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육십에 가출했다. 그것도 대독이 터진다는 정이월이었다. 말리는 아들에게 이대로 살다가는 내 몸 안에 병을 키워 죽을 것 같으니, 험하게 살더라도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밖은 어둡고 칼바람이 불었다. 눈발까지 더해 밤공기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하필이면 이 추위에 누가 밀어내는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에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뒤척이며 지새는 밤은 서럽고 억울했다. 이번만은 기어코 내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마음 놓고 살만하면 선거철이 돌아왔고 남편 병은 도졌다. 그는 몇 년 전 다시는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일도 무시해 버렸다. 온갖 이유를 만들어 다시 나서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이 남편의 그 소리였다. 이젠 서로 간에 말이 필요 없었다. 나는 그 꼴은 못 보겠다며 봇짐을 쌌다. 마지막으로 집안 정리를 했다. 다시는 발 디딜 일 없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혹시 누군가 주방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내 뒷모습을 훤히 내보이는 것 같아 정성껏 치웠다. 정돈된 집안을 뒤로하고 옷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이른 시각 낯선 사람들이 북적대는 터미널에 도착했다. 집채만 한 옷 가방을 든 채 버스표를 예매하기 위해 서성이다 보니, 내 꼴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세상 살 만큼 살았건만, 지질히 궁상스럽게 몸이 기울 정도로 뭘 챙겨 넣었는지 스스로가 한심스럽기만 했다. 꼭 등짐장수 품새였다. 스치듯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마음을 끓인 탓에, 얼굴빛은 바랜 무명천 빛깔이고, 몸체는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해 비루먹은 강아지 꼴이었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자, 무슨 일이냐며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몇 시 도착이냐고 물었다. 무작정 반겨주는 언니가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내 혈육도 아니지만, 언니는 혈육 이상으로 나를 감쌌다. 갈 곳이 정해졌다는 생각 때문인지, 버스 좌석에 앉자 물젖은 창호지처럼 몸이 처지면서 깊은 잠 속으로 빠졌다. 도착해 보니 언니는 차 머리 앞에서 나를 맞아 주었다.
언니는 내가 35년 전 셋방살이하던 시절 주인집이었다. 어렵던 그 시절 고만고만한 살림살이에 아픈 사연 하나씩 떡고물처럼 얹고 사는 셋집 사람들을 아직도 품고 사는 언니였다. 그 언니 앞에서만은 자존심도 부끄러움도 없어졌다. 내가 왔다고 하자, 전화로 돌아가며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과수댁이 되어버린 김해 언니는 남편 버릇 잡으려면 한 달은 버텨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직도 셋집을 못 벗어난 장 권사는 어쩌든 하나님께 매달리며 갈급하게 기도하면 응답해주니 기도로 무장하란다. 살빛이 곱던 희금 언니는 70살 목전에도 결혼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미혼이다. 셋집을 전전하다 겨우 융자를 안고 원룸을 샀단다. 그것도 주인집 언니가 돈을 융통해 주었단다. 희금 언니의 그 도도함도 별수 없이 새벽에 나가 학원 청소를 한다고 했다. 집 융자금 때문에 꼼짝없이 매여 살고 있단다. 내게 전화한 희금 언니는 집 나온 김에 날 잡아 고궁 순례하자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온양댁인 천심 씨는 큰아들이 좋은 직장 들어가 한시름 놓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일을 만났다. 그 아들은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의식불명으로 입을 벌린 채 누워만 있단다. 온 가족이 수발에 매달려 온양댁은 허리 병으로 몸도 못 가눌 정도라고 했다. 주인집 언니가 억장 무너진 어미 마음이 어떨까 싶어 병원에 있는 3개월간 집밥을 배달했다고 했다. 주인집 언니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펴주었다. 그 정 때문에 그때 살던 사람들은 멀리서도 주인집 언니를 찾게 된다. 이틀 동안 밤을 설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그 이야기마저 동이 났다. 언니는 나더러 호강에 오줌 싸는 소리 말고, 쉬었다가 어서 집으로 돌아가란다. 그러면서 큰 글씨 《좋은 생각》이란 월간지를 읽어 보라며 툭 던져주었다. 2022년 3월호 《좋은 생각》에서 <자기 돌봄> 정신 의학과 문요한 의사의 글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연민’이라는 말은 ‘함께’라는 뜻의 라틴어가 어원이라고 한다. 즉‘ 고통에 대해 안타깝게 여기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한다. 공감의 근본이 되는 감정이다. 연민은 그 대상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 즉 그 대상의 고통이 나에게도 비슷하게 벌어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둔 연대의 감정이다.
자신의 상황이 힘들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큰 고통에 빠져 힘든 게 아니라, 고통스러운 자신을 위로할 줄 모르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이들은 자신에 대해 전혀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 자기 동정이나 자기 혐오에 빠질 뿐이다. 상대가 힘들 때 진실한 도움을 주려면 연민의 마음이 있어야 하듯, 자신이 힘들 때 자신을 돌보려면 자기 연민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기 동정과 자기 연민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자기 동정’은 고통의 보편성을 망각하고 이 세상에서 자신만이 그 고통을 겪는 불쌍한 사람인 듯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는‘나만큼 힘든 사람은 없어’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자신을 고립시키며, 신세 한탄과 세상에 대한 원망에 빠지게 한다. 그에 비해 ‘자기 연민’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이해하고 스스로 위로와 친절을 건네는 마음이다. 이는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촉진하고, 고통을 돌보고 치유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연민이다. 자기 연민이 있어야 힘들 때 자신을 돌볼 수 있다.
우리를 뛰어나오듯 순간에 나왔던 가출의 시간은 나를 뒤돌아보게 했다. 두렵다고 피하는 것은 답이 아니었다.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자기 동정으로 자신을 더욱 처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연민으로 나를 돌보며 다독이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내 자리에서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무거운 봇짐을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처럼 시린 정이월의 바람 끝에도 봄기운이 넘나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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