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광(광주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교육학 박사)
겨울은 반드시 봄을 데리고 온다
이번 겨울은 예년보다 눈도 많고 한파도 잦았다. 엘리뇨 영향으로 그러하단다. 굳이 환경문제가 아니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이번 겨울을 춥게 지내고 있다. 저녁 무렵 주변에서 쉽게 목격할 수 텅 빈 식당과 주점을 보면서 우리 주변의 가장 보통의 이웃들이 혹한의 겨울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들에게 겨울은 이번 한 철이 아니라 지난 1년 내내 지속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추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즘, 그 가운데서도 더욱 소외되고 결핍된 곳에서 살아가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계층 간 교육격차를 연구하며 만난 초등 4학년 남학생 서민이(가명)는 부모님과 누나와 9평짜리 시영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부모님은 지적장애가 있으나 인근 공단에 있는 작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누나는 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다. 코로나19로 학교 가는 날이 며칠 안 되었던 작년, 서민이의 하루는 핸드폰으로 시작해 핸드폰으로 끝이 났다. 부모님은 아침 7시가 조금 넘어 출근하지만 서민이는 거의 12시가 되어야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열어 카톡을 확인하고 밤새 남긴 친구들의 메시지에 답을 달았다. 아침 일찍 온클(온라인 클래스)에 접속하라는 담임선생님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를 확인하고 컴퓨터 앞으로 가보지만 이미 누나가 차지하고 게임을 하고 있다. 온클을 해야 한다는 서민이와 게임 중이라 비킬 수 없다는 누나의 실랑이는 항상 누나의 승리로 끝난다. 누나가 완강하기보다 공부하려는 서민이의 투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점심 때가 한참 지난 14시, 서민이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다 결국 수납장에서 컵라면을 하나 꺼내 먹는다. 물을 붓고 면이 익기를 기다리고 먹는 동안에도 서민이는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는다. 서민이는 핸드폰으로 유튜브나 웹툰을 보고 게임을 하며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가끔 오후 늦게 친구들과 연락해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딱히 갈 곳이 없어 근처 놀이터에서 어슬렁거리거나, ‘빽다방’ 같이 음료값이 싼 카페에서 청포도 에이드나 스무디를 테이크아웃해 거리를 배회하다 헤어지는 것이 다반사이다.
서민이는 일주일에 세 번 2시간씩 수학 학원을 다니는데, 그 시간은 절대 빠지지 않고 열심히 간다. 그곳에 가면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퇴근할 18시 무렵에 집에 돌아온 서민이는 TV를 켜고 오락프로그램을 본다. 이후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부모님이 잠드는 21시가 되면 본격적인 배그(베틀그라운드) 게임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렇게 서민이는 새벽 2시가 넘을 때까지 배그의 세상에서 계급을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서민이는 현재 꿈이 없다. 대부분 초등학생은 추상적이지만 커서 되고 싶은 것이 많다. 그런데 서민이는 되고 싶은 게 없단다. 11살 서민이가 최소한의 꿈조차 꾸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꿈이 없다는 것은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민이에게 삶은 처음부터 이러한 것이었다. 그래서 본인이 혹한의 야지 한가운데서 홀로 찬바람을 맞고 있음에도 춥다는 것을 못 느끼고 사는 것이다. 이는 강인함이 아니라 위험한 일이다. 우리사회는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교육격차는 계층격차 이어지고 있다. 겨울은 반드시 봄을 데리고 온다. 그러나 겨울의 끝이 있어야 봄이 있다. 3월이 되면, 코로나19가 끝나면, 과연 우리사회에 봄이 올까? 소외된 아이들의 삶에도 봄이 올까? 우리 교육이 아이들삶의 봄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더 깊이 고민하고 지원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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