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사라진 오리[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2. 11. 23. 09:39

김    미

오리가 우리 집에 온 것은 순전히 선배의 지극한 마음 때문이었다. 오래전 오리를 키운 적이 있었다. 오리는 닭과는 다른 조건이 따라야 했다. 물을 가까이하는 오리는 물만 보면 몸부터 밀어 넣었다. 아무리 깨끗한 물도 순간에 먹탕으로 만들었다. 모이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먹어 치웠다.

냄새도 어찌나 심하던지, 이웃에 미안한 마음도 컸다. 차라리 누가 달라고 하면 고마운 마음으로 주고 싶었으나, 아무도 오리를 기르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기르다 보니 정이 가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오리를 키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다시 오리를 길러보라니 내키지 않았다. 선배 부부는 나만 주고 싶다니, 더는 거절 못 할 일이었다.

그 선배는 귀농하여 동물농장을 만들었다. 동물에 대한 애정이 넘쳐났지만, 큰 수술로 몸이 불편했다. 애정으로 키운 동물을 줄여야만 해 그 마음을 무시하지 말라며 거듭 당부했다.

오리는 한 자웅이며, 청둥오리였다. 오리는 낯선 환경도 쉽게 적응하며 오자마자 주먹보다 더 큰 알을 낳았다. 그 이쁜 짓에 그만 마음이 쏠렸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커다란 알을 선물하니 뭐든 챙겨 먹이려 애썼다. 기르기도 번거롭지 않았다. 음식물 찌꺼기도 남김없이 먹어버리니 그 또한 감사했다. 그에 비해 닭은 모이를 곱게 주면 발길질로 다 파헤쳤다.

그로 인해 나에게 타박을 듣지만, 오리는 주는 대로 꿀떡꿀떡 먹었다. 하나를 이쁘게 바라보니 걷는 모습도 사랑스러웠다. 촐싹대지 않고 뒤뚱뒤뚱 두 마리가 사이좋게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녁에 내 관리 소홀로 한 마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야생 삵이 다녀간 모양이었다.

그 후 홀로 남은 오리 한 마리가 고개를 길게 빼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사라진 짝을 찾는 눈빛이었다. 닭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같은 짐승이니 함께 어울리면 될 텐데 싶지만, 닭은 무리 지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꼭꼬옥’ 하며 닭끼리만 어울렸다. 오리는 앞마당, 뒷마당, 감나무 아래서도 혼자였다. 오리가 어기적거리고 닭들을 쫓을 사이 닭들은 ‘후다닥’ 날개 치며 장독대로 쏜살같이 가 버리면 그만이었다.

홀로 남은 오리는 예전처럼 먹는 일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먹는 일을 즐거워하지 않으니, 주먹 같은 알도 구경할 수 없었다. 언제 먹는지 걱정이었다. 오리의 길게 늘어 뺀 고갯짓에 외로움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림자처럼 함께 움직이다가 홀로 남겨지니 넓은 마당이 더 넓게 느껴졌을 것이다. ‘콱콱’ 소리를 내지르며 고개를 내밀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마치 자신의 짝이 어디에 숨어 장난치려니 여기고, 인제 그만 나와 달라고 애원하는 몸짓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이 애처로워 다른 짝이라도 찾아주고 싶었다. 인근 오일장마다 다녔으나 청둥오리는 볼 수 없었다. 망설이다 염치 불고하고 선배에게 전화를 드렸다. 선배는 사정을 말하자, 당신 집에도 두 마리뿐이라 난감해했다. 그냥 한 마리를 가져다드리겠노라 말했다. 말만 그리했을 뿐 그걸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아 미루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 늦게 닭장 문을 닫으러 오리를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걱정은 되었지만 ‘내일 아침 일찍 와야지’ 하며 집에 왔다. 오리는 짝을 잃어버린 후 집으로 들어가는 일도 거부했다. ‘어쩌겠냐며 바깥은 위험하니 그래도 들어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리를 억지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아 걱정은 하면서도 그냥 집으로 왔다. 아침 일찍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마당에 들어서니 오리가 대문 곁에 고개를 감은 채 죽어 있었다. 내 가슴이 덜컹했다. 오리의 외로움이 이렇게 큰 거였나 싶어 미안하기만 했다. 뼛속 깊은 외로움을 모르는 인간이라 나를 비난하는 몸짓 같아 죄스러웠다.

고이 묻어주며 아버지를 보내고 홀로 남았던 내 어머니의 외로움이 헤아려졌다. 어머니는 지금의 내 내이보다 더 젊은 시절에 아버지를 하늘로 보냈다. 그때 내 나이는 이십 대 초반이었다. 아버지가 고생만 하다가 자식들로부터 제대로 된 효도 한번 못한 점만 애달파 했다. 어머니의 외로움 같은 것은 미처 생각도 못 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홀로 농사를 지었다. 한 마을 건너 들판을 작은 체구로 비척비척 걸어가던 모습은 외로움을 품은 모습이었구나. 이제야 헤아려진다. 먼빛으로 봐도 삽을 쥔 어머니의 어깨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보였다. 철없던 나는 농사짓는 일로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잘해, 차라리 엄마 뜻대로 할 수 있어 그 점은 홀가분했다. 내 나이 육십을 채우니 이젠 알겠다 두 사람은 한 몸이었다는 것을. 부모님은 싸우면서도 아버지는 기다란 농기구를 지게에 싣고 어머니는 작은 농기구를 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녔다. 해 질 녘이면 해를 등지고 힘이 빠진 채 집으로 들어섰다. 어김없이 겉옷을 벗어 흙먼지를 털며 아버지는 어머니를 향해 ‘고생했네.’ 하는 말을 전했다.

이제 생각하니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싸움까지도 살아가는 힘이었음을. 어머니는 아버지를 보낸 후 집안에 가축들을 길렀다. 어느 틈이라도 자리를 만들어 가축들이 살아갈 수 있게 집을 지었다. 집을 나설 때마다 그것들 끼니 때문이라며 하루를 머물면서도 걱정이었다. 한 마리는 외롭다며 꼭 두 마리를 고집하던 어머니의 외로움을 이제는 충분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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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오리

김 미 오리가 우리 집에 온 것은 순전히 선배의 지극한 마음 때문이었다. 오래전 오리를 키운 적이 있었다. 오리는 닭과는 다른 조건이 따라야 했다. 물을 가까이하는 오리는 물만 보면 몸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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