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무지개와 닮은 우리말[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0. 9. 17. 11:10

철 한

 

무지개와 닮은 우리말

초여름 휴일에 한적한 교외의 어느 외식업소에 들어섰다. 강아지가 손님에게 부닐며 꼬리치는 마당과 주위 경관이 고즈넉하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인근 숲정이에서 뻐꾸기가 여름을 재촉하고 가끔 구구대는 멧비둘기 소리에 고향의 정겨움이 실렸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데 저만치 벽면의 ‘추가 반찬은 셀프’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그냥 ‘추가 반찬은 스스로’ 정도로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으랴. 정겹던 감정이 뇌리에서 자리를 박찬다. 고향의 정겨움을 지녔으면서도 그 정취를 반감하는 외래어를 동반하여 찾는 이의 기분을 쓸까스르는 그곳이었다.

외래어뿐만 아니라 쉬운 우리말을 두고 한자어를 쓰는 경우가 더 흔하여 문제다. 그 점에 관해 일부에서는 “우리말로 표현하면 한자어보다 말이 더 길어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자어 ‘입구’나 ‘출구’를 우리말 ‘들어가는 곳’이나 ‘나가는 곳‘으로 표기해야 하는 경우를 이르리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길에서 공사를 하며 세워두는 안내판에 ’100미터 전방 공사 중‘보다 ’100미터 앞 공사 중‘이 더 알기 쉽다는 뜻이다. 그런가하면 우리말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쓰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식당 메뉴판의 ‘누룽지(솥 바닥에 눌어붙은 밥)’는 ‘눌은밥(솥 바닥에 눌어붙은 밥에 물을 부어 끓인 밥)’이 올바른데 오래도록 고쳐지지 않는다. 영어권 나라에서 이르는 ‘문법나치(Grammar Nazis)’란 "집요하게 다른 사람의 문법에 대해 지적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간혹 음식점의 불필요한 외래어나 잘못된 우리말을 보고 주인에게 조심스레 비사치기도 하는데 대부분 고개를 끄떡이지만 그 후 올바로 고쳤는지는 알 수 없다.

일본에서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독도의 원래 이름은 '독섬(돌섬)'이었다고 한다. 1882년 검찰사 이규원이 고종의 명으로 작성한 ‘울릉도검찰일기’에는 울릉도주민 140명 가운데 전라도 사람이 115명(고흥 94명, 순천 21명), 강원도 14명, 경상도 10명, 경기 1명(파주)으로 나와 있단다. 당시 ‘산림훼손 금지령’으로 육지에서 선박을 건조하지 못하게 되자 나무가 울창한 울릉도로 옮겨가 선박을 건조하고 어로활동을 한 그들은 현 독도를 ‘독섬’으로 불렀는데 그것은 ‘돌’의 전라도 사투리가 ‘독’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고종 황제가 1900년 울릉도를 군으로 승격시키면서 공포한 칙령 41호 2조에는 “군청의 위치는 태하동으로 하고 구역은 울릉도와 석도(石島)를 관할할 것”으로 되어있다는데 그것만으로도 예전부터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바위섬인 우리의 독도를 두고 일본에서는 왜 터무니없이 '다케시마(竹島)‘라 부르게 된 것일까? 발음을 보면 그 해답을 알 수 있다는데 일본인들은 울릉도의 옛 주민들이 현 독도를 독섬(돌섬)이라 부르자 그 말을 따라 ‘독(돌)’을 ‘다케’로, ‘섬’을 ‘시마’로 발음하였고 그것이 ‘대나무섬’이란 뜻의 ‘다케시마’가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당초 울릉군에서 섬 이름을 옮겨 적을 때 그냥 우리말로 ‘돌섬(독섬)’이라 하면 될 것을 굳이 이두(吏頭)처럼 한자음인 독(獨)을 차용하고 섬을 뜻하는 도(島)를 합성하여 적은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정겨운 우리이름 ‘돌섬’이 ‘독도(외로운 섬)’로 탈바꿈하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세계에는 6,000여종의 언어가 있다는데 연간 20~30종이 사라지고 있어 절반가량이 멸종위기에 처해있으며 90%는 인터넷에 표현되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음소문자로 발음수가 2,200개에 달하며 500개 미만인 일본어나 중국어와 비교할 때 어느 정도 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은 닭 우는 소리, 바람 소리, 천둥번개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실제와 가깝게 전달하는 측면에서 우리말을 따르지 못한다. 아울러 유네스코에서 문맹퇴치 공로자에게 주는 상 이름을 ‘세종대왕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이라 하였고 오늘날 세계 공용어로 일컫는 영어를 놔두고 한글을 소수민족의 언어로 사용토록 권장하고 있다는 점도 놀랍다. 이는 국제적으로 이미 그 우수성을 인정한 것이며 상대적으로 발음수가 많은 한글인지라 소수민족 말과 보다 더 가깝게 발음하고 적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언어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의사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을 말한다. 흔히 영어문장을 한글로 바꿀 때보다 한글문장을 영어로 바꿀 때 본래의 뜻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그것은 ‘stress(스트레스)’와 같이 영어를 우리말로 표현하기 곤란한 경우보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음을 뜻한다. 예를 들면 우리말 ‘푸르다’와 관련하여 푸르께하다, 푸르스름하다, 푸르무레하다, 푸르디푸르다, 푸르데데하다, 푸르뎅뎅하다, 푸르죽죽하다, 푸르퉁퉁하다 등의 다양한 낱말이 있는데 그 뜻을 살펴보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지극히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영어 blue(푸른)와 관련된 낱말이라야 고작, blueish(푸른빛을 띤), bluey(푸르스름한) 정도이며 그 외에는 sordidly bluish(지저분하게 푸르스름하다/푸르데데하다)처럼 둘 이상의 낱말을 나열하여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낱말이 상대적으로 다양하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 표현과 의사소통에 그만큼 더 유리하다는 것이니 누가 우리말의 우수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으랴.

우리말을 쓴다 하여 축구에서조차 ‘코너킥’을 ‘구석차기’로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우리나라가 종주국인 태권도 구령이 모두 우리말이듯이 축구는 본래 영어권 나라에서 시작된 운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우수성을 인정하는 한글인데도 오히려 우리가 푸대접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무지개를 먼 곳에서 보면 일곱 빛깔이 선명하고 아름답지만 막상 그 안에 뒤섞이면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우리말의 찬란한 빛을 먼 나라에서도 빤히 보고 있건만 정작 그 말속에 파묻혀 살면서도 못 보고 있으니 어쩌면 우리말은 무지개와 닮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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