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학생들이 크로노스(Chronos)가 아닌 카이로스(Kairos) 시간을 갖게 해야 한다.(미래뉴스&미래교육신문)

교육정책연구소 2016. 11. 24. 11:14

 

황윤한(광주교대 교수)

학생들이 크로노스(Chronos)가 아닌

카이로스(Kairos) 시간을 갖게 해야 한다.

그리스어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 크로노스(χρόνος; chronos)와 카이로스(καιρός; kairos)의 2가지가 있다.

크로노스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을 의미하고, 카이로스는 개인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인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어차피 흘러가는 일상적인 시간이라 잡을 수도 없고, 또 멈출 수도 없다. 아낀다고 느리게 가는 것이 아니요, 흥청망청 쓴다고 해서 빨리 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카이로스는 각자가 하기 나름이다. 사람에 따라서 빨리 갈 수도 있고, 또 느리게 갈 수도 있다. 열심히 어떤 일에 몰두하다보면 금방 지나가버리기도 하고, 하기가 싫어 이리저리 피하려고 하면 지루하게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스인들은 비록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할지라도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 시간, 즉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을 카이로스라 불렀다. 따라서 카이로스는 '기회 (찬스)'라는 의미도 동시에 담고 있다.

카이로스의 진정한 의미가 '기회 (찬스)'라는 것은 기원전 4세기경에 조각가 리시포스(Lysippos)가 대리석에 부조한 「카이로스」(Kairos)라는 조각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에 있는 이 조각품을 보면 몇 가지 색다른 점이 있다. 앞머리에는 풍성한 머리카락이 있지만, 뒷머리는 빡빡 대머리다. 등에 커다란 두 날개가 있고, 또 발에도 작은 날개가 달려 있다.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고, 오른 손에는 날카로운 칼까지 들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카이로스는 제우스의 아들 ‘기회의 신’이다. 앞머리는 길어서 쉽게 머리카락을 움켜쥘 수 있지만, 한번 지나가면 뒤에서는 머리카락이 없어 잡아 챌 수 없다. 기회는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이다. 저울은 기회가 앞에 있을 때 얼른 재어봐서 잡을 것인지 아닌지를 빨리 분별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판단이 끝나면 칼같이 결단해야 한다. 카이로스는 두 날개와 발뒤꿈치에 달린 날개로 항상 달아날 준비가 되어 있다. 카이로스가 왔음에도 잡지 못하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학교와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세월을 아끼라!’라고 가르친다. 또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학생들이 하루하루를 아무런 생각 없이 크로노스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는 경우가 많다. 똑같이 초·중·고등학교를 나와도 학생들의 미래가 다른 것은 어떤 사람은 크로노스 시간을 보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카이로스로서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와 교사들은 학생들이 카이로스로서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학생들이 카이로스로서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려면, 먼저 꿈을 가져야 한다. 미래에 어떤 모습의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한 꿈이 없다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 꿈이 있어야 목표가 설정되고, 목표를 향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꿈이 있으면, 그 꿈을 향해 가는 길에 장애물이 나타나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꿈은 ‘가져라!’고 해서 가져지는 것이 아니다. 꿈을 가질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경험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학교와 교사들은 학생들이 꿈을 발견하고,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여야 한다.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사가 연관된 맞춤형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운영하여야 한다. 각자가 갖고 있는 흥미와 관심사가 배움으로 연결될 수 있는 학습 환경이 조성되어져야 한다. 학생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어야 하고, 그들의 꿈에 가장 적절한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학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예비교사를 선발하는 면접 시간에 수험생들에게 장래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얼른 ‘초등교사’라고 대답한다.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이냐고 물어보면 또한 ‘초등교사’라고 대답한다. 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를 보면, 자신의 꿈과 미래의 직업을 위해 학교에서 무슨 노력을 했으며, 학교에서는 어떻게 학생들을 도와주었는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카이로스로서의 시간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를 아는 것이다. 많은 시간을 가르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시간은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늘릴 수도 있고, 또 얼마든지 자신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꿀 수도 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카이로스로서의 시간을 갖게 하고, 그들의 미래의 꿈을 향해 힘차게 달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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