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호랑이가 무서워하지 않는 곶감[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가]

교육정책연구소 2021. 2. 18. 11:46

박 철 한

 

호랑이가 무서워하지 않는 곶감

 

명절 차례 상이나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것이 호랑이도 무서워 한다는 곶감이다. 곶감은 떫은 감의 껍질을 벗겨 말린 건시를 말한다. 특히 제사상에 반드시 오르는 과실이 감인지라 지금처럼 냉장시설이 일반화되지 않은 시절에 감을 연중 이용하려면 건시가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떫은 감은 건시가 아니면 홍시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홍시의 저장기간은 겨우 이삼십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어머니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중에서 곶감을 무서워 한 호랑이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옛날에 호랑이 한 마리가 먹잇감을 구하려고 산골마을의 어느 집에 들어가 방문 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집에 호랑이가 들어온 사실도 모르고 방안에서는 엄마가 우는 아이를 달래고 있었는데 ‘저기 호랑이가 왔다’고 말하며 겁을 줘도 울음을 그치지 않던 아이가 ‘곶감’이라고 외치자 울음을 뚝 그쳤다. 맛이 좋은 곶감을 준다는 말에 아이가 울음을 그쳤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온다는 말에는 끄떡도 하지 않던 아이가 곶감이라는 말에 울음을 뚝 그치는 것을 본 호랑이는 자기보다 훨씬 더 무서운 곶감이 그곳으로 오는 줄 알고 줄행랑을 쳤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에는 호랑이의 무서움은 실감하지 못할지라도 맛좋은 간식만큼은 기특하게 알고 있는 아이들의 습성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거기에 곶감이 회자된 걸 보면 아마도 군음식거리가 변변치 않았을 예전부터 곶감이 맛좋은 간식의 대명사로 여겨진 듯하다. 하긴 먹을거리가 지천인 요즘에도 곶감만큼 달콤하고 깊은 맛이 나는 간식이 흔치 않은데 예전에야 더 말할 나위 없었으리라.

가을날에 시골길을 가다보면 간혹 감을 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감을 수확하여 곶감을 만들기가 결코 쉽지 않다. 먼저 떫은 감의 껍질을 벗기고 그 감을 꼬챙이에 끼우거나 실로 일일이 묶어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매달아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껍질을 벗은 감이 홍시가 되면서 시나브로 말라 곶감이 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린다. 흔히 어떤 물건이 조금씩 줄어드는 경우를 일컬어 ‘곶감 빼먹듯 한다.’라고 한다. 이는 곶감이 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다 보니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채 마르기도 전에 하나씩 빼어 먹어버리기 일쑤여서 생긴 말이다. 곶감은 이처럼 자연조건에서 서서히 마르도록 해야 참맛이 나는데 그 과정에서 표면에 당분의 일종인 하얀 시상(柿霜)이 끼기도 한다. 따라서 눈으로 보기에 결코 깔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깊은 맛만큼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지난 추석 때의 일이다. 차례를 지낸 후 아이가 곶감 하나를 집어 들고 한입 베어 물더니 이맛살을 찌푸리며 곶감이 떫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곶감이 떫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먹기 싫으면 그만둬라’라고 핀잔을 주었으나 계속 떫다고 주장을 하는 것이다. 사실 확인을 위해서 먹다 남은 곶감을 받아 맛을 보았는데 곶감이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떫은맛에 놀랐다. 겉으로는 붉은 빛깔로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곶감이었으니 눈과 입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릇에 담긴 이십여 개의 곶감을 자세히 살펴보니 십여 개는 먼저 먹었던 것과 같은 빛깔이었고 나머지 십여 개는 표면이 거칠고 빛깔도 희거나 때론 거무튀튀하였다. 이어서 표면이 거친 곶감과 깔끔하게 붉은 빛깔의 곶감을 몇 개씩 먹어 보았는데 이게 웬 일일까. 표면이 거친 곶감은 맛이 좋았으나 붉고 깨끗해 보이는 곶감은 모두 떫은맛이었다. 떫은 곶감이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여기저기 알아보고서야 그 원인이 인간의 욕심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선 중국산이 떫다는 것인데 국내산이건 중국산이건 곶감이 참맛을 내려면 자연조건하에서 오랜 기간 동안 서서히 말려야 한다. 그러나 곶감을 빨리 만들려는 욕심이 앞서다보니 건조기 등 비정상적인 방법을 써서 단시간에 말리기도 한단다. 그렇게 되면 떫은 감이 홍시도 되기 전에 억지로 마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니 겉으로는 깨끗해 보일지라도 어찌 떫지 않을 수 있었으랴. ‘아무리 바빠도 실을 바늘허리에 묶어 쓰지 못한다.’라는 속담처럼 억지로 말린다고 다 곶감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예전부터 모든 곶감이 그와 같이 떪은 맛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어린 아이가 울 때 엄마가 ‘곶감’이라고 외쳤어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을 것이니 호랑이가 무서워할 이유도 없었으리라. 요즘 아무리 편리하고 빠른 것을 추구하는 세상이라지만 호랑이가 무서워하지 않는 곶감 따위는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어린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고 호랑이가 무서워하며 줄행랑을 치는 곶감만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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