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농부를 꿈꾸던 소년, 청년농부가 되다[미래교육신문 최성광기고]

교육정책연구소 2020. 12. 17. 11:06

최성광(광주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교육학 박사)

농부를 꿈꾸던 소년, 청년농부가 되다

 

13년 전, 나는 도시 외곽 농촌지역 초등학교에서 5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세련된 도시 아이들과 달리 그곳 아이들은 투박하지만 매우 순수했다. 당시 우리반 전체 학생은 10명이었는데, 나는 그 아이들과 농촌의 아름다운 품에서 함께 공부하고 뛰놀며 아이들과 더불어 성장할 수 있었다. 아이들 역시 나를 무척 좋아해서 자투리 시간이나 급식을 먹으러 함께 이동할 때면 내게 장난을 걸거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큰형처럼 잘 따랐다. 그중 유난히 수줍음도 많고 순진했던 남학생 용태(가명)는 유독 나를 더 좋아했다. 내가 학습자료를 들고 이동할 때면 쏜살같이 달려와 말없이 들어주고, 쉬는 시간에 뜬금없이 내 뒤로 와서 어깨를 주무르다가 씩 웃으며 좋아하는 감정을 은은하게 표현했던 아이였다.

학교 앞 들녘에 벼들이 익어가던 가을 어느 날, 국어 시간에 아이들과 미래의 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반 아이들이 각자 축구선수, 과학자, 공무원 등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과 그 이유를 말하는데, 용태가 “저는 농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자 교실은 이내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이들이 듣기에 미래의 꿈으로 농부는 너무 소박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사실 나도 교직 생활 중 농부가 되고 싶다는 학생은 용태가 유일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학급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용태에게 농부가 되고 싶은 이유를 마저 발표하게 하였다.

용태는 우리가 먹는 쌀과 야채를 농약도 안 하고 깨끗하게 키워서 사람들에게 팔고 싶다고 하였다. 갈수록 먹는 것이 불안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안전하게 키운 야채를 비싸더라도 더 많이 살 것이라고 하였다. 초등 5학년이 곡물 전쟁이나 스마트팜 같은 향후 먹거리 산업을 예견하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이유와 소신이 명확해 너무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성공한 농부들의 사례와 생명과 직결된 1차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용태의 발표를 크게 칭찬해주었다. 사실 용태는 딱히 되고 싶은 게 없어서 농부가 되겠다고 말했는데, 선생님의 칭찬과 학급 친구들의 격한 박수를 받고 매우 고무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그 아이들은 졸업을 했고, 지금까지 나와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용태가 연락을 해왔다. 용태는 군대 전역을 하고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어릴 때 꿈꾸던 청년농부가 된 것이다. 용태에게 초등학교 시절 꿈 이야기를 했더니 그때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년농부가 된 이유는 13년 전 농부를 꿈꾸던 소년이 품었던 야심찬 포부 그대로였다. 사람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농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다며 성공한 농부가 되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요즘은 가을부터 공들여 키운 토마토를 수확하고 있다며 근황을 알렸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좋아하지도 않는 토마토를 웃돈까지 얹어 3박스나 주문했다. 그리고 평소 사용하지 않은 SNS에 용태의 사연을 올려 토마토 판매 홍보까지 하는 제자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다. 용태는 부담스러웠는지 나의 도움을 사양하였지만, 나는 잘 성장한 제자에게 느끼는 스승의 고마운 마음을 거부하지 말라고 하였다.

지금쯤 용태는 내게 보내려고 싱싱하고 좋은 토마토를 따서 박스가 벌어질 정도로 가득 담고 있을 것이다. 농부를 꿈꾸던 나의 제자가 청년농부가 되어 키운 농작물을 먹는다는 것은 형용할 수 없는 큰 감동일 것이다. 벌써 박스를 열어 마주할 토마토에 담긴 청년농부의 꿈과 진심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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