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낙타와 바늘구멍[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4. 6. 11. 17:19

김 미

전화벨이 울어댄다. 해도 줄어들지 않는 일들을 두고 도대체 이런 일들은 언제나 끝이 날까 하는 생각에 심난한 순간이었다. 손전화기에 이름자를 보니 미안하게도 전화 받기가 주저된다.

전화벨은 빨리 받으라고 조르듯이 울어댄다. 되도록 전화벨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일을 했다. 결국 전화는 스스로 고함을 질러대다 지쳐 멈췄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편하지 않다. 그 친구가 나에게 전화를 걸기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자존심 상해할지 짐작도 간다. 그 친구는 취약 계층의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고운 외모에 말투가 부드러웠다. 보살피는 아이들에 관한 일로 함께 의견을 나눌 때도 많았다. 어떤 상황의 문제든 차분하게 생각하고 웃음으로 다가와 가닥을 잡아가며 서로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는 친구였다. 누구를 비난하거나. 욕심이 묻어나는 말은 잘 못 됨을 스스로 알아가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어조가 마음에 들었다. 중년의 극성스러움이 없는 그녀가 성스럽게까지 보였다. 그녀는 취약 계층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같은 활기찬 희망을 품게 하려고 그들의 마음을 보살피는 일에 열의를 다했다. 취약계층 아이들이 경제적 여건이나 가정환경으로 꿈마저 작아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 친구는 독신이기에 그 아이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정서적 지지를 구상하며 그들에게 한발 다가서는 일에 앞장섰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온 힘을 다해 애정을 쏟는 친구가 감사했다. 그 친구와 개인적인 친분도 쌓아갔다. 그 친구는 학창 시절부터 학업이 뛰어나 지방에서 선호하는 좋은 대학을 졸업과 동시에 직장까지 보장받는 곳에서 근무했다. 자라면서 공부는 잘했지만, 몸이 약해 자주 병원에 다녀야 한다는 것 때문에 항상 부모로부터 특별 보호를 받았다고 했다. 자매들은 그런 언니가 미움의 대상이었나 보다. 지역에서 서울에 이름 있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니 주변의 자녀를 둔 어머니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방학 때면 과외를 부탁하는 아주머니들이 줄을 섰다고 했다. 그렇게 서울, 지방에서 개인과외를 했고 대학도 학비가 전액 면제되어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탄탄대로 살아오던 중 더 높은 직급의 직장으로 옮겨 가기 위해 유학도 다녀왔다. 귀국해 오니 그토록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어머니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었다. 어머니에게 제대로 효도도 못 하고 보내 드리는 일이 너무 애달팠다. 모든 일을 접고 어머니 임종까지 병시중을 자처했다. 자매들은 그토록 지대한 사랑을 받았으니, 그 정도는 해야 한다는 생각인지 누가 하루도 교대해 주는 자매가 없었다. 어머니 병간호를 하다 보니 인생이 별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잠깐 왔다 가는 것이 인생이구나 싶었다. 직장에서 서로 간 경쟁하며 아등바등 사는 일이 허무했다. 인제부터는 몸으로 일을 하며 사는 일을 계획했다고 한다. 그렇게 발길 가는 대로 마음이 허락하는 일에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관심 분야인 청소년 복지에 관한 일이라면 거리를 불문하고 다녔단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거처를 마련하다 보니 자신의 생계 자금은 비누처럼 닳아 얇아졌다. 이러다가 안 되겠다 싶어 직장을 구해 보려니 적지 않는 나이도 걸리고, 복지 쪽에서 요구하는 자격증이 없었다. 마땅한 곳이 있어 지역을 옮기려니 이사, 방 구입비용 때문에 꼼짝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결국 친구는 방 안에서 책만 읽다 보니 몸무게는 과부하 상태였다. 내가 보기에 그녀의 생활은 현실적으로 바닥인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 줄 인간은 알 수 없다는 말로 자신을 가렸다. 그렇다고 신의 영역을 논하는 그녀에게 콩이니, 팥이니 말할 입장도 아니었다. 그 친구를 만나고 오면 금방 닥쳐올 그녀의 빈곤이 걱정스럽기만 했다. 나는 그 친구에 관해 비겁하게 변해갔다. 가족, 형제가 아니니 안 보면 그만일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친구는 가끔 내게 안부 전화를 했다. 그 친구 형편이 유리그릇같이 훤히 내비쳤다. 내 통장에 있는 잔고가 그렇게 짐스러워 보딜 수가 없었다. “나도 통장이 텅 비어 도움 줄 여력이 안 되는 데 어떡하면 좋아.”라며 죽는소리 하며 내 체면치레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는 어려운 형편은 아니었다. 노후를 생각해 연금 준비도 하며 어떻게든 더 늙어지면 경제활동을 못 할 일을 염려해 몸이 내려앉도록 일터에서 허덕였다. 친정엄마는 사람살이는 부지런함이 반복이다. 돈도 젊어서 벌어야지, 나이 들면 돈도 따르지 않는 법이라고 늘 자녀들을 단속했다.

그 친구 형편을 생각하면 소액으로는 감당도 어려우니 어떻게든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친구는 형제이며, 도와줄 만한 지인들이 모두 외면한다며 너무 슬픈 상황이라고 한다. 그 소리가 내 머릿속에 돌멩이를 얹어 놓은 듯 나를 짓누른다. 나는 노후에 얼마나 좋게 잘 살려고 저런 딱한 친구를 외면하는가. 내가 진정 사람인가 싶어진다. 옹졸하게도 나는 차라리 만나지 말 걸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었을까. 하고 나를 향해 ‘쯧쯧’ 하는 어리석은 비난까지 한다. 이런 부도덕한 마음을 간파하고 성경에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라고 했겠는가. 나는 부자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친구보다야 몇 배 나은 입장인데 싶다. 돼지 같은 인간이라고 해도 나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결국 나는 그 친구의 전화를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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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와 바늘구멍

김 미 전화벨이 울어댄다. 해도 줄어들지 않는 일들을 두고 도대체 이런 일들은 언제나 끝이 날까 하는 생각에 심난한 순간이었다. 손전화기에 이름자를 보니 미안하게도 전화 받기가 주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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