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사랑방 손님과 장학사[미래교육신문제공]

교육정책연구소 2018. 6. 21. 10:59



최성광(광주서부교육지원청 장학사, 교육학 박사)

 

사랑방 손님과 장학사


여러분은 장학사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가? 1990년대 이전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세대들에게 장학사는 엄청나게 높은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당시 학교에서 장학사는 일명 손님으로 불리며, 장학사가 학교에 방문하기 며칠 전부터 교직원 전체가 손님맞이를 위한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학생들은 복도 (나무)바닥의 광을 내기 위해 60여명이 줄줄이 앉아 양초 조각을 바닥에 문지르고 마른걸레로 수백 번씩 닦으며 앞으로 전진해 갔다. 교사는 감독자로 잔꾀부리는 아이들을 잡아내며 학생들을 통제했다.

어디 그뿐인가? 장학지도를 위해 수업을 공개하는 학급에서는 몇 주 전부터 당일 수업할 내용을 미리 공부하고 교사의 발문과 발표할 학생을 정해 각본 연습까지 철저히 했다. 또한 선생님은 멀쩡한 교실 환경판을 화려하고 다채로운 형태로 새로 꾸미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학생들에게 호랑이 같던 선생님도 장학지도를 준비하면서 긴장하고 주눅 들어 했던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은 장학사가 엄청나게 무서운 사람이라고 직감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장학사는 어린 학생들이 만날 수 있는 가장 크고 높은 권력자였다. 학교장-교감-부장(주임)교사-학급담임-학생으로 이어지는 학교의 권력 구조 속에서 장학사는 기존의 권력 질서를 일순간 뒤흔드는 절대권력이었다. 권위주의시대에 학교권력의 최말단 학생들에게 장학사의 존재는 눈도 마주치지 못할 실존하는 상감마마와 같은 것이었다. 이로 인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장학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엄청 높고 무서운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교육계 절대권력이던 장학사의 힘은 19955·31교육개혁 이후에 점차 약화되었다.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우리사회의 권위주의 청산과 시민사회로의 권력이양이 급물살을 타면서 장학사의 힘도 점차 빠지기 시작했다. 이후로 우리사회가 민주화되고 평등해지면서 교육관료들의 권위주의도 점차 약해지던 중, 2014년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면서 교육청과 학교는 보다 많은 권력을 학교구성원들에게 이양하게 되었다.

그 즈음 장학사는 학교를 통제하고 감독하는 권력자에서 학생교육과 학교구성원들의 교육활동을 지원하고 조력하는 지원자로 변화되었다. 그래서 최근 장학사들은 학교 방문을 최소화하고, 학교에 갈 때도 학교구성원들 모르게 조용하게 왔다가 필요한 사람만 만나고 순식간에 나오는 바람 같은 존재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요즘 학생들은 장학사라는 직업 자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시대가 변하면서 장학사가 손님에서 바람으로 바뀐 것이다.

지방선거가 끝났고 각 시도별로 교육감이 선출되었다. 교육감은 지방의 가장 강력한 교육권력이다. 권위주의의 시대가 가고 있지만 교육권력이 지닌 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교육감의 권력은 시민들이 부여한 힘이며, 그 힘을 통해 세상을 바꾸라는 명령이다. 이제는 교육관료들이 누리던 권위를 학교구성원들과 함께 나누며 소통과 협력을 통해 교육을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교육감은 더 낮은 자세로 더 많은 사람들의 소리를 경청하고, 다양한 생각과 행동을 수용해야 한다. 우리교육은 교육감, 장학사 같은 권력자가 아닌 우리사회 모든 구성원의 생각과 의지가 반영되어 변화되어야 한다. 이제 새롭게 시작될 교육의 변화를 우리사회구성원과 함께 기대해 본다.

기사더보기: 

http://www.miraenews.co.kr/news_gisa/gisa_view.htm?gisa_category=02040000&gisa_idx=95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