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쇠죽간 방[미래교육신문&김미]

교육정책연구소 2020. 2. 20. 10:02



김미 수필가


쇠죽간 방

낮은 기온이 이어지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 몸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포개 입고 싸맸던 겨울날은 숨어 버렸다. 밤새 두꺼운 얼음이 얼고 몇 번의 수도가 얼어 물을 쓰지 못한 채 애를 태웠던 시절도 지난 이야기가 되었다. 어서 추운 겨울이 지나 길 간절하게 바랬던 그때가 좋았던 것 같다. 혹독함을 견디고 나면 단단한 힘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날이 이어지니 금년 농사를 걱정하는 마을 어르신들이 표정이 어둡다. 날씨가 따뜻하니 방안에 계시기도 어중간 하단다. 들밭을 설거지를 하느라 지푸락대기, 털어낸 깨 대, 들깨 대를 태우는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들 때가 있다. 그런 냄새가 날 때마다 고향집 작은 방이 생각이 난다.

온 가족이 한 집에서 살던 시절 작은 방은 겨울이면 유독 방구들이 펄펄 끊었다. 식구 같은 황소 한 마리가 커다란 눈망울을 껌뻑이며 여물솥이 걸린 작은방 부엌에서 살았다. 그곳을 소여물 끊여 주는 쇠죽간이라고 불렀다. 비록 돌구유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는 없게 코뚜레에 줄을 매단 채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새 학기가 되면 살 오른 황소는 팔아서 오빠 등록금을 내야 했기에 아버지는 황소 기르는 일에 온 정성을 다 했다. 그곳은 황소가 한 번씩 품어 내는 한숨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기만 했었다. 해질녁이나 이른 새벽이면 여물을 끊이기 위해 군불 지피는 소리가 전부였다. 거긴 먼지가 두껍게 낀 무쇠솥과 부지갱이, 사각의 성냥통, 뒷산을 오르내리며 해 쌓아 놓은 소나무 낙엽이 전부였다. 밤중이면 쥐들이 살림 하는 소리가 그토록 요란했건만 쇠죽간은 먹을 것이 없기에 쇠풍경소리만이 간간히 들렸다.

아버지는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불땀이 진득하니 좋다며 고구마를 묻어 두었다가 밤이 깊어지면 허드레 바가지에 담아 오셨다. 아버지가 그 시간 쯤 일어나시면 군고구마를 가져오시나 하고 기대를 할 때도 있지만 그런 날은 많지 않았다. 초여름이 접어들면 텃밭에 무성한 잎을 헤치고 급하게 캐서 구어 먹는 포근포근 한 감자 맛은 쇠죽간에서만 먹을 수 있었다. 먹은 후 입가에는 검은 재가 묻어 귀여운 쥐 같았다. 지금도 추억의 맛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궁이불이라고 해서 다 맛있게 구워내는 것이 아니다. 불땀이 강해도 굽고자 하는 것들이 빨리 익어서 제대로 된 맛이 들지 않는다. 진득한 불씨만이 고구마, 감자, 고둥어, 갈치, 김들이 제 맛을 낸다. 한풀 꺾인 불땀에 날김을 들기름 살짝 발라 불김을 쐬어 낸 김 맛은 그 시절 아궁이 군불이 최고였다.

쇠죽간에 딸린 방문을 열면 따뜻한 기운이 스며있다. 사발처럼 작은 방이지만 미처 마당으로 빠져 나가지 못한 연기들이 방안에 갇혀 있었다. 그 연기는 땔감 본질의 냄새로 매콤해 기침이 날 때도 있지만 깊숙이 마쉴수록 나무 형태가 그려진다. 마르지 않는 소나무에서는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매운 연기가 구름 안처럼 가득 차고도 넘쳤다. 잘 마른 낙엽송에서는 비스켓 같은 고소한 맛과 향이 있었다.

가족들이 혼자 그 방에 있을 때도 있었다. 온 동네를 다 찾아도 못 찾아 허탈해 하다 어쩌다 고개 돌려 보면 토방위에 어머니 신발 한 컬레 놓여 있었다.

그 시절에는 그랬다. 친구 중에 혼자 지낼 수 있는 방이 있으면 친구들이 모두 자신의 방처럼 자고 쉬고 했었다. 조카들까지 한 집에 사는 말례 고모와 오빠들이 많아 방이 없는 유례언니도 언니 방에서 살았다. 언니 친구들은 밤마다 모여서 웃고 떠들면서 보내다 또 다른 가족을 이루기 위해 떠났다. 엄마가 없다는 핑계로 언니 방으로 들어가면 정작 언니는 막내 동생이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건만 드센 언니들은 쥐방울만한 것이 어디 언니들 방엘 들어오는 거냐며 내 쫒았다. 쥐가 어디에 나만큼 큰 방울 달고 있을까? 밉기 그지없다. 그 방에서 밀려나와 아버지만 계시는 안방으로 들어오는 길은 참담하고 서러웠다.

작은 방은 꿈에도 어서 입성하고 싶은 방이었다. 언니가 쓰던 화장품 향내가 고여 있고 고운 색깔의 언니 옷들이 빨리 크고 싶어 조급증을 나게 했다. 한적한 날은 살짝 들어가 언니로 변신을 꿈꾸었다. 화장도 빠짐없이 발라보고 옷도, 굽이 높던 신발까지 신고 거울 앞에서 얼마나 언니처럼 보일까? 꿈꾸었다.

언니가 결혼을 하자 오빠가 입성을 했다. 오빠는 더 지독한 방주인 행세를 했다. 오빠가 주인이 되었을 때는 분위기는 다르다. 기타 소리가 들리고 고급 노트와 만년필이 있어 빈종이에 몰래 들어가 글을 써 보았다. 그럴 때마다 오빠는 지독스럽게 구박을 했으며 학교에 가는 시간에는 열쇠까지 걸고 갔다. 그 방은 형제들을 성숙하게 만들어 각자의 길을 가게 도왔던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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