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비빔밥[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4. 9. 10. 11:11

김 미

농번기에 마을에서 마을 공동체 식사를 신청했다. 마을 분들이 모두 좋아했다. 집에서 혼자 먹는 밥보다는 함께 어울려 먹는 밥이 훨씬 살로 가고, 사는 맛이 담겨 있다며 환영했다.

신청한 마을은 사정에 따라 인근 식당에 의뢰하기도 하고, 직접 마을 식구들이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우리 마을은 자체 해결로 합의했다. 마을 안에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혼자 먹는 밥은 대충하게 된다. 공동체 식사는 번거롭더라도 영양가와 맛을 고려해 실속 있게 하자고 했다. 다행히 주방에서 일손을 거드는 사람들은 마을 안에서는 70대 언니들이다. 막상 예정된 날 팔십 대 언니들도 해 먹던 가락이 있으니 더 일찍 주방 일을 거들었다.

주방 진두지휘는 왕년에 식당 운영 경력이 있던 언니가 맡게 되었다. 참여하는 모든 언니가 요리에는 이녁이 있는 사람들이라 불쑥불쑥 사공이 되었다. 산으로 갈까 걱정스러웠다. 요리를 하는 사람이 참견에 알았다며 인정하면 좋으련만 모르는 소리 말란다. 듣기에도 아슬아슬하다. 요리하는 일만큼은 남의 간섭을 받기 싫다는 눈치다. 말이 아니라, 바늘 같다. 말 한마디 뱉기까지 보통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벙어리가 되는 것이 돕는 일이다. 비빔밥을 준비하기로 했다. 콩나물, 고구마 순 나물 가지나물, 호박 나물, 무생채, 돼지고기볶음 식재료를 구입했다.

마을 회관으로 이동이 가능한 언니들의 행차 보행기가 줄을 이었다. 손에는 뭐라도 하나씩 들려 있다. 풋것이 열리면 꼭 들고 온다. 마늘을 까는 사람, 콩나물 다듬기, 무, 호박 채썰기는 전문 요리사보다 더 가늘게 칼질의 극치를 보인다. 그걸 보던 누군가 비빔밥에 넣는 호박은 더 살이 있게 채를 썰어야 한다며 가로막는다. 당신만의 창작품이라 여기며 칼질에 최선을 다하던 85세의 언니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팽이처럼 돌아져 칼을 그대로 두고 나는 못하니 잘하는 사람이 하라며 뒤로 물러선다.

순간 주방의 분위기는 냉기가 서렸다. 이 순간 괜히 말을 잘 못 했다가는 더 살얼음판이 될 수 있어 눈치만 살핀다. 나물할 때 물 온도를 조절해 살짝 데치면 되니 괜찮다고 조리사 언니가 나선다. 우리 동네에서 채썰기에서 이보다 더 잘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수위 조절에 나선다. 또 한 번의 아슬아슬함을 넘겼다. 음식 간 보기는 고령일수록 강하다. 70대는 요즘 음식은 간이 세면 젊은 사람들은 기겁한다며 약하게 단속한다. 우리 마을은 젊은 사람이 없단다. 뭐니 뭐니 해도 음식이 간이 알맞아야 맛이 있는 법이라고 우겨댄다. 또 한 번의 긴장감이 돈다. 조리사가 나선다. 비빔밥 소스로 개인 간은 조절하면 된단다. 젊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다른 일손을 거들라며 앵두나무 집 언니가 한사코 손을 잡아 끌어낸다. 마지못해 끌려 나온다. 샐쭉한 표정이 일을 빼앗긴 아쉬운 표정이 마음에 걸린다.

한군데 모인 유리그릇을 다루는 기분이다. 주방은 좁고 에어컨도 큰방에서 거실을 거쳐 건너오니 냉기가 없다. 선풍기를 이번에 마련했지만, 우리들을 거부한다. 한글로 써도 좋으련만 알 수 없는 기호로 되어 당최 소통되지 않는다. 더위에 선풍기를 두고 못쓰니 답답하기만 하다. 터치하면 고개를 쳐들고 천장으로 바람을 보내고 있다. 그것도 기다릴 수 없어 버럭 화를 낸다. 어디서 저런 걸 돈을 주고 샀느냐며 다시 바꾸란다. 화가 나긴 나도 마찬가지다. 처음 약속했던 사항도 무시한 채 복잡한 것으로 하느냐며 불평이다. 나도 불쑥 튀어나올 말을 틀어막았다. 요리하기 허리가 아프다며 밀고 다니는 앉은 의자를 부탁한다. 그것도 필요할 것 같아 메모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말 습관이다. 왜 미리 장을 보지 않아 일하는데 차질을 빚는 거냐며 부녀회장을 다그친다. 식재료 구입과 비용은 공동체 원칙에 따라 당일 구매하고 그날 식사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직분이 있건만 나만의 조리 이력으로 밀고 나가는 경향이 뚜렷해 서로 부딪칠까 아슬아슬해진다.

손은 움직이되, 입은 닫는 게 복 받는 일이란다. 다음 주부터 마스크를 준비해 입을 닫게 하라고 한다. 무생채는 새우젓과 마른 고추를 갈아 비벼 놓으니 상큼한 맛이다. 각자 비빔 그릇에 놓을 것인가 큰 접시에 놓을 것인가로 의견이 맞선다. 어차피 비빔 그릇에 적절하게 비빔 재료를 넣으면 설거지가 느는 게 아니라는 의견이 모아졌다. 장만한 음식은 네 개의 큰상 위에 이십오 개의 비빔 그릇이 올랐다. 남자들은 시간에 맞춰 마을회관으로 들어선다. 한결같이 걷는 걸음걸이도 힘이 없다. 마을회관이 가득 찼다. 모두 한자리에 얼굴을 맞대고 식사를 하니 한 식구다. 한쪽에서는 큰 양푼에 장만한 반찬을 넣어 한꺼번에 비빈다. 큰 그릇에서 비벼서 각자 그릇에 담아 먹는 비빔밥이 훨씬 더 맛있어 보였다. 언니들을 큰 양푼에 허락도 없이 비어 버렸다. 바가지들 힘도 없어 밥해 먹는 것도 힘들다며 구시렁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벼대고 한쪽에서 덜어가고 웃음 반 잔소리 반으로 버무려진 비빔밥은 대성공이었다. 먹는 순간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비빔밥은 소탈한 재료들이 들어가야 어울려 맛이 난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비빈다고 한들 한 가지 반찬으로 이 맛을 내기 어렵다. 모여 먹다 보니 사람처럼 좋은 반찬이 없다.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한마을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사람들이다. 모두가 장단점을 껴안고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한자리에 없을 때는 말을 불쑥 내뱉는다고, 무엇하나 나눌 줄 모른다고, 자랑만 일삼는다고, 남의 험담만 캔다고, 가끔은 비난하지만, 비빔밥의 재료처럼 함께 어울리면 나름대로 고운 빛깔이 있다. 밉다고 밀어내면 나만 외로운 섬이다. 요즘은 마을 공동체 사업도 마을에 참여자가 적으면 신청조차 불가능하다. 이 언니들이 계시기에 모두가 한자리에서 귀한 음식으로 외로움도 덜어내고 살도 찌우는 식사를 제공받는 기회를 얻는다. 어떻든지 마을 언니들이 건강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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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김 미 농번기에 마을에서 마을 공동체 식사를 신청했다. 마을 분들이 모두 좋아했다. 집에서 혼자 먹는 밥보다는 함께 어울려 먹는 밥이 훨씬 살로 가고, 사는 맛이 담겨 있다며 환영했다.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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