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철 한
우리의 맛
우리의 식탁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는 대표음식 중에 김치가 있다. 김치! 하면 제일먼저 어느 공원에서 김치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던 미군병사들이 떠오른다. 김치와 관련하여 흔히 연상할 수 있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을 터인데 하필 미군병사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 사연은 이렇다.
언젠가 미군부대 근처 어느 공원을 여행하면서 우연히 미군병사 둘이서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맥주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김치를 안주로 먹고 있었다. 그들이 김치를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지만 맥주 한 모금에 김치는 연거푸 서 너 번씩이나 젓가락도 없이 손으로 집어먹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의 그 모습이 의아하고 반갑기도 하여 다가갔는데 김치가 맛있느냐는 물음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러자 그중 한 병사가 김치 아주 맛있다고 서툰 우리말로 대답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손가락에 묻은 양념까지 연신 빨아대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김치를 그토록 맛있게 먹어준 그들이 고맙기도 하고 그 무언지 모를 만족감에 가슴이 뿌듯했던 순간이었다.
설은 추석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꼽힌다. 해마다 명절이면 민족의 대이동으로 까지 일컬어지는 수많은 귀향 인파에서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귀향인파와 연휴 등 외형적인 전통계승 모습과는 달리 과거에는 볼 수 있었던 설음식 만드는 모습들을 지금은 여간해서 찾아보기 힘들다. 설이 되면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들께서는 유과나 강정 등 각종 한과를 만들어 차례를 지낸다. 한과는 보통 음력 섣달이 되면서부터 시작하여 거의 한달 가량을 정성들여 준비하는데 그것은 만드는 과정이 다소 까다롭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한과 만드는 과정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한 가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어릴 때 설날을 앞두고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강정 생각이 난다. 강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쌀을 시루에 쪄서 고두밥을 만들어 말린 다음 솥에 타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볶아 튀겨 놓는다. 그 다음에는 조청을 만들어야 되는데 조청을 만드는 일 또한 쉽지가 않아서 그 과정이 복잡하다. 우선 식혜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미리 엿기름을 기르고 말려서 맷돌에 갈아두어야 한다. 다음에는 고두밥을 만들어 찌꺼기가 걸러지도록 자루에 넣은 엿기름가루와 함께 미지근한 물에 담근다. 달콤한 맛의 식혜가 되려면 그 물이 식지 않도록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에서 하루 이틀 적당히 발효시켜야 한다. 식혜가 만들어지면 물만 짜내어 솥에 넣고 오랫동안 장작불로 고아야 조청을 만들 수 있다. 강정 만드는 최종 단계로는 튀겨진 쌀알과 조청을 섞어 일정 모양으로 빚어내는 일로서 그때서야 비로소 모든 과정이 끝나게 된다. 생각할수록 무척이나 복잡하고 정성스런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한과가 제과점이나 공장에서 손쉽게 만들어 지는 과자류와 비교 할 수 없는 깊은 맛이 나는 이유는 바로 그 정성 때문일 것이다.
자연생의 꿀을 청이라 하며 인공적인 꿀이라 하여 조청이라 한다. 흔히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꿀맛’이라고 했던 점에 비추어보면 예로부터 우리민족이 꿀을 매우 맛이 있고 귀한 음식으로 여겼던 것 같다. 조청을 만드는 주재료인 엿기름이란 싹을 틔운 겉보리를 말한다. 신비한 것은 오래전에 이미 우리 조상들은 보리가 발아될 때 생성되는 천연 당분을 이용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식물 생리에 관한 연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그와 같은 당분 생성 원리를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절로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음식을 보면 김치와 한과 외에도 콩을 발효시켜 담그는 된장이나 고추장, 삶은 콩을 적당한 온도에서 이삼 일 단기숙성 시킨 청국장 등 수없이 많다. 이런 우리 음식들은 구수한 맛도 일품이지만 건강에도 좋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이미 밝혀진바 있다. 하지만 우리 맛의 계승차원에서 현실을 보면 김치를 세계에 알렸다고 그저 좋아하고만 있을 일이 결코 아니어서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대부분의 어머니들께서는 전통음식들을 직접 만들어 자녀들에게 보내줄지언정 만드는 법은 잘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궁중음식이나 까다로운 한과는 두고라도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을 담근다든지 청국장을 발효시키는 요령은 물론 식혜를 빚는 과정정도는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만약 그것마저도 모른다면 앞으로 우리음식들은 시나브로 사라져 머지않아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요즘 어린이들이 우리의 음식을 외면한다는데 있는데 이대로라면 앞으로 자라나는 어린세대들이 우리의 맛을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시골 할머니 곁에서 자란 둘 째 아이가 지금은 성인이 되었지만 어릴 때부터 전통음식을 많이 먹어보아서인지 중학교 때에도 밥상에 청국장과‘소시지’를 나란히 놓아주면 언제나 청국장 쪽으로 손이 먼저 갔었다. 그 아이가 여중학교 시절에 같은 반 친구들이 자기의 식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가끔 했었는데 당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 같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마음이 무거웠었다. 우리 맛의 근본이 되는 전통음식이 금세기는 물론 다음세기까지도 고스란히 계승되어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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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iraenews.co.kr/news_gisa/gisa_view.htm?gisa_category=02060000&gisa_idx=30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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