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고향의 그 바다[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4. 7. 8. 10:05

김 미

모든 것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내 가슴속에 깊숙이 간직된 고향만은 아련한 추억 그대로 남아 있다. 지독했던 가난마저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떠오른다. 이것이 신비로운 고향의 힘인가 싶다. 바다가 앞마당처럼 자리를 잡고 있던 고향마을.

방문을 열면 바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부모 형제의 얼굴보다 바다를 수시로 살피며 자랐다. 문밖에 바다는 수시로 변화했다. 밀물과 썰물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의좋은 형제 같았다. 바닷물이 잔잔하게 들어차 올 때는 짙푸른 보자기를 펼쳐놓은 듯 마음마저 평화로웠다. 반면 바람이 거센 날은 파도가 마을을 다 삼켜 버릴 듯 허연 입을 벌여 달려들 것 같아 얼른 눈을 돌려 버렸다. 어른들은 바다를 보며 한 해의 기운과 일기를 살피며 바다와 관계를 유지했다. 가족의 깊은 마음보다 바닷속을 훤히 꿴다는 듯 다 읽어 냈다. 마을 한쪽에 자리 잡은 바다는 우리에게는 놀이터이자 먹거리를 주는 텃밭 같은 곳이었다. 바다는 두 얼굴이었다. 썰물일 때는 바닷속을 수시로 구석구석 들락거리며 자랐다. 그 갯벌에 남자아이들은 놀기 위해서라면, 여자아이들은 조개를 잡아 한 끼니의 찬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그곳에 머물렀다. 때론 조개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를 둑에 앉아 애타게 기다렸다. 밀물이 들어차 오는 시간의 기다림은 바람 앞 호롱불 같았다. 밀물이 뭍으로 다가오지만, 어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작은 가슴은 먹구름으로 가득찼다. 어머니는 다른 곳으로 빠져나와 아이를 불렀다. 매일 보는 어머니지만 그 순간의 반가움은 평생 기억으로 자녀들의 가슴속에 새겨진다. 바다는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내어주었다. 홀로 된 어머니는 자녀들 학비를 벌기 위해 바다에 죽을힘 다해 매달렸다. 입에 찍어 넣을 것도 없다는 어머니는 한사코 딸 손에 작은 그릇을 쥐여주며 조개를 잡아 오길 원했다. 바다는 한없이 파헤치면 다 얻어 올 수 있는 곳이었지만, 깊은 강에 들어가면 큰일 난다는 소리를 수없이 했다. 파고들수록 속살처럼 부드러운 갯벌에는 게, 꼬막, 감태, 고동, 맛, 망둥이, 짱뚱어 무수한 생명들이 자랐다. 밀물은 이불을 덮어 키우듯 다독이며 키워냈다. 바다에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는 작은 생명도 이름과 집을 지니고 살아갔다. 집이 크면 큰 몸을 지녔다. 작은 생명은 애써 손을 뻗어 잡아들면 흡족해하는 사람들 마음과는 다르게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자 부단히도 꿈틀댔다. 그것 하나만 있어도 식탁은 가족들의 숟가락이 활기차게 움직였다. 어쩌다 보면 많이 잡은 조개는 이웃집 울타리 틈으로 나누기도 했다. 바다가 전해주는 인심이었다. 바닷가 마을답게 마당 빨랫줄에 빨래 대신 생선들이 바람에 말라갔다. 바다는 어머니의 젖줄처럼 농토가 적은 마을 식구들을 굶지 않게 살펴 키웠다. 큰 고깃배가 선창에 닿을 때 마을 사람들은 무엇에 끌려오듯 모여들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아이들도 어른들을 따라 조개잡이를 나섰다. 고향의 바다에서 나오는 해물들을 손수 먹고 자랐던 자녀들은 타지에서 살면서도 고향 바다에서 먹었던 짭조름한 해조류의 맛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 한다. 고향의 바다는 청소년기의 예민했던 감정도 토닥여 주었다. 마음의 상처로 아파할 때 철썩대는 파도 소리를 듣다 보면 그 고민은 밀물에 스르르 밀려가기도 했다. 고향은 청소년기에 마음을 나누던 속 깊은 친구이기도 했다.

그런 바다가 농토 개간 사업으로 밀물을 강제로 막아버렸다. 그 바다에 기대며 살았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생활 터전을 잃어버린 셈이다. 없는 듯 곁에 있던 그 바다가 중병을 앓듯 말라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이었다. 아름답던 집 마당을 내놓아야 하는 순간에도 주민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토록 무서운 가난을 없애준다는데 그저 아무 소리 없이 지켜봐야 했다. 붉게 타들어 가는 바다가 갈증을 호소하듯 했다. 그 모든 걸 애써 외면했다. 갑자기 일어나는 마을의 변화에 마을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억지로 자연의 변화를 틀어막아 어찌 될지 걱정스러운 눈길이었다. 하지만 저 바다가 지독한 가난을 몰라내 준다는데 기다려 봐야지. 바다는 사라진 그 길을 가고자 했다. 태곳적 존재를 지워버리는 일은 서로 간의 아픔이었다. 밀물과 썰물이 수시로 드나들던 물길을 막아버리자, 작은 생명들의 원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오랜 세월 바다를 보아왔던 할머니는 바다가 목마르다고 갈증을 호소하는 저 소리가 들린다며 당신의 가슴을 쥐어뜯었다. 정처 없이 흐르는 시간만이 울분에 찬 붉은 바다를 토닥였다.

마을은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급속도로 변화가 왔다. 마을이 화려한 치장을 할 수 록 사람들은 형제와 이웃이 삿대질하며 담을 높이 쌓아갔다. 많은 농토가 풍요를 약속해 행복해질 거라 믿었다. 그러나 사람들 마음은 가난해졌다.

아름답던 고향의 흔적이 사라지고 그 시절의 애틋한 그리움은 추억 속에 간간히 내게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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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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