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철 한
아니 땐 굴뚝에서 나는 연기
한적한 시골길에 먼동이 터온다. 저만치 개울너머 느티나무가 서있는 큰 마을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아침을 지을 시간인데도 굴뚝에서 나는 연기는 고작 한 줄기 뿐이다. 비록 한 줄기의 연기일지언정 저 불로 따뜻해진 온돌방 아랫목에서 청국장이라도 뜨고 있을 만한 정겨운 모습이다. 두 마장쯤 떨어진 옆 마을에는 그마져도 볼 수가 없다. 아마도 그 곳에서는 가마솥이 아니라 전기밥솥에서 밥이 익어갈 것이며 온돌방을 대신하여 온수보일러가 윙윙거리고 있으리라. 뒷산에 송림이 우거지고 대나무 숲까지 어우러져 운치 있는 마을이지만 포근함을 잃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이 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도 않았는데 굴뚝에서 연기가 날 리 없다는 말로 반드시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않아도 굴뚝에서 연기가 날 수 있다. 예전 시골의 온돌방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굴뚝으로 연기가 빠져나가는 사이 구들장이 달궈 따뜻해지는 구조이다. 구들장아래 연기가 나가는 통로를 고래라 한다. 아궁이에 나무를 넣고 불을 때면 불티가 연기와 함께 고래로 빨려 들어간다. 그 중에는 완전히 타지 않고 입자가 작은 숯 형태로 들어간 것들이 많다. 고래에 숯가루 형태의 분진이 많이 쌓여 공간이 좁아지면 연기가 잘 빠지지 않으므로 불이 제대로 타지 않는다. 그렇다고 방의 구들장을 뜯어내고 고래에 쌓인 분진을 긁어내기가 어디 쉬운 일이었으랴.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는 묘책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연기가 많이 나는 청솔가지 등을 아궁이에 가득 넣고 태우면서 부뚜막에 올라서서 헌 가마니 등으로 아궁이 입구를 힘차게 내리치는 방법이다. 언뜻 생각하면 아궁이에서 공기 압력을 가해 고래에 쌓인 분진을 굴뚝 쪽으로 밀어내기 위함일 것 같다. 하지만 주목적은 그게 아니라 불기운을 안으로 깊이 들어가게 하여 고래에 쌓인 숯가루 형태의 분진을 태우기 위함이다. 부피가 큰 숯가루 형태보다는 완전히 타서 재가 되면 그 부피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고래에 쌓인 분진에 불이 붙으면 담배가 타들어가듯 서서히 타게 되는데 길게는 이삼일이 걸리기도 한다. 고래의 분진이 탈 때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않아도 굴뚝에서 연기가 나며 당연히 방도 뜨겁게 달궈진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셈이다.
오늘날에는 온돌방의 구들장대신 호스를 깔고 뜨거운 물이 들어가도록 하여 방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온수보일러가 대중화되었다. 전기저항으로 열을 내는 제품도 그 종류가 다양하다. 온돌방이 방바닥 난방식의 대명사가 되어 오늘날 온수보일러나 전기 저항을 이용한 난방까지도 모두 온돌방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온돌’이란 불기운으로 달궈지는 구들장을 말한다. 구들장으로 이용하려면 우선 넓적하고 적당히 얇은 돌이어야 한다. 너무 두꺼우면 불을 웬만히 때서는 달궈지지 않으니 구들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 너무 얇으면 아궁이에 불을 때자마자 곧바로 달궈졌다가 금방 식어버릴 것이니 그 또한 문제가 있다. 조건은 그 뿐만이 아니다. 크기도 알맞아야 하고 모양도 네모가 반듯하면 좋으련만 제멋대로 생긴 자연석에서 그와 같은 돌을 구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전의 온돌방은 하루 두세 번 부엌의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이 한겨울 난방의 전부였다. 그것도 방안의 난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마솥에 음식을 익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불을 때는 시간은 오직 가마솥에 익힐 음식의 양에 따라 결정되었을 뿐 특별히 방안의 난방에 신경 쓰지 않았어도 아침까지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간혹 겨울철에 ‘군불’이라 하여 음식을 익힐 일이 없어도 오로지 난방을 위해 물을 끓이며 불을 때는 수가 있기는 하다. 여기에서 군불이란 쓸데없이 때는 불이란 의미이다. 방을 따뜻하게 하는 불도 음식을 익히는 불만큼이나 중요할진데 쓸데없는 불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끼니를 잇기 위한 불만으로도 한겨울을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기에 그 외로 때는 불은 쓸데없다는 의미일수도 있다. 만약 요즘의 난방기를 예전의 온돌방처럼 아침, 저녁으로만 일정시간 작동시킨다면 한겨울을 보내기 어려울 것이니 온돌방의 우수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으랴. 한번 달궈지면 온기가 오래 유지되는 돌의 특성을 이용하여 음식을 장만하며 난방까지 해결했던 조상들의 지혜는 놀랄 만하다.
‘온돌방’하면 우선 고향이나 부모님이 떠오른다. 엄동설한 온돌방 아랫목의 포근함이란 오늘날의 난방기와는 그 느낌이 다르다. 요즘에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이 거의 없으니 어느덧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그리워진다. 가마솥에 삭정이 불로 밥을 지어 푼주에 퍼놓고 누룽지를 긁어 실컷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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