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졸업생, 런웨이를 걷다[미래뉴스제공]

교육정책연구소 2017. 2. 23. 10:50


최성광(교육학 박사)

 졸업생, 런웨이를 걷다

바야흐로 졸업 시즌이 되었다. ‘졸업’ 하면 떠오른 것은 아마도 눈물일 것이다. 5060세대의 졸업식은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고 한다. 졸업이 주는 느낌이 감사, 헤어짐, 아쉬움과 같은 슬픈 정서로 가득했던 시절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속한 3040세대에게 졸업식과 눈물은 다소 소원하다. 물론 마음 한편에 서운함과 아쉬움이 진하게 자리하는 것은 선배 세대와 같지만, 졸업식에서 눈물을 보이는 일이 점점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3040세대는 성과주의교육과 발전주의교육 담론에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래서 콩나물시루 교실에서 1등만이 모든 영광을 독차지하던 엘리트 교육이 당연시 되었다. 1등 중의 1등은 전교 1등이다. 전교 1등은 모든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영웅시되던 인물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주어지는 여러 가지 혜택과 권한을 수백 명의 동기들 중 가장 먼저 부여받았다.

심지어 전교 1등은 졸업식에서도 빛이 났다. 2월의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운동장에 서서 전교 1등이 받는 대여섯 개 상장 내용을 들으며 박수를 치고 있노라면, 발이 시리고 몸도 얼어붙기 일쑤였다. 너무 지루해 대열을 벗어나 옆 친구와 잡담하다 걸리기라도 하면 곧장 선생님의 고성이 날아들었다. 그나마 평범하던 학생들이 받을 수 있었던 최고의 영예는 개근상이었다. 그 개근상마저도 평범한 학생들이 연단에 올라가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홍길동 외 00명!” 나는 그저 00명 속 1명일뿐이었다.

분명 나의 졸업식인데, 그 졸업식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다. 엘리트 학생 몇 명만이 주목을 받고 다수의 평범한 학생들은 차갑고 황량한 운동장에 줄지어 서서 그들을 위해 박수를 쳐야 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3040세대는 졸업식이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는 그저 서운함과 아쉬움의 마음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졸업식 끝나고 친구들과 짜장면 먹을 생각이 더 간절했던 것 같다.

각설하고 얼마 전, 내가 맡은 6학년은 특색 있는 졸업식을 치렀다. 강당 중앙에 패션쇼장 런웨이를 만들어 졸업생 100명 전원이 주인공이 되어 개성을 뽐내며 입장하도록 하였다. 학생 한명 한명이 각각 모델처럼 런웨이를 걸을 때 무대 뒤 대형화면에 학생의 사진이 담긴 대형 프로필을 띄웠고, 신나는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화려한 조명을 비추었다. 객석에는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이 뜨겁게 환호해 주었다. 수상도 졸업생 100명 전원이 연단에 올라 교장선생님께 직접 받고 악수도 나눴다. 형식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송사와 답사를 없앤 대신, 후배들의 악기 연주, 졸업생 엄마합창단의 축가, 6학년담임선생님들의 마음의 편지로 축하무대를 마련했다. 마지막 순서로 부른 졸업식 노래도 초등학생들이 부르기 쉽고 가사가 의미 있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졸업식에 참석한 모두가 함께 불렀다.

아이들은 홀로 무대에 서야하는 긴장감도 있었지만 객석에서 모두가 축하해 주는 것 같아 자신이 졸업식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모두가 빛나서 좋았던 졸업식을 마치고 마지막 종례를 위해 교실로 돌아왔다. 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여학생들이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감성 충만한 남학생 몇 명도 눈시울이 빨개졌다. 자식처럼 사랑스럽던 우리반 아이들 모두를 빛나게 해주고 싶었던 나의 마음을 알았을까? 우리반 졸업식은 아이들의 눈물로 따뜻함과 감동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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