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광(광주광역시교육청 장학사, 교육학 박사)
19세에 만난 스승
백범 김구.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존경하고 추앙하는 위인 중 한명이다. 평생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고, 해방 이후에도 우리 민족의 자립을 위해 노력했으나 비운의 죽음을 맞으면서 지금까지도 그의 서거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한 세기가 지나도록 김구 선생을 우러르는 이유는 그의 독립운동 경력과 민족의 지도자 역할과 더불어 평범한 이들처럼 희노애락을 느끼고 번민했던 선생의 인간적인 삶에도 공감하기 때문이다.
민족의 스승, 김구에게도 스승은 있었다. 선생은 몰락한 안동김씨 자손으로 태어나 가문을 일으키려고 과거에 응시했으나 부패했던 시대에 관직을 얻을 수 없었다. 이후 밥벌이라도 할 요량으로 관상과 풍수지리를 공부했지만 자신의 관상이 박복함을 알고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본인은 관상이 나쁘니 마음을 닦아 좋은 관상을 가진 사람보다 더 좋은 인생을 살겠다고 동학에 입문해 열심히 활동하게 된다. 당시 17세 무렵이던 김구 선생은 동학에 심취해 포교활동을 왕성하게 하며 ‘아기접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 황해도 지역 동학군을 이끌며 봉기했지만 관군에 패하고 쫒기는 신세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관군을 이끌던 안태훈 진사는 일찍이 김구 선생의 품성을 알아보고 자신의 집에 기거하게 한다. 안태훈 진사는 그 유명한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이니, 영웅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안진사는 고명한 유학자 고능선 선생을 집에 모셔 자식들 교육을 시켰는데, 고능선 선생은 성리학자로 학문이 뛰어나고 품행이 올곧아 당시 해주지역에 존경받는 학자였다. 안진사의 배려로 김구 선생은 고능선 선생의 제자가 되어 배움을 청하게 되는데 그의 나이 19세 되던 때였다.
김구 선생에게 고능선 선생은 향후 독립운동과 민족주의운동의 근간이 되는 민족의식 형성에 큰 깨달음을 준 스승이었다. 김구 선생은 고능선 선생의 가르침으로 비로소 체계적인 학문을 접할 수 있었고, 출세를 위한 학문이 아니라 스스로 깨이고 성장하기 위한 학문을 하며 세상을 향한 새로운 눈을 뜰 수 있었다. 결국 고능선 선생의 가르침으로 김구 선생은 나라를 위하는 길을 고민하며 독립운동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된다.
김구 선생이 19살에 만난 스승 고능선 선생은 김구 선생 한 개인의 삶과 우리민족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통찰과 그 변화에 흔들리지 않아야 할 중심으로 의리를 중시하였다. 또한 의리가 처세의 근본이 되어야 하며 장부의 기개와 일에 대한 판단과 실행에 대해 가르치며 김구 선생을 더 큰 사람으로 키워냈다. 결국 우리가 존경하는 김구 선생을 키워낸 고능선 선생이야 말로 우리민족의 스승이기도 한 것이다.
미래교육신문이 19돌을 맞는다고 한다. 김구 선생이 19살에 스승을 만나 겨레의 영웅이 되었듯, 19살이 된 미래교육신문도 급변하는 교육계 이슈를 다루면서도 변치 않은 본질을 추구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길 바란다. 미래교육신문의 창간 19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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