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점이다. 오른쪽 발바닥 새끼발가락에서 손가락 한 마디쯤 떨어진 곳이 걷는 데 불편했다. 언젠가는 한 번 확인하리라 마음먹었지만, 일과를 마무리하고 발을 씻고 나면 낮에 먹었던 생각은 사라졌다. 까맣게 잊었다. 그냥 몸이 편한 자세로 지내다가, 아침이 되면 일터로 뛰어다니기에 바빴다. 어느 날은 발바닥 상태가 심상치 않아, 양말을 벗고 확인하려고 몸부림을 쳤다. 검은 흑색점이 있었다. 심장이 ‘쿵!’ 소리가 날 만큼 겁이 났다. 사람이 어려운 일 다 치르고 살만하면 죽는다는 인생의 공식 같은 말이 나를 두려움 속에 가두었다.
친밀하게 지내던 이웃이 발뒤꿈치에 녹두만 한 흑색점을 무시했다가, 수년간 시름시름 하며 병원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간혹 죽음이 어떤 신호처럼 발에 나타난 흑색점의 정체로 시작되는 경우를 여럿 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몸에 나타나는 흑색점은 불행을 예고하는 신호쯤으로 여겼다. 아니, 사람을 저승길로 인도하기 위한 저승사자쯤으로 인식했다. 그런데 내 몸에 불시에 나타나는 ‘깨’씨처럼 작은 흑색점은 너도 이제 갈 길이 머지않았다, 쯤으로 받아들여졌다. 평온한 지대에 나타난 괴물 같은 존재의 공포심으로 모든 것이 불안하고 긴장감에 내 마음은 검은 막이 쳐졌다. 병원에는 가거나말거나 결과는 뻔한 것처럼, 나 혼자 북 치고 장구도 쳤다.
흑색점이 있는 발바닥은 힘이 없어지면서 다리까지 절뚝거렸다. 내 흑색점을 확인한 의사 선생님은 흑색점에 대한 여러 정황을 묻었다. 그는 사진을 찍더니 전공의에게 전송하며 내 안의 긴장감과는 다르게 아무 일로 아닌 듯 전화 상대와 길게 답을 늘려 뺐다.
그 상황에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괴물이 사라진 듯 다시 일상적인 평온이 찾아들었다. 일단은 약 처방전을 받았다. 병원 가기 전까지는 감나무 위에서 땅을 바라보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했다. 생각이 사라지고, 먹는 일도 멈춘 듯 오로지 흑색점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의 평온한 표정을 확인한 후, 감나무에서 땅에 발을 내디딘 듯 생활에 활기를 찾았다. 지성스럽게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면서 수시로 발바닥의 흑색점을 확인했다. 그 점은 눈으로 확인하기도 고약스러웠다. 흑색점을 보기 위해서는 발등을 뒤집어야 하는데 내 눈과 발바닥의 흑색점이 마주하는 일이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내 몸이지만, 이렇게 확인이 어려운 곳이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하는 것처럼 생경하기까지 했다. 결국 나는 내 몸에 대해서나, 세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사소하기 짝이 없겠구나! 하는 다소 겸손한 생각도 했다. 이제야 몸의 기능들이 활기를 되찾은 듯 하늘에 구름, 들판의 오곡들이 바람 끝에 흔들리는 모습까지 눈여겨 볼 수 있었다.
이제야 생각을 정리하자니, 발바닥에 흑색점이 생긴 시기는 언젠가 맨발 걷기가 불면증이 좋다는 말에 한동안 맨발 걷기를 했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이 최고의 좋은 장소이지만, 그곳까지 다니기에는 여건이 어려웠다. 그냥 인근 시멘트 길이지만, 안 하는 것보다야 더 좋겠지, 하는 마음에 열심히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맨발바닥을 무엇에 찌른 듯했다. 온몸이 오그라들 만큼 아찔한 통증이었다. 그 이후 맨발 걷기는 마침표를 찍었다. 한동안 걷기 불편했지만, 발바닥을 확인하기에 옹색해 그냥저냥 지냈다. 그러니까 발바닥이기에 남의 땅 보듯 무시한 것이 발병의 원인이었겠다, 싶어진다.
약 먹고 연고를 바르다 보니, 그 흑색점은 낮달이 바래듯 옅어졌다.
얼마 전 동아리 회원 중 한 사람이 내 신발을 신고 밖엘 나갔다 오더니, 이 신발 주인이 구냐며 내 신발을 깃발처럼 쳐들었다. 아니, 신발에서 냄새가 난다는 소리를 하려고 그럴까, 눈치를 살폈다. 손에 들려 있는 슬리퍼를 보니 하마처럼 둔해 보이는 데다 세척을 해 본 적이 까마득한 듯 말끔해 보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설마 많은 회원 앞에서 명색이 세상을 살 만큼 살아온 사람이, 그런 말을 하지 않겠지,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녀는 내 신발을 신는 순간 발바닥이 어찌나 아프던지 무슨 일이지,하며 이리저리 살피다 신발 바닥에서 나사못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발바닥이 아프지 않았냐고 물었다. 발바닥이 아프긴 아팠지만, 그냥 맨발 걷기로 얻은 후유증이라 여기며 참았다고 했다. 세상에 무딘 사람이 있냐며 신발 속에 나사못을 빼기 위해 뾰족한 것들은 다 동원했다. 너무 깊이 박혀 펜치가 필요했지만, 원래 손끝이 야무진 그녀는 몸부림을 치며 빼 주었다. 나는 너무 뜻밖에 상황이라 더러운 신발이라는 생각도 망각한 채 신발을 쳐들고 못 뺀 자리를, 귀금속을 살피듯 흔적을 더듬었다. 새끼손가락 길이의 나사못이 어떻게 신발 바닥에 박혔는지, 왜 나는 맨발 걷기 후유증이라 단정했는지, 여태껏 살아오며 내 방식만 고집하고, 남을 인정하기에 인색하고, 자기중심적인 독불장군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면 나와 관계를 맺고 살아온 가족, 이웃, 지인들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동안 잘살아 나왔던 집에서, 새로운 집으로 이사 한 듯 머릿속이 텅 빈 곳이 되었다. 나를 나라고 믿고 살아왔던 어제의 일들이 어쩌면 엉터리였나 싶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결국 내 발바닥에 흑색점은 나사못에 찔린 상처의 흔적임을 동아리 회원의 세심한 관심으로 밝혀졌다. 흑색점은 나를 다시 재정비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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