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만학도의 교실 풍경[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4. 10. 14. 09:57

김 미

배울 기회를 놓친 고령의 학습자들과 수업을 하다 보니 참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다. 학습자들은 몸이 불편해 걷는 것도 힘들지만, 배움에 대한 열의만은 오뉴월 장작불보다 뜨겁다. 학습자들은 오로지 한글 공부만이 당신들이 인정하는 공부였다. 미술, 노래 수업은 공부가 아니다. 다음날 미술 수업이라 미리 알려 드리면 교실이 텅텅 비기까지 한다. 연간 계획된 수업이기에 중간에 취소가 어려워 진행이 되면, 왜 그런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느냐며 되레 호통을 친다. 학습자들은 공부에 포한 진 까닭에 그런가 싶기도 하다. 학습자들은 화장실에서 앉아 있는 시간도 아까워 쏜살 같이 뛰어온다. 온전하지 못한 걸음걸이로 급하게 서두르는 모습이 칠판 앞에서 서있는 내 눈에 훤히 다 보인다. “왜 위험하게 달려오는 데요.” 했더니 그 사이 한 자라도 더 배워버릴까 싶다는 것이다. 그런 학습자들이 배움의 의지만큼 실력은 더디다는 것이 아쉽다. 알았던 내용도 당신들의 건강 상태에 따라 촛농 되어 흘러내린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겠다고 불을 밝히지만, 촛농은 그 열기에 흐물흐물 무너져 내린다. 학습자들의 배움에 대한 열의처럼 학습 효과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한다면 좋으련만. 똑같은 교제를 3번 반복해도 가르칠 때마다 새로워 한다. 점점 눈이 안 보여 칠판 글씨 보기를 힘들어 하신다. 그런 학습자들에게 앞 사람 머리는 칠판을 보는데 큰 장애물이다. 눈을 가리니 제발 머리 좀 한쪽으로 비키란다. 서로가 불편한 몸으로 앞 학습자는 그 소리에 몸을 한쪽으로 뒤틀고 있다. 옆구리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나무 같다. 그러면서도 이제 됐냐고 묻는다. 앞 사람은 머리라는 말만 나오면 상체를 이리저리 쓰러트린다. 뒤 학습자에게 죄인처럼 머리를 피해준다. 저렇다 못 하겠다 토라질까, 바라보는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앞 사람이 모자는 왜 쓰고 다니는 거냐며 모자를 기어이 벗게 만든다. 나는 자리를 바꾸면 어떻겠냐고 물으면 당신은 처음부터 이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거기다 몸의 기능이 더 떨어지게 되니 걷는 것도 힘들어한다. 지팡이를 짚으라고 하면 혼겁하신다. 아직은 지팡이까지 짚을 나이가 아니라며 지팡이 안 짚는 일을 자존심으로 여기고 있다. 지팡이는 90십은 넘어야 짚는 거란다. 모든 학습자의 태도는 아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전화 예절에서 대해 몇 번에 걸쳐 배운다. 그때 뿐. 수업 시간에 전화가 오면 주저함이 없이 수업을 중단해야 할 만큼 큰 목소리로 통화한다. 무소뿔처럼 당당하다. 밖으로 나가 받는 것은 어렵다. 우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태산을 움직이는 것만큼 복잡한 일이다. 한동안 함께 전화 내용을 들어야만 한다. 웃으면 함께 웃고 화를 내면 동공을 키운다. 학습자들은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상대가 전화를 길게 받으면 불평한다. 배움을 실천에 옮기는 일은 먼 남 이야기다. 그래도 그날 배운 내용을 받아쓰기 하는 일은 중대사다. 채점에서 온전한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평소에 쓰던 욕설까지 순간에 내뱉는다. 나는 못 들 척 자리를 지나치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입에 굳어 버린 말 습관이리라.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커는 것이 보통으로 눈치를 살펴야 하는 일이 아니다. 한쪽에서는 덥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추워 몸을 움츠리고 계신다. 어쩔 수 없이 조금한 담요를 준비해 둔다. 추워하는 학습자는 담요로 감싸드린다. 이 학습자는 93세다. 귀가 안 들려 함께 읽기를 할 때도 돌림 노래처럼 뒤따라오신다. 열심히 읽으시니 마무리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이분은 당신이 죽는 날까지 학교에 다니는 것이 소망이라고 하신다. 몸피가 차츰 작아지고 안색이 어두워지는 모습을 뵐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짝꿍이던 학습자는 학교에 다닌 지가 십 년이 넘었지만, 한 해만 더 빨리 와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겠냐고 늘 아쉬워했다. 저녁에도 잠을 못 이루고 송편 한 박스를 만들어 오는가 하면 찰밥을 몇 번에 걸쳐 해 왔다. 아니, 잠을 자야할 시간에 밤새워 몸을 움직이면 낮에는 얼마나 힘이 들까. 제발 안 먹어도 좋으니, 몸을 쉬어야 한다고 했다. 학습자는 막무가내였다. 일을 하고만 싶은데 어떻게 하느냐며 내게 묻는다. 학습자는 아이들 키울 때 너무 가난하게 살아온 덕에 이렇게 해서라도 나누고 싶다고 하신다.

그 학습자 바로 내 앞에서 수업 시간에는 꾸벅꾸벅 졸고 있다. 어떻게라도 잠을 재워야 했다. 책상 위에서 내려와 바닥에 등을 대고 편하게 누워 주무시라고 한다. 그런 학습자가 그 다음 주에 결석했기에 전화를 드렸더니 요양원으로 가셨단다. 무엇을 드시지 못해 혼자 집에 계실 수 없어, 그곳으로 모셨다니 돌멩이를 맞은 듯 가슴이 아팠다. 그 학습자의 빈자리가 크게만 느껴져 수업하는 내내 그곳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계실까. 이곳이 얼마나 오고 싶을까. 요양원에서 이곳을 그리워할 학습자의 쇠잔한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파왔다. 학습자들은 먼 과거의 일처럼 이젠 빈자리로만 보여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운다. 학습자들은 과거에 연연 하는 법도, 앞으로의 희망에 대해도 덤덤할 뿐이다.

한결같은 굽은 등에 파뿌리처럼 가는 머리카락, 옹이처럼 튀어나온 손가락, 걷는 모습은 한발 한발이 뒤틀린 문 같다.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이분들이 살아온 길은 아무리 성능 좋은 트럭도 도중 포기했을 만한 길이었다. 그러나 거침없이 헤쳐 나왔다. 어머니, 아내, 며느리라는 등짐은 그녀들을 용사로 만들었다. 어려운 사회적 여건 때문에 몸 하나에 의지해 견디며 지탱해 왔던 험난했던 길이었다. 그 과거는 몸에 흔적으로 고스란히 새겨졌고, 젊은 날의 기백은 전설처럼 아득해졌을 뿐이다. 다만 오늘에 충실한 학습자는 칠판에 적힌 글씨를 공책에 옮겨 쓰는 일만큼은 완벽하게 하고자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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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도의 교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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