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미
비 갠 후 산책로 따라 걸었다. 푸른 나뭇잎 사이로 청잣빛 하늘이 언뜻언뜻 보였다. 길가의 짙어가는 푸른 잎들이 씻은 얼굴처럼 싱그러웠다. 호젓한 자드락길로 접어드니 휘파람새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 따라 귀를 쫑긋 세워서, 눈을 씻고 찾아보았다. 작고 가벼운 새는 연녹색 감나무 우듬지에 마치 한 떨기 꽃처럼 앉아있었다. 입김으로 불어보고 싶을 만큼 작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5월의 숲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향긋한 냄새에 빠져들게 했다.
터널 같은 등나무 꽃그늘에 닿았다. 벚꽃이 지고 붉은 장미 덩굴이 새잎을 내밀 때 등나무도 꽃과 잎을 피워냈다. 등나무꽃은 아래를 향해 수줍게 늘어뜨린 연보랏빛 꽃 타래였다. 그 꽃은 마치 폭포수가 내리는 것처럼 송이송이 아래로 향해 피었다. 골바람에 연보랏빛 등나무꽃이 찰랑거렸다. 등나무꽃은 알알이 채워져 잘 익은 포도송이 같았다. 길손도 꽃그늘 안에 들어서면 마음 눕히고 싶어 할 정도였다.
등나무는 홀로 설 수 없는 나무였다. 팽나무를 지지대 삼아 아름다운 꽃과 그늘을 만드는 나무였다. 꽃잎은 말려서 원앙 베개에 넣으면 금슬을 더해주는 꽃이라고 했다. 잎은 삶아서 그 물을 마시면 애정이 깊어 서로의 인연을 단단하게 맺어준다고 했다. 사랑의 묘약을 품고 있는 등나무였다.
두 팔을 벌리고 심호흡했다. 등나무꽃 향기를 폐부까지 흠뻑 들이마셨다. 온몸으로 펴져 가는 향기에 젖다가, 둘째 형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근면과 겸손, 사랑이 가득한, 향기를 지닌 사람이었다.
둘째 형님과 마주하고 살아온 세월이 삼십사 년째였다. 함께한 세월이 더해 갈수록 우애와 신뢰감은 깊어 갔다. 그녀는 이웃에 살면서 나의 시집살이 어려움을 헤아려 주었다. 지금도 근심이 많아질 때면 둘째 형님의 모습을 헤아려 본다. 그녀는 “인생이란 파도와 같은 거야, 기쁨과 슬픔의 파도가 번갈아 찾아오는 것이 인생이라네, 거센 파도가 지나가면 다시 잔잔한 물결이 찾아오는 법이야.” 하며 나의 등을 다독이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나면 곤혹스러운 순간도 저만큼 물러났다.
결혼 초, 둘째 형님은 매일 오면서도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형님의 손발은 다른 신체에 비해 컸다. 남을 위해 대접하는 일에 손과 발품을 아끼지 않았다. 세월은 많은 것을 변하게 만들어 놓지만, 둘째 형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등나무처럼 혼자 설 수 없는 나에게, 그녀는 든든한 지지대였다. 그리고 넉넉한 길을 갈 수 있도록 생각의 폭을 넓혀주려고 애썼다. 실수를 혼내기보다는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거라며 등을 토닥거려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큰소리로 시비를 가리는 법이 없었다. 넉넉한 가슴으로 소리 없이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둘째 형님은 이십 년 동안 초등학교 조리실에서 근무했다. 아이들의 음식 배식하는 일을 맡았다. 그녀는 각각의 형편을 헤아려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에게는 더 챙겨 먹이려고 애썼다. 음식을 받았던 아이들 부모는 형님에 대한 고마움을 나에게 전했다. 그녀에게 음식을 넉넉하게 받아 충족감 느꼈던 아이들이 자라서 아기 엄마가 되었다. 낯선 젊은 사람이 그때를 기억하며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서 둘째 형님의 얼굴은 주름투성이로 변했는데, 여태까지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며 몇 번이나 고마워했다.
며칠 전 둘째 형님과 종합병원에 갔다. 근무 중인 간호사는, 수년 전 초등학교 때 배식을 받았던 작은 꼬마라고 고백했다. 공손하게 그 당시 고마움에 대해 인사했다. 헐거워진 의복에 과중한 노동 탓으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인사를 받는 둘째 형님의 모습이 위대해 보였다. 훌륭한 일은 높은 자리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둘째 형님은 ‘크는 아이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고, 우물에 침 뱉지 않는다’라는 신념으로 어린아이들을 잘 보살폈던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이 늘 존경스러웠다. 둘째 형님은 어딜 가나 인정받았다.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일보다 어려운 이를 위해 정을 나누는 사람이었다. 마치 향기로운 공간을 나눌 줄 아는 등나무 꽃그늘처럼.
둘째 형님은 초등학교 조리실 퇴직 후 지금은 요양병원 조리실에 근무 중이다. 칠순이 넘어 손발이 아귀가 맞지 않는 문짝처럼 자유롭지 못했다. 그만둘까 생각했다가도 장기 요양 어르신들이 형님만 찾아서 그러지 못한다고 했다.
요양 어르신들은 늙은 사람 입맛에 맞게 찰진 밥을 잘 챙겨 준다며 좋아했다. 만사가 귀찮다고 누워 있다가도 형님이 배식 차를 밀고 들어가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둘째 형님은 밥을 못 먹고 힘들어하는 어르신에게 누룽지를 끓여주었다. 고통을 호소하는 어른 앞에서 춤도 추며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둘째 형님은 희망 없이 사는 어르신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고 했다.
사는 보람은 사랑을 나눌 때 크게 느껴진다고 했다. 시인이며 소설가인 헤르만 헤세는, “사랑을 받는 것, 그것이 행복이 아니다.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라고 했다. 요양 어르신들은 자녀가 준 선물을 고이 간직했다가 둘째 형님이 나타나면 살짝 내밀었다. 둘째 형님은 고물 모으는 사람에게도 정성껏 대접하더니 양발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었다. 사랑을 주고받는 인간관계는 둘 사이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는 법이다.
늘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삶을 나누어야만 힘이 나는 둘째 형님은 꽃을 유난히 좋아했다. 좁은 마당에 꽃을 심어 식구처럼 아끼며 가꾸어 놓았다. 꽃이 하나 필 때마다 형님의 얼굴도 활짝 피었다. 꽃보다 더 고운 모습이었다. 내일은 둘째 형님을 이 등나무 꽃 터널로 초대해야겠다. 그녀가 좋아하는 고사리나물에 찰밥을 지어 나누어 먹고 싶다. 아마도 꽃보다 더 아름다운 웃음소리가 등나무 터널을 넘어 마을 앞산까지 바람을 타고 날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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