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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광(광주광역시교육청 장학사, 교육학 박사)
대학 평준화와 사회적 불평등
대학이 평준화된 나라, 프랑스. 프랑스는 ‘교육은 국가의 최우선 사항’임을 헌법과 교육법에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 속에 프랑스 국립대학은 평준화되어 해당 분야 바칼로레아(중등과정 졸업시험)에 합격한 후 대학별로 별도의 제도적인 시험 없이 입학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전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대학 평준화가 잘 된 것처럼 보인다. 대학이 평준화 되어 있으니 대학입시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나, 성적 중심의 학교문화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사회적 평등으로 이어져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구현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의 진짜 대학은 따로 있다. 그랑제꼴(Grandes Ecoles). 고급전문학교로 불리는 그랑제꼴은 프랑스 특유의 소수정예 고등교육기관으로 일반 국립대학과 구분되어 있다. 그랑제꼴은 프랑스 교육법에 규정되지 않아 특정한 법적 기준이 아닌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조건에 의한 사회적 공인으로 그 지위를 인정받는다.
첫째, 그랑제꼴 기관들은 상당한 난이도의 교육과정과 높은 경쟁률의 경쟁시험을 통해 소수의 학생들을 선발한다. 바칼로레아에서 상위 4% 이내의 학생들만 그랑제꼴 준비반(Classes Préparatoires aux Grandes Écoles)에 진학할 수 있으며, 2년의 특수 교육과정을 이수한 이후 콩쿠르(경쟁선발시험)에 응시하여 각 기관의 입학정원에 따라 성적순으로 선발된다. 둘째, 프랑스의 일반 국립대학들은 대중교육을 지향하지만, 학생수가 적은 그랑제꼴들은 공학, 경영, 정치, 행정 등 한 분야에 특화되어 있어 각 분야 최고 수준의 엘리트 양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셋째, 그랑제꼴은 소수정예의 양질의 교육을 추구하기에 때문에 학생 1인당 교육비용이 일반 국립대학들에 비해 훨씬 많고, 교육시설 확충은 물론 일반적인 교육 및 연구 예산 측면에서 보다 많은 투자가 이루어진다.
프랑스 사회는 그랑제꼴에 의해 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 사회 각 분야의 고위직은 해당 그랑제꼴 출신이 아니면 오를 수 없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심지어 그랑제꼴 안에서도 각 계열별로 엄격한 평가 순위들이 존재하며, 그 순위에 따라 직업 내 지위가 명확하게 결정된다. 그 예로 얼마 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교육평등을 강조하며 그랑제꼴 국립행정학교 ‘에나’를 없애겠다고 했는데, 그 학교는 마크롱 현 대통령뿐만 에두아르 필리프 현 총리 및 전직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 자크 시라크, 지스카르 데스탱 등이 졸업했다. 즉 그랑제꼴을 나오지 못하면 프랑스 상류사회에 들어 갈 수 없으며, 그랑제꼴 내 순위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는 사회적 불평등에 반발하며 ‘노란조끼’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 임금격차, 높은 실업률과 세율, 경기침체로 인한 정규직의 감소와 비정규직 양산 등이 프랑스 사회 불안을 키우면서 급기야 대규모 시위로 번진 것이다. ‘노란조끼’ 시위대는 사회 불평등 개선과 프랑스 사회의 엘리트주의를 억제하고 정치 개혁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리고 핵심에 그랑제꼴이 있다.
평등한 듯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유리천장이 층층이 가로막고 있는 불평등한 나라 프랑스. 그랑제꼴이라는 교육제도가 사회계층의 위계화를 강화하고 있으며, 상류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상위 그랑제꼴 입학에 목을 매는 프랑스 학생과 학부모의 모습이 강남 대치동 학원가와 오버랩 된다. 우리나라에 ‘SKY 캐슬’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그랑제꼴 캐슬’이 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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