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호
‘적당히’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립다’는 문장을 읽다가
뜨거운 마음을 누그릴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데지 않고,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고
그리움에게로 갈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괜찮아,
마른 입술로 건네는
저녁 어스름의 눈빛처럼
아예
슬픔을 모르는 말이면 좋겠다 싶기도 했다가,
출렁한 어둠을 이어놓은 다리 위로
혹은 아래로
힘겹게 바람이 지나쳐갈 때마다
거푸 무딘 한숨만을 거듭하는
밤물결 같은 말이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적당히’라는 말은 아니었다,
외로워도 웃어야 하는
꽃 같은 애련함도, 가련함도 아니었다.
명치끝에 숯을 쌓으며
완강하게 몸을 거스르며 타오르는 불처럼
까무러지도록 큰소리로 울지 않으면
그 누구도 붙잡아 줄 수 없는
그런 말은 아니었다.
때로는
황홀한 결별을 위하여
한 잎 한 잎, 붉은 살을 떼어내는 낙화처럼
오래도록
앓지 않고 깨어난 사랑은 없어
‘적당히’라는 말은 숫제 아니었다.
-------------------- 【시작메모】 ----------------------------------
삶이 자꾸만 곤고하고 어렵다고 느껴질 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적당히’라는 말이었습니다. ‘대충 통할 수 있을 만큼의 요령으로’ 살아간다면 조금은 피곤함을 덜어낼 수 있으리라는 얄팍한 생각(?)이었겠지요. 그렇습니다. 머리를 싸매고 골몰할 필요도 없고, 이 궁리 저 궁리로 밤을 지새울 까닭도 없어서 아무런 근심도 없이 무탈(?)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삶이란 무심히 세월을 흘려만 보내는 일도 아니고, 주어진 상황에 몸을 굽히며 평안과 안락만을 구하는 타협도 아니어서 주체로서 존재하는 내 몫의 무엇을 위하여 숯불처럼 뜨겁게 타오를 수 있는 완강한 열정과 때로는 복받치는 설움으로 가슴을 찢는 아픔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온전함이란 적당함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한껏, 혼신의 힘을 다함으로써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제 몫의 꿈을 기대하는 까닭입니다. 무릇 나의 삶을 붙잡아 줄 이는 정작 그 누구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아무래도 ‘적당히’라는 말은 삶에 대한 인간의 나약함도, 예의도 아니라는 생각을 감히 해봅니다. 부디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등짐이라할지라도 기꺼이 짊어지고 끄덕끄덕 살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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