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광(광주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교육학 박사)
공정하다는 착각 속에 계층이 세습되는 사회
우리 교육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가? 최근 ‘정의’ 열풍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들 교수의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과 조귀동 작가가 쓴 ‘세습 중산층 사회’라는 책이 사회학 서적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두 책은 그동안 당연시 했던 우리사회의 능력주의에 대한 의문과 교육을 통한 계층사다리의 허구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반면 현실을 직시한 참담함과 암울함 또한 크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IMF 시기를 거치며 계층 격차가 심화되었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격차는 더는 메울 수 없는 초격차가 되어버렸다. 이 초격차는 단순히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만이 아니라 좋은 직업과 사회경제적 지위를 확보하는 형태까지 세습하게 되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작년부터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이 격차는 극복이 어려울 정도로 벌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양극화의 중심에 교육이 있다. 현대사회가 귀속주의에서 업적주의로 전환되면서 세습되는 계급대신 획득하는 계층이 사회 체제의 근간이 되었다. 계층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이동할 수 있었으며, 그 매개가 능력주의에 근거한 교육 시스템이었다. 이는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갖고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갖게 되는 매우 공정한 룰처럼 보인다.
한편 중산층 이상이 갖는 직업으로 소위 ‘번듯한’ 일자리는 초임 봉급 월 300만 원 이상 정규직 또는 전문직이라고 할 때, 2017년 기준 연 7만 2,000명만이 여기에 해당된다는 통계가 있다. 이는 동일 연령에서 고등학교 졸업 이상 학력자의 11.4%에 해당되며, 서울 상위권 대학 졸업자 중 상위 30%이내에 들어야 그 안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진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시장 상위 11.4%에 들어가야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를 누리며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고, 이를 위한 전초전으로 서울 상위권 대학 입시가 치열한 교육전쟁으로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대치동의 사교육 시장은 성수기와 극성수기뿐이다. 대학 입시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변화된 입시에 맞추어 학생과 학부모의 욕망을 실현시켜 주는 곳이 바로 대치동을 위시한 사교육 시장이다. 문제는 사교육을 감당할 경제적, 문화적 자본을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부모의 경제력은 기본이고, 사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정보와 물리적 거리 또한 매우 중요하다. 결국 서울에 사는 중산층 이상 가정 학생들과 그 외 학생들 간 사교육 접근성은 학력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학 입시에서 수시와 정시 중 어느 쪽 비중을 늘리든 중산층 이상 부모는 자녀 교육에 많은 자본을 투여할 수 있다. 그리고 공정한 평가를 통해 아이들의 순위는 정해지며 그 순위가 부모의 계층을 세습하는 통행증이 된다. 지금껏 교육불평등 해소를 위한 수많은 정책이 추진되었음에도 교육격차가 심화되는 것은 매우 암담한 일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공정한 능력주의 담론이 상위계층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이 진정으로 공정한가?’에 대한 물음을 수시로 던지며, 보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배경보다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교육복지나 기회균등제도 등을 넘어서는 사회 전체적인 체제 변화가 선행되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너무 소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끈임 없이 약자들의 목소리, 소외된 자들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하며 우리 사회와 우리 교육이 진정으로 공정해지는 걸음을 한 발짝씩 내딛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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