

소식과 건강장수[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닭이 먼저일까, 알이 먼저일까?’라는 논쟁에 시원한 답을 내놓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살려고 먹을까, 먹으려고 살까?”라는 문제를 논쟁거리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설령 그 논쟁이 벌어지더라도 먹는 것은 삶의 일부일 뿐이며 삶이 먹는 것의 일부일 수는 없기 때문에 “먹으려고 산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지 않으랴. 다만, 흔히 “먹고 산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인간의 욕구 중에서 먹는 욕구만큼 강한 것이 없고 우리의 삶에서 먹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데에는 반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미국의 과학자들이 ‘몸의 염증과 노화질환을 완화하고 오래 살려면 적게 먹어라’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단다. 그 요지는 이렇다. “과학자들이 보통 먹이를 준 생쥐와 칼로리를 ..

칼럼 및 논설 2024.11.11

만학도의 교실 풍경[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배울 기회를 놓친 고령의 학습자들과 수업을 하다 보니 참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다. 학습자들은 몸이 불편해 걷는 것도 힘들지만, 배움에 대한 열의만은 오뉴월 장작불보다 뜨겁다. 학습자들은 오로지 한글 공부만이 당신들이 인정하는 공부였다. 미술, 노래 수업은 공부가 아니다. 다음날 미술 수업이라 미리 알려 드리면 교실이 텅텅 비기까지 한다. 연간 계획된 수업이기에 중간에 취소가 어려워 진행이 되면, 왜 그런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느냐며 되레 호통을 친다. 학습자들은 공부에 포한 진 까닭에 그런가 싶기도 하다. 학습자들은 화장실에서 앉아 있는 시간도 아까워 쏜살 같이 뛰어온다. 온전하지 못한 걸음걸이로 급하게 서두르는 모습이 칠판 앞에서 서있는 내 눈에 훤히 다 보인다. “왜 위험하게 달려오는 데요.” 했더니..

칼럼 및 논설 2024.10.14

고라니의 눈망울[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마른장마가 이어지는 여름날에 농삿길을 걸으니 새파란 들녘에 생기가 넘친다. 엊그제 모내기를 한 것 같은데 어느새 새끼를 친 벼 포기가 토실토실한 것이 배동바지가 머지않은 듯하다. 예전 같으면 농부들이 만도리를 하느라 부산할 텐데 요샌 주로 우렁이를 넣어 잡초를 제거하니 그럴 필요가 없다. 저만치 논배미에는 두루미 예닐곱 마리가 한가로이 먹이 사냥을 하고 있다. 아마도 제초작업에 투입된 우렁이가 임무를 마치기도 전에 두루미에게 잡아먹히고 있으리라.농삿길을 따라 이어지는 폭이 3미터도 안돼 보이는 도랑에는 양쪽 둑이 다듬어진 돌과 콘크리트 수직 벽으로 말끔하게 단장되었다. 그런데 한참을 걷다 보니 고라니 한 마리가 그 도랑에 갇혀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수직의 양쪽 둑은 저 먼 곳까지 높이가 한..

칼럼 및 논설 2024.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