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세밑을 보내며[미래뉴스제공]

교육정책연구소 2016. 12. 22. 11:09



최성광(교육학 박사)

 

세밑을 보내며

올해도 벌써 세밑에 이르렀다. 연둣빛 이른 봄의 따사로움을 지나, 진녹의 여름 폭염을 견디며, 오색 가을의 상쾌함을 누리다 보니 금세 겨울의 한복판에 접어들었다. 겨울은 매서운 추위로 인해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 계절이다. 이 춥고 힘든 겨울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혹독하다. 그래서 이 시기만 되면 불우한 이웃을 돕자는 캠페인과 행사가 많아진다.

나 역시 세밑이 되면 힘든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든다. 내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다닐 때, 12월이 되면 선생님은 각 반에 할당된 크리스마스 실(Christmas seal)이나 장애인들이 만든 크리스마스 엽서와 장식품 등을 교실에서 팔았다. 그때마다 나와 내 친구들은 이것들을 사지 않으면 동정심 없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앞뒤 재지 않고 그것들을 사겠다고 신청했다. 또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도 매년 학교, 학급 단위로 열렸는데 나는 항상 일정 금액 이상의 돈을 냈었다. 이후 중고등학교에서도 겨울이 되면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열고 나와 내 또래들은 거기에 참여했었기 때문에 12월이 되면 의례히 구제활동에 대한 생각이 습관처럼 떠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이런 식의 돕기 활동은 도덕적 가치로 포장된 형식화된 사회적 의식(ritual)이었다. 당시 선생님은 누가 학급에서 크리스마스 실을 제일 많이 샀는지 공표했고, 불우이웃돕기 성금은 반장이 연명부에 각자 낸 기부 금액을 기록해 선생님께 드렸다. 돈을 많이 낸 학생들은 학급에서 공명심이 강하고 마음씨 착한 사람으로 띄워진 반면, 기부를 많이 못한 학생은 몰인정하거나 구두쇠처럼 치부되기도 했다. 그래서 불우이웃돕기에 돈을 많이 낸 친구들은 허세를 부리며 폼을 잡았고, 돈이 없어 기부를 많이 못했던 친구들은 침묵 속에 허세부리는 친구들을 바라보기만 했었다.

교사가 된 지금, 나는 세밑이 되면 불우한 이웃에 대해 더 많이 학생들에게 이야기 한다. 오늘날 학교는 예전과 같은 강압적인 모금도, 모금 액수의 공표도 없다. 오히려 구제활동이 너무 없어서 썰렁하기까지 하다. 이런 상황에 나는 학생들에게 나와 내 지인들이 하고 있는 작은 봉사와 나눔에 대해 이야기 한다. 힘든 이웃을 찾아가 벽지를 발라주거나, 외벽 페인트 칠을 해주는 것, 노인들 발맛사지를 해주는 것, 김장봉사, 교사봉사단을 꾸려 직접 구운 빵을 시설에 제공하면서 겪었던 세세한 나의 봉사담은 학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야기를 마칠 때면 “선생님 저도 하고 싶어요! 같이 데려가 주세요.”, “저도요, 저도요.”라는 학생들의 외침이 교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불우이웃돕기에 대한 나의 내러티브가 우리 학생들에게는 살아 있는 교육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리 학생들 몇 명과 함께 따뜻한 빵을 만들어 근처 노인정을 찾아뵐 예정이다.

세밑을 보내며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생각하고 작은 도움을 실천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일이다. 기성세대들은 이러한 마음을 사회체제로부터 다소 강제적인 형태로 체화했었다. 이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일종의 그레샴 효과로 볼 수 있다. 반면 요즘 학생들은 구제에 대한 마음을 체험과 실천을 통해 내면화하고 있다. 시작과 의도가 어찌됐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약자를 배려하고 그들을 도우려는 마음이 커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추운 겨울, 모쪼록 작은 정성들이 많이 모여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세밑을 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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