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입주하는 날[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4. 5. 21. 10:41

김 미

그동안 우리 부부는 스스로 마련한 집이 없이 살아왔다. 부모가 살던 집에서 지내다가 자영업을 하며 안집이 없이 상가에서 살았다. 안정된 공간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게 일을 줄이는 거라 여겼다. 그런데 언젠가는 안집을 필요하게 될 거라 여겨 안집 마련을 꿈꾸고 있었다. 대대로 살아오던 동네를 떠나 편리한 아파트로 이사도 생각했다. 왠지 그래도 자연과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는 시골 마을에 미련이 더 많았다. 친밀한 사람들은 집 종노릇만 하려고 하느냐고 하지만 섬길 수 있는 집이라면 섬기고 싶었다. 그러나 인연이 닿는 집은 쉬이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 결국 다 늦은 나이에 아파트로 끌려가야 될까 겁이 났다.

그러던 찰나 내가 그토록 마음속으로 사모했던 집이 매매된다는 것이다. 그 집은 우리 마을에 살던 노부부가 살뜰하게 챙기던 집이다.

노부부는 애틋한 부부애로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건만, 어르신의 아내는 지난번 코로나19에 걸려 고생하다 먼 길을 떠났다. 어르신은 아내 생각에 도저히 이 집에서 머물 수 없다며 이사를 결정했다. 꽤 오랫동안 빈집으로 있었으나 아픈 아내 때문에, 마당에 꽃들도 손질을 못 해, 많은 사람이 집만 들러보고 갈 뿐이다. 그걸 지켜보며 왠지 어르신이 정성스럽게 가꾸던 집인지라, 다시 마당에 누군가가 정성을 쏟는다며 예쁜 집으로 피어날 것 같다. 그 집을 가꾸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 가족들은 상상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아직까지 집안에 꽃 하나 피워낸 결과물도 없으면서, 괜한 욕심내지 말라고 한다. 마당만 꽃이 핀다고 다가 아니라는 거다. 집안을 다시 수리하려면 경비 지출이 많다며 내 생각을 말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굳이 집을 크게 수리를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반대 의견이었다. 그대로 살고 싶었다. 어차피 영원한 새집은 없는 법이다. 필요에 따라 단속하고 깨끗하게 관리를 하면 될 것을 굳이 범위를 크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 의지에 가족들은 그래도 이 나이에 열심히 살았고, 생전에 처음 갖는 우리만의 집이라는 것이다. 그런 명분보다는 지구에 상처를 덜 주는 방법을 주장했다. 벽지도 그대로 사용해도 될 것 같았지만 마을 분들까지 합세해 당부했다. 도배만이라도 새롭게 하라며 착한 훈수를 둔다. 노부부가 사용했던 물건 중 쓸 만한 것은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험하게 사용하지 않아 그대로인데 굳이 다 새로 바꿔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돈도 돈이지만 아직은 쓸 만한 살림들을 버리면 쓰레기로 밖에 더 되겠는가. 새삼스럽게 나 혼자 쓰레기 염려 한다고 얼마나 지구에 도움이 되겠냐고 묻는다. 그 한 사람의 더해지면 지구에 문제는 조금이라도 해결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어딘가는 무분별하게 버린 쓰레기가 이상 기온으로 되돌아오는 재앙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나만이라도 다가올 재앙을 생각하고 싶었다. 나 혼자 그런다고 먼지만큼이나 도움이 되겠냐고 한다. 나마저 모른 채 한다면 다가올 환경의 불균형은 어느 누가 지켜줄 것인가. 누가 뭐라고 해도 실천에 옮기고 싶었다. 틈나는 대로 구석구석 기름칠하고 닦았더니 윤기가 났다. 그대로의 살림이건만 아무도 몰랐다. 마을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동안 잘 살 수 있도록 지지를 보내주고 보살펴 준 마음을 알기에 조촐하게 집들이 식사 준비를 했다. 식사를 대접할 때 혹시 구두쇠처럼 그 살림을 그대로 쓰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할까. 조심스러운 심정이었다. 모두들 새로 장만했느냐며 새 물건으로 바꾸니 집은 다른 모습이라며 이곳저곳을 살폈다. 집이 제대로 주인을 만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에 살던 어르신이 아내를 위해 집안 살림을 편리하게 잘 단속해 놓았다. 마당 안에 요목조목 심어 놓은 꽃들이 주인이 바뀌었지만 그대로 환한 모습으로 피어난다. 피어나는 꽃들의 표정을 보며 어르신은 이 꽃들의 모습이 얼마나 보고 싶을까. 아파트로 가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차마 전화를 드릴 수가 없다. 두 내외가 함께 지낸다면 꼭 한 번 집으로 초대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이 집에 들어서면 얼마나 아내 생각이 날 것이며 봄꽃들의 안부가 궁금할까.

봄 햇살이 화창해 손을 놓고 있기가 아까운 날이다. 담장 아래로 씨앗을 심다 보니 흙속에 웅크리고 있던 씨앗들이 나도, 나도 하며 손을 들고 나오는 중이다. 옛 주인이 심어 놓은 더덕향이 코끝에 진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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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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