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미
비릿한 듯 달큼하고 고소한 냄새가 코를 벌름거리게 한다. 냄새만으로도 온 기가 열린다. 구미가 당겨 순간에 손이 간다. 뜨끈함이 손끝에서 온몸으로 전해진다. 집게와 엄지손가락에 힘을 모아 양 손가락으로 푹푹 찢어 본다. 사람들은 지나친 아부성 발언에 불에 구운 오징어처럼 온몸이 오그라든다고 표현하곤 한다. 부실한 치아를 망각한 채 고무 같은 질감의 오징어 한 가닥을 입안에 넣는다. 예전의 맛이 되살아나 만족스럽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상갓집에 다녀올 때 상 위의 음식들을 손수건에 싸서 주머니 안에 넣어 왔다. 손수건을 펼치면 생선전이며 떡, 쌀강정이 뒤엉켜 들어있었다. 그중에 제일 먼저 손이 가는 것은 도막도막 찢어진 오징어였다. 할머니는 내 손안에 얼른 밀어주었다. 집안에 보관하고 먹을 만큼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아 먹을 수는 없었지만 잔칫집이나 상갓집, 장거리 여행 시 맛볼 수 있었다.
오징어 배를 타는 사람이 부산에 있어 뜻하지 않게 비싼 오징어를 가끔 먹게 되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딱딱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하고 달큼한 맛을 즐기다 보니 벼들이 익어가는 가을을 애타게 기다렸다. 곡물 전을 수시로 드나들며 올벼 쌀 한 되씩 사 와 무슨 중대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처럼 열심히 먹어댔다. 가을의 맛은 올벼쌀 있는 것처럼. 아침이면 이가 아파서 아침밥도 먹기 불편할 정도였다. 이가 튼실하게 가득 차 있을 때는 그런 딱딱한 맛에 기대어 생의 활기를 누렸다.
그런데 아버지는 하나만 알고 둘은 생각할 줄 모른다고 나무랐다. 결국은 이 때문에 어려서부터 고생깨나 했다. 그때만 해도 치과는 구경도 할 수 없으니 저녁내 치통 때문에 한 숨도 못 자고 발버둥을 치며 고통스러운 밤을 지새웠다. 아픈 딸 때문에 어머니도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옛말에 이가 아리면 반 미치고 귀가 아리면 온 미치는 것’이라며 어린 딸의 고통을 안쓰러워했다. 행여 통증이 멈출까 치약도 발라주다가 참기름도 화롯불에 달궈 그 응축된 기름을 헝겊에 묻혀 아린 이에 찍어 바르곤 했다. 통증이 시작되면 삼일은 죽었다 깨어날 만큼 힘들었다. 유치 때부터 시난고난하더니 젊은 나이부터 이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치과를 수시로 드나들며 임플란트로 대신했다. 젊은 시절부터 시작해 마음의 공허감도 컸다. 싱그럽게 푸르러야 할 시기에 낙엽으로 고사하는 나뭇잎 같아 허탈감으로 한동안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오복의 하나인 튼튼한 이는 나 스스로 밀어낸 결과라 생각된다. 이로 딱딱하고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없는 상태에 이르자 이상한 방향으로 그 맛을 찾게 이르렀다. 고약한 버릇이 생겼다. 친밀하게 지내던 사람들을 오징어나 올벼쌀을 씹듯이 뒷말을 하거나 험담하는 거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공정한 자가 아니라, 고무줄 자로 들이대면서 내게 이익이 되면 맞는 거고, 손해가 되면 틀린 듯 험담을 즐겼다. 이 버릇도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도 있었다. 간간이 가족들 앞에서 험담하다 오빠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났다. 오빠 앞에서는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되었다. 오빠는 동생들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은 없었다. 한동안은 그런 오빠까지도 틈이 나면 은근히 험담했다. 결혼 후 오빠로서 형제들을 위해 양보하지 못한다며 입을 뒤틀어 가며 험담했다. 아마도 오빠보다 올케언니가 뒤에서 더 욕심을 강요했을 것이 분명하다며 고소한 오징어를 씹듯이 질겅거렸다. 마치 강아지가 발라먹을 살점 하나 없는 뼈를 이리저리 굴리며 며칠 매달리듯이 말이다.
그 습성은 쉽게 털어 내지 못했다. 아무리 온갖 고소한 양념을 발라서 내 구미에 맞게 험담해도 뒤돌아서면 허전하고 뒤통수가 부끄러울 뿐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가끔은 한탄할 때도 있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험담한 씁쓸한 뒷맛을 보지 않아도 될 터인데 싶었다. 어린 날 아버지 말씀대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으로 사는 일이 내 몫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부끄러울 때도 많았다. 이제 하다하다 사랑하는 자녀들까지도 비교하며 잠깐의 오징어 고소한 맛의 유혹에 넘어갈 때가 있다. ‘네 동생은 아주 세상에 없는 구두쇠더라. 부모가 세세토록 사는 것도 아닌데 월급을 받으면 부모가 좋아하는 맛있는 것도 안 사 오더라. 미혼이면서도 그렇게 무심하니 결혼하면 뻔하지 않겠냐며 비아냥댄다. 그 말속에는 큰아들도 해당이 된다.
그러면서 ‘딸 없는 엄마는 불쌍하다더니 두말해 무엇 하겠냐’며 한 달은 굶은 시어머니 상으로 표정을 구긴다. 하긴 아들은 결혼하면 옆집 아저씨라고 하니 질긴 인연을 털어내야 한다고 하는 모양이지. 큰아들은 요즘 집에 올 때 색다른 식품들을 사 나른다. 이제 그것도 뒤가 구린 탓인지 작은아들에게 그대로 조잘댄다. 진심에서 우러나와 사 온 게 아니니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는지 모르겠다고. 새벽잠 설치며 문득 떠오른 생각 한 자락이 못에 걸린 듯 펄럭인다. 아무래도 비겁한 처사 같다. 나는 얼마나 부모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가 싶다. 그렇다고 절대 사 오지 말라고 당부할 자신도 없다. 오징어, 올벼쌀의 맛에 빠져 오복 중의 하나인 이를 허술하게 만든 탓을 누구에게 묻겠는가. 부모로서 자식에게 곶감 같은 맛을 요구했다가 자식들의 마음에 어떤 부모상이 자리 잡을까 마음이 쓰인다. 하나를 깨달으면 서너 개의 지혜를 간직하지 못한 부모로 비칠 것 같은 마음에 괜한 수선을 피우게 된다.
오복에 대해 살펴본다. 1.수(壽) ;오래 사는 것 2.부(部);부자가 되는 것 3.강녕(康寧); 건강한 것(육제척, 정신적) 4.유호덕(攸好德); 남에게 선행을 베풀어 덕을 쌓는 것 5.고종명(考終命); 천수를 다 하는 것, 질병 없이 살다 고통 없이 편안히 일생을 마치는 것. 나만 모르고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나는 또 잔소리처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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