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가시 [미래교육신문 김미시인]

교육정책연구소 2021. 3. 17. 13:42

가시

 

김미

 

앗! 비명 나왔다. 지난 추석 명절에 냉동고에서 조기를 꺼내려다 오른손 집게손가락 마디에 조기 지느러미의 가시가 살을 뚫고 들어왔다. 고무장갑 속까지 들어오는 억센 가시였다. 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전에 뽑아내는 것이 처치 방법이라 생각이 들었다. 신속하게 장갑을 벗고 가시를 뽑아내기 위해 안경, 가위, 핀셋, 바늘을 동원했었다. 직접 가시를 건드리면 더 깊숙이 들어가는 법이라고 어른들로부터 배웠다. 되도록 가시 근접 부근을 공략해 이식할 나무뿌리를 파듯이 조심조심 팠었다. 나의 작전 따위를 비웃듯 뽑으려던 가시는 살 속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고개를 사리고 온 정신을 집중해 내가 내 몸을 향해 공략했다가 무너지니 허탈하기까지 했었다. 사람들 관계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고심해 돌려서 말을 했더니 더 큰 화근을 만나게 되는 꼴이 되었다. 살 속으로 들어간 가시라는 놈의 속성이란 내 살처럼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하다. 지가 주인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냥 말로 ‘가시’가 내 온몸을 쥐락펴락하는 거였다. 몇 주 동안은 닿기만 하면 건들지 말라고 고함을 쳤다. 몸까지 으스스 오한이 생겼다. 저녁까지 거른 채 잠자리에 들었다. 나도 부모님의 가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부모님은 내 위로 실패를 거듭하다가 늦둥이로 나를 얻었다. 할머니처럼 늙고 볼품없는 어머니가 학교를 찾아오는 것이 싫었다. 어머니는 그러거나 말거나 막내가 애처롭다며 뭐든 챙기려 들었다. 오일장 부근이 학교이다 보니 하교 시간에 맞춰 일부러 내가 좋아하는 붕어빵을 사 오곤 했었다. 식기 전에 먹이고 싶은 욕심에 그날따라 교실까지 찾아오셨다. 속도 모르는 친구들은 ‘할머니 오셨다’며 나를 찾았다. 왜 추레한 내 어머니의 그 모습을 내가 못 보았겠는가. 누런 동전 깃의 한복 차림에 부스스한 머릿결, 늙고 주름지고 거친 피부, 복도 끝에서 제일 먼저 내 눈에 띄었다. 순간 그대로 뒷문을 향에 줄행랑을 쳐 운동장을 쏜살같이 빠져나가 버렸다. 다른 때는 생각할 새도 없어 잘도 받아먹었다. 그러나 그날 만은 엄마가 내 엄마인 것이 싫은 날이었다. 학교 부근에 사는 반장 엄마가 오전에 다녀갔었다. 반장 엄마는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멋쟁이였다. 큰 키에 젊고 예뻤고 반장처럼 세련된 용모였다. 반장 엄마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왜 하필이면 엄마는 같은 날 오신단 말인가. 엄마에 관한 것이라면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코를 씩씩 불고 어머니가 오기만을 집 마당에서 기다렸다. 어린 나이부터 부모님께 가시 노릇을 했었다. 내 손에 깊숙이 자리를 잡은 가시는 이리저리 슬쩍 건드려도) 통증을 유발하더니 급기야는 곪아 내 배 째란다. 할 수 없이 집 부근 병원을 찾아갔었다. 하필이면 명절 전후 휴일이 문제였다. 혹시 하는 마음에 건너편 병원을 찾았더니 마찬가지였다. 종합병원으로 가야 했다. 별수 없이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로 가야 했다. 아픈 부분을 보였더니 수술을 하자고 했다. 수술 절차는 복잡했었다. 피, 소변, 수술 동의서 알레르기 반응 검사까지 순서를 말했다. 무슨 가시 하나 빼내는 일에 이렇게 많은 절차가 필요하다는 걸까 괜히 왔나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빈대 한 마리의 기세가 급기야는 초가삼간까지 들썩이게 하는 꼴이라며 염불을 외듯 입술을 들썩거리며 수술 절차를 준비했었다. 소변검사를 위해 소변 통을 쥐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병원에서 요구하는 수술 절차는 꽤나 까다로웠다. 매니큐어와 물도 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 병원 측에서는 상세한 설명까지 필요 없는 절차라는 눈치였다. 요구에 따라 모든 절차를 마치고 푸른 수술복을 입고 머리에는 캡까지 썼다. 마취 주사가 몸속으로 스며들자 나는 차츰 모든 기능의 맥이 풀렸고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회복실에 누워 있는 느낌이 오자 허둥댔다. 나를 본 간호사가 일렀다. 링거도 더 맞아야 한다는 거다. 회복되기까지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며 굳이 더 누워 기다리라고 했다. 내 몸의 가시 하나를 뽑는데 이렇게 많은 절차가 필요했나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오늘도 남편에게 생선 가시보다 더 억센 가시로 찔렀다. 남편은 무슨 까닭인지 바튼 기침을 해댄다. 결혼 초에는 건강에 문제가 있나 걱정이 많았다. 이제 보니 무심한 버릇이란 생각하니 남편을 향한 미운 마음이 왈칵 치밀었다. 남편의 기침 소리는 남에게 불쾌감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전부터 그 기침을 해대는 남편을 향해 독설을 가했다. “한 남자와 죽을 때까지 사는 일은 뼈를 깎는 인내가 필요하며 죽은 후 사리를 헤아리면 일 년에 하나씩은 생길 거라” 했다. 눈을 껌뻑거리며 바라보는 눈길이 마취되어가는 내 모습 같았다. 무작정 찔렀던 가시의 통증을 기억해 보니 두려웠다. 손가락에 들어갔던 가시는 의료기술로 빼내지만 내 입으로 날렸던 독설은 어떻게 빼내야 할까. 의식이 명료해질수록 육신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파졌다. 그동안 내가 남을 향해 얼마나 많은 가시를 심었나. 우선은 내 가족들에게 더욱더 심했을 것이며 나와 가까이했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억센 가시를 심었을까? 가시를 빼내려면 어디 가슴, 입, 눈 어느 부위가 해당 될까 두렵다. 신발 신는 것이 조심스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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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김미 앗! 비명 나왔다. 지난 추석 명절에 냉동고에서 조기를 꺼내려다 오른손 집게손가락 마디에 조기 지느러미의 가시가 살을 뚫고 들어왔다. 고무장갑 속까지 들어오는 억센 가시였다. 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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