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훨씬 넘어선 어느 겨울밤,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불쑥, 눈빛을 번득이며 나타나더니 전조등을 켜고 달리는 자동차에 질겁하고 쫓기기 시작한다. 반갑게 맞으려는데 도망을 치는 멧돼지가 조금은 고깝다. 모임에 참석했다가 밤늦은 시각에 홀로 승용차를 운전하고 오솔한 시골길을 지날 때였다. 길가에는 야산 쪽의 콘크리트 벽과 왼쪽으로 가드레일이 있어 찻길 밖으로 빠져나갈 수는 없겠으나 옆 차선으로 비켜서면 될 것을, 자동차 진행 차선으로만 계속 휘달리고 있다. 제 딴에는 있는 힘을 다해 달리고 있으련만 속도를 보니 겨우 시속 30km정도다. 멧돼지 꽁무니가 자동차 앞 범퍼에 닿을락 말락, 속도를 높이면 영락없이 부딪칠 듯하다. 순간적으로 장난기가 발동하여 경음기를 울리자 멧돼지가 혼비백산한 듯,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펑퍼짐하고도 무뭉스름한 방둥이를 흔들며 쫓기는 꼴이 하도 신기하여 한참을 따라가니 콘크리트 벽이 없는 곳에 이르자 재빨리 오른쪽 산길로 접어든다. 야행성인 멧돼지가 그동안 내린 폭설 때문에 먹이를 찾아 도로에까지 내려왔을 진데, 얼마나 혼쭐이 났으랴. 자동차 전조등을 끄고 멈춰서 기다렸더라면 멧돼지가 놀라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을 것을……!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덤비는 것’을 두고 ‘저돌적(豬突的)’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여기에서 ‘저(豬)’는 멧돼지를 뜻한다. 이처럼 멧돼지는 자신에게 어떠한 위험이 닥쳐도 결코 물러섬이 없이 덤비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멧돼지를 건드려 약을 올리고 커다란 바위로 올라가면 그 멧돼지를 잡을 수 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죽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그 바위를 들이받는 멧돼지의 습성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또한 “호랑이한태는 죽지 않아도 선불 맞은 멧돼지한태는 죽는다.”라는 사냥꾼들의 속담에도 그 습성이 잘 나타나 있다.
최근 전국 어디에나 멧돼지가 부지기수로 늘었다는 매스컴 보도를 자주 접한다. 그 원인으로 멧돼지가 번식력이 강하고 천적이 없다는 점을 든다. 당연히 이미 100여 년 전에 이 땅에서 호랑이가 자취를 감추었으니 인간 말고는 그 어떤 동물을 멧돼지의 천적이라 할 수 있으랴. 문제는 인간이며 예전에도 인간이 아닌 다른 천적 때문에 멧돼지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으리라. 멧돼지가 늘어난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농업인구와 생활양식의 변화에 있는듯하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노라면 시골에서 땔나무를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산기슭에 드나들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니 깊은 산중을 제외하고는 웬만한 산기슭에 덩치 큰 짐승들이 살아갈만한 보금자리가 남아날리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전기나 기름이 땔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무를 베지 않으므로 산이 우거지고 인적도 뜸하여 자연히 짐승들이 살아가기에 알맞은 터전이 마련된 셈이다. 멧돼지는 어쩌면 사냥꾼의 총보다도 인간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지 모른다.
멧돼지만 두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농업인들에게 멧돼지 때문에 농사를 못 지을 지경이라는 말을 귀가 솔 정도로 듣는다. 멧돼지가 골짜기 다랑논의 벼를 훑어 먹는가 하면 고구마와 고추 등을 망치기 일쑤란다. 그 피해를 경험한 농업인들은 멧돼지를 퇴치하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한단다. 더욱이 호랑이 배설물이 있는 곳은 멧돼지가 오지 못한다 하여 동물원에서 가져와 뿌리기도 한다니 짜장 기상천외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정도면 애써 가꾼 농작물을 망치는 멧돼지가 얼마나 원망스러울지 농업인들의 심정을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멧돼지가 농작물을 망치거나 도심에까지 출몰하여 소동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인간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우려보다 반가움이 더 앞선다. 우리의 자연환경이 활기를 찾아간다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과 야생동물이 함께 살아갈 방법은 없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우리의 산록에서 이미 자취를 감춘 야생 반달곰을 복원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지만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곰의 야생 적응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처럼 사라진 야생동물을 복원하려면 많은 예산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동안 서식지를 파괴하고 무자비하게 남획한 옰이다.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산기슭으로 넓은 길이 뚫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수많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세상인데 그 길은 오로지 인간의 편리를 위해서만 닦아진다. 인간이 다니는 길을 닦느라고 산짐승들의 보금자리를 가로질러 둘로 나누고 오가는 길을 막아버린 셈이다. 오늘날, 산짐승들이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는 일이 자주 일어나 ‘로드킬’이라는 외래어가 어느덧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 되었다.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니 스트레스 해소나 고기를 얻을 목적으로 동물을 사냥한다면 그것이야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로드킬’은 순전히 인간이 원하지도 않는 억지사냥이다. 건너갈 길이 없어 인간의 길로 뛰어들어 죽임을 당하는 짐승들이 측은하고 그들의 원망이 느껍다.
밤에 자동차를 운전하고 시골길을 가다보면 길을 건너는 산짐승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종류는 뱀, 두꺼비, 족제비, 너구리, 노루, 멧돼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길에서 짐승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인간의 길로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을 생각할 때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엇갈린다. 특히 짐승들의 발정기에는 짝을 찾아 멀리까지 오가는 습성이 있다. 짐승들은 찻길이 나지 않고 온새미로 있는 산에서 살기를 원하리라.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그들이 짝을 찾아 마음껏 오갈 수 있도록 길이라도 마련해줘야 한다. 만약 인간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장애물 저쪽에 있다면 그 장애물이 아무리 위험할지언정 어찌 건너려 하지 않으리. 하물며 찻길의 위험성을 알 리 없는 짐승들이야 본능적으로 짝을 찾게 되어 있어 집고 건너려 하리니 어찌하랴. 인간뿐만 아니라 수많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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