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병 호
교사를 위한 변명
오래 전 경북 상주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 특산물을 산다고 일행과 곶감농원에 들렀다. 그리고 이것저것 물건을 고르며 좀 더 달라, 깎아 달라 흥정을 하는데, 물건을 내놓던 총각이 대뜸 묻는 것이었다.
“아저씨들 혹시 선생님 아니세요?”
우리는 신분을 용케 알아맞힌 것이 신통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웃고 나서 생각해보니 기분이 좀 묘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사상이란 게 고작 이런 것인가? 가게에서 꼬치꼬치 품질을 따지고 몇 푼 안 되는 물건 값이나 깎으려 드는 사람들! 어찌하여 시골 총각에게까지 이런 인식이 박혔을까!
돌이켜 보면 교사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부정적인 인식들이 꽤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사람이 잘다’는 것과 ‘세상 물정에 어둡다’는 것이다. 교사는 대개 그릇이 작고 소심하여 어디 가서 돈도 크게 쓰지 못하는 좀생이이며, 세상 물정을 모르고 어수룩하여 남에게 잘 속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교사집단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못한 시각에서 나온 것 같아 당사자가 듣기에는 그다지 기분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 같은 평가는 교사에 대한 비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바람직한 교사상을 말해주는 부분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원래 교사란 아이들을 가르치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아이들을 잘 가르치자면 우선 세심해야 한다. 자상한 어머니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듯이 교사도 아이들을 하나하나 보살피고 이끌어주려면 마음 씀씀이가 세밀할 필요가 있다. 코흘리개 아이들의 콧물도 닦아주고, 잘못된 버릇도 눈에 띄는 족족 바로잡아 줘야 한다. 성적이 떨어지면 원인을 찾아서 일깨워주고, 침울한 표정이면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가 상담해서 마음을 달래줘야 한다.
그러자면 선생님의 눈높이가 아이들 키만큼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사물을 바라볼 때 어른의 눈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해야 한다. 장난감 하나가 망가졌다면 그것은 어른에게는 대수롭지 않지만 아이에게는 엄청난 ‘사건’일 수가 있다. 아이들의 처지에서 마음을 읽고 공감을 해줄 때 사제간에 마음이 맞닿아 비로소 참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교직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어지간한 건성꾼도 세밀하고 깐깐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습성은 그 사람의 생활 전반에 배어나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말투 하나만 가지고도 상대의 직업을 쉬이 짐작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기에 교사의 인물됨이 잘다는 것은 자상하고 세심하다는 뜻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선생님들이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것도 나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데에 몰두하다 보면 세상 돌아가는 일에 신경 쓸 틈이 언제 있겠는가. 교사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세상사에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간혹 약삭빠른 사람들에게 속기도 하고 손해도 본다. 그렇다고 그것을 교사의 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태환은 수영만 잘하면 됐지, 마라톤이 서투르다고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세상일에 밝은 교사가 있다면 그야말로 어딘가 미심쩍은 데가 있는 사람일지 모른다.
직업이 사람을 만든다.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행동이 바뀌고 생각이 바뀐다. 교사는 교사다울 때 가장 아름답고 훌륭하다. 맨발의 어린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가던 길을 멈추고 유리조각을 주웠던 페스탈로치처럼 온통 아이들만을 생각하며 자잘한 데까지 신경을 쓰는 사람! 오직 가르치는 데만 몰두했기에 다른 일에는 서투를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존경해야 할 참교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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