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공생[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4. 7. 8. 09:55

박 철 한

‘누이 좋고 매부 좋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일에 있어 서로에게 모두 이롭고 좋다’라는 말이다. 이처럼 양쪽 다 이익을 얻으며 살아가는 것을 공생이라 한다. 공생이라면 동물끼리의 공생에서부터 곤충은 꿀을 먹고 식물은 꽃가루받이를 하는 동물과 식물의 공생이나 콩과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근류균)의 공생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가 다양하다. 그런데 한쪽만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은 이익도 손해도 없는 편리(片利)공생도 있다. 하지만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공생임을 감안할 때 ‘편리’에 ‘공생’이란 말을 붙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잠포록이 마른장마가 계속되며 주니가 나던 여름날에 지상파 방송에서 공생에 관한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거기에서는 주로 동물간의 공생이 소개되었는데 그 오묘한 이치가 놀랍다. 동물끼리의 공생은 개미와 진딧물, 악어와 악어새 등 익히 알려진 것 말고도, 아프리카 기린의 치아 사이에 낀 음식물이나 털에 있는 기생충을 먹어 없애주는 ‘소등쪼기새’와 기린처럼 최근에야 밝혀진 공생도 많다는데 특히 수생동물들에게 흔하단다.

물고기들은 대개 자신보다 몸집이 훨씬 작은 물고기에게 몸을 맡겨 기생충을 잡아먹게 하고 자신은 그 물고기를 보호해주며 공생한다. 전갱이와 몸집이 작은 청소놀래기는 공생관계지만 문제는 청소놀래기의 수가 적어 수많은 전갱이들을 다 상대할 수 없다는데 있단다. 그래서 전갱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상어를 바짝 따른다. 자칫 잡아먹힐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쓴 이유는 상어의 꺼끌꺼끌한 비늘에 자신의 몸을 비벼 기생충을 떼어내기 위함이다. 한편 전갱이와 상어가 상리공생 관계인지 아니면 전갱이만 이익을 얻는 편리공생 관계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알레스카의 갈가마귀는 짐승이 죽어 꽁꽁 얼어있으면 그곳에서 요란하게 우는데 아메리카오소리가 그 소리를 듣고 달려간다. 갈가마귀가 아메리카오소리를 부르는 이유는 자신들의 부리로는 질긴 가죽에 덮여 꽁꽁 얼어있는 살점을 도저히 먹을 수 없으므로 아메리카오소리가 날카로운 이빨로 뜯어먹고 나면 나머지를 쪼아 먹기 위해서란다. 갈가마귀는 넓은 곳을 날아다니며 죽은 동물을 찾아내고 아메리카오소리에게 알려 결국 둘 다 이익을 얻고 있으니 참으로 현명한 거래가 아니랴.

동물들의 공생관계는 인간과 야생짐승 사이에 형성되기도 한단다. 그렇다고 우리의 전통스포츠인 매사냥이나 지금도 몽고에서 행해지는 독수리사냥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독수리사냥은 독수리를 사냥에 이용하다가 야생으로 돌려보내지만 당초 독수리 스스로의 행동이 아니라 사람이 야생 독수리의 새끼를 잡아 길들여 이용한 것이므로 공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프리카 마사이족과 ‘꿀잡이새’의 공생을 보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혹 꿀잡이새가 마사이족 가까이에서 요란하게 울어댈 때는 “꿀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다.”라는 신호다. 그럴 때마다 마사이족은 곧바로 꿀을 채취할 차비하고 꿀잡이새를 따라나선다. 꿀잡이새가 마사이족을 적당한 거리에서 유인하다가 벌집이 있는 곳에 도착하면 울음소리가 달라지며 멈춘다. 마사이족이 연기를 피워 벌집에서 꿀을 따면 반드시 새들의 몫으로 한줌 가량의 꿀이 가득 찬 벌집을 평평한 바위에 남겨두고 자리를 뜬다. 인간에게는 한줌에 지나지 않지만 작은 몸집의 꿀잡이새에겐 덤턱스런 양이리라.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한량없는 벌들이 지키는 벌집에서 도저히 꿀을 따먹지 못함을 알고 인간을 이용하여 욕구를 채우는 꿀잡이새들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부터 마사이족과 새가 공생관계를 형성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당초 꿀잡이새들이 인간의 능력을 어떻게 알고 벌집으로 안내해야겠다고 깨닫게 되었으며 마사이족 또한 날짐승들의 뜻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그들을 따라나설 수 있었는지 모든 것이 신기(神奇)할 뿐이다. 물론 새가 인간의 행동을 각인하고 믿으며 스스로 찾아와 서로 돕기를 청한 셈이니 그 안에는 오랜 세월과 수많은 사연이 숨어있을 것이다. 아마도 애초에는 마사이족이 꿀을 따면서 흘린 부스러기를 새들이 먹으며 차츰 인간의 능력을 깨달았고 이후부터 벌집을 발견하면 마사이족 가까이에서 요란하게 울지 않았으랴. 그리고 마사이족은 꿀을 먹는 새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여 그 뜻을 알아차리고 따라가 꿀을 따서 남겨주며 믿음을 얻었으리라. 중요한 점은 그 소중한 공생관계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마사이족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당초 꿀잡이새들의 뜻으로 그 관계가 형성되었을 것이기에 마사이족이 배신하지 않는 한, 그들 스스로 믿음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름지기 외쪽여수(與受) 관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 만약 마사이족이 꿀잡이새의 안내를 받아서 딴 꿀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가져가버린다면 차츰 둘 사이의 믿음은 사라지고 언젠가는 공생관계가 깨지고 말 것이다.

공생의 전재조건은 믿음이며 서로 믿지 못한다면 절대로 공생할 수 없다. 오늘날 인간사회에서도 공생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여야 정치인들은 아프리카의 ‘꿀잡이새와 마사이족’처럼 서로 믿고 협조하며 공생해야 할 때다. 지금 혹시 한쪽에서 “당신들이 먼저 꿀을 주겠다고 약속하면 우리가 벌집으로 안내하겠소.”라고 말하자 상대가 “당신들이 먼저 벌집으로 안내해야 우리가 꿀을 줄 수 있을 것 아니오”라고 대꾸하며 대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야 둘 다 꿀을 얻지 못한다. 만약 한쪽에서 “우리가 먼저 저쪽사람을 벌집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야겠구나.”라고 여기거나 또는 상대가 “우리가 먼저 꿀을 준다고 약속해야겠구나.”라고 생각을 바꾼다면 양쪽 다 꿀을 얻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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