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잔인한 4월, 아름다움을 희망하며[미래뉴스 &미래교육신문]

교육정책연구소 2019. 4. 25. 10:53



최성광(광주광역시교육청 장학사, 교육학 박사)

​잔인한 4월, 아름다움을 희망하며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영국 시인 엘리엇(T. S. Eliot)은 그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로 표현하였다. 이후 많은 사람들은 이 시를 생동의 계절임에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적 황폐함, 삶의 목적과 의미를 잃고 생명력을 가진 것을 생산해내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정신세계, 늦은 봄 동토의 땅에서 파란 새싹이 솟아오르는 것의 역설 등으로 해석하며 「잔인한 달 4월」을 관용구처럼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질곡의 근현대사에서 유독 4월은 아픔과 슬픔의 역사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71년 전 제주의 4월은 국가 공권력에 의해 선량한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야만과 공포의 시간이었다. 제주 4∙3은 이승만 정권의 군경과 서북청년단 등 극우 세력들이 무고한 다수의 제주도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수년에 걸쳐 학살을 자행한 잔혹한 사건이었다.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당시 제주 인구의 10%인 3만여 명이 잔인하게 희생당하며 4월 제주의 노란 유채꽃밭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1960년 4∙19혁명도 시민들의 피로 쓴 아픔과 승리의 역사이다. 이승만은 12년의 장기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3∙15 부정선거를 실시하였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전국적으로 항거하게 된다. 3∙15 부정선거 이후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떠오르자 분개한 고등학생들부터 시위가 시작되어 대학생과 시민들로 번진 4∙19혁명으로 전국적으로 186명이 사망하고 1,500여명이 부상당하게 된다. 따사로운 4월, 시민들은 부정한 독재 권력에 맞서며 자신의 피로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키워 낸 것이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 침몰해버린 세월호. 그 속에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며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 아빠를 불렀을 단원고 학생들과 그들을 지키고자 했던 선생님, 그리고 무고한 시민들. 너무나 허망한 죽음은 침몰 원인과 구조 과정의 무기력함을 통해 국가와 권력자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고, 결국 304명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사가 아닌 무능하고 부정한 국가권력에 의한 희생으로 여기게 되었다. 피우지 못한 꽃들, 억울한 죽음, 침몰과 구조 과정의 풀리지 않은 진실은 여전히 세월호의 아픔이 현재 진행형임을 의미한다.

이 땅의 4월은 잔인하다. 대지는 연둣빛 생명을 틔워내지만 우리 역사에서 4월은 죽음과 피와 눈물을 머금은 잔인하고 아픈 달이다. 특히 잔인한 4월의 역사를 온 몸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고 그들이 당시의 트라우마를 지닌 채 아픔을 이야기할 때 우리 사회 구성원들 역시 그 때의 일들을 공감하며 함께 분노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죄와 용서, 그리고 희망의 다짐이다. 비이성적인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무고한 시민들에게 국가는 지금이라도 사죄하며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 때는 국가가 잘못했다’고, ‘당신들의 죽음은 당신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다’는 진정성 있는 사죄와 위로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 땅에서 죽음과 피와 눈물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제주에서는 흰 눈 위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은 새로운 생명을 의미한다. 잔인한 달 4월, 이 땅에 떨어진 수많은 동백꽃들을 애도하며, 그 꽃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피어나 더 이상 아픔이 없는 아름다운 4월이 펼쳐지길 희망해 본다.


기사더보기:

http://www.miraenews.co.kr/news_gisa/gisa_view.htm?gisa_category=02040000&gisa_idx=12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