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수탉[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가]

교육정책연구소 2021. 9. 15. 16:30

김   미 수필가

수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피가 돌지 않는 환자의 몰골이었다. 병자의 바짓가랑이 잡고 활발하게 뛰어노는 어린것들처럼 수탉 4마리와 암탉 10마리가 그 빈집에서 살았다. 닭은 빈집의 주인이 되었다. 녀석들은 헐거워진 문이 열린 안방에도 거들먹거리며 수시로 드나들었다. 또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찾아다녔다. 아침이면 그늘진 마루 위로 사람처럼 올라앉았다. 겨울이면 따뜻한 뒤뜰로 몰려들었다. 보자기처럼 내려앉은 햇빛 속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해바라기를 했다.

오랜 세월 동안 닭을 기르다 보니 닭도 어느새 식구가 되었다. 나는 내 아이들을 키우듯이 닭에게 정성을 다 쏟았다. 나의 일과는 닭 모이 주는 일로 시작되었다. 들통에 물을 받아 가야 했다. 오른팔 인대 파열로 수술을 권유받을 때도 닭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닭이 좋아할 먹이를 보면 어떻게든 챙겼다. 들판에 버린 배추 잎사귀도 자꾸 눈길이 갔다. 내 차 안에 자루와 고무장갑도 챙겨 다녔다. 닭에게 지극정성을 다하는 내 모습을 본 가족들은 식구 챙기는 일도 저처럼 정성을 다하면 찰떡같은 가족애가 형성될 거라며 비아냥거렸다.

나도 알 수 없었다. 가족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내가 닭에 그런 애정을 왜 쏟게 되었는지. 닭은 말로 공을 갚는 법이 없다는 것과 나를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점이 나에게 보호 본능을 일으키게 했을 것이다. 실익이라면, 매일 신선한 달걀로 보답해주는 거였다. 산란기의 암탉은 식음을 전폐하고 21일 동안 알을 품어 병아리를 부화했다. 샛노란 병아리들이 뒤뚱거리면서 돌아다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미 닭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또 인간처럼 생로병사를 겪는 닭의 짧은 한살이를 지켜보면서 인간의 삶을 유추할 수 있어서 유익했다.

나는 어느덧 닭들과 말을 섞고 있었다. 닭은 내가 모이를 들고 빈집에 들어서면 일제히 모여들었다. 그런데 내 손에 자루가 들려 있으면 몸을 사리고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그들에게는 빈 자루가 생명의 위협으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 이후 빈 자루는 작게 접어서 잘 드러나지 않게 들었다.

어느 날부터, 닭들만이 평화롭게 살아가던 빈집에 다른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느껴졌다. 그것도 곱게 다녀간 것이 아니라 빈 병을 마구 던져 놓는가 하면, 장대가 마당에 가로 놓여 있기도 했다. 팽개쳐진 빈 병, 장대, 돌멩이, 플라스틱 용기들이 마당 안쪽에 어질러져 있었다. 매일 어느 틈에 다녀가는지 모르지만, 마당 안에는 다녀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구석진 곳을 향해 패대기쳐진 물건들에서 그 사람의 화난 심정도 읽을 수 있었다.

빈집에 몰래 다녀간 사람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이러는 것일까. 혹시 예전처럼 닭서리를 노린 것인지, 그렇다면 닭이 한 마리라도 없어져야 하는데 그대로였다. 매일 낳는 달걀도 사람의 손길을 탄 흔적이 없었다.

온갖 추리를 해봐도, 동네에는 다들 연로하신 어른들뿐이라서 해코지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틈나는 대로 빈집을 살펴보았다. 닭 때문에 말 못 할 피해라도 보고 있을까. 메모지를 남겨 놓을 생각도 했다. 불편사항이 있다면 메모를 남겨 주라고.

그러던 중 어느 날, 나는 보았다. 수탉이 암탉의 등에 올라타 억센 발 갈퀴로 등을 짓누르고 뒷덜미를 사나운 부리로 물고 있는 순간이었다. 암탉은 몸을 옹그리며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기세등등한 수탉을 장대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장대를 든 그녀는 빈집 곁에 사는 오십 대 후반의 처녀였다. 나는 놀라서 몸이 굳은 채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는 마을을 좀처럼 돌아다니는 일이 없었다. 조현병약을 복용하는 환자였다. 겨우 몸이나 가눌 정도의 처녀가 무슨 힘으로 그토록 무섭게 장대를 내려치는지.

그녀는 첫딸이고, 부모들의 기대감을 안고 중학교 때부터 광주에서 유학했다. 홀로 자취했던 그녀가 여고 때 어찌하여 담임선생에게 성폭행당했다. 그 후, 그녀의 삶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남자에 대한 결벽이 심해 사회활동조차도 거부하고 집안에서만 생활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그런 딸이 부끄럽다며 숨기려 했고, 그녀는 외부 사람과 접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정신과 약으로 이제껏 버텼다. 온갖 지병이 많아 병원 출입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뒷담벼락에 몸을 붙이고 벌떡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나는 지켜보았다. 그녀의 야윈 팔에 푸른 힘줄이 선명했고, 손아귀에 장대가 들려 있었다. 수탉들은 갑작스러운 장대질에 모두 뒤뜰로 달아나 버렸다.

그녀는 감나무 아래 고요히 널린 풋감을 줍기 시작했다. 풋감 몇 알을 손바닥 위에 두고 이리저리 굴렸다. 풋감과 대화라도 시도하려는 눈 맞춤이었다. 채 익기도 전에 떨어져 버린 풋감이 자신을 닮았다고 여겼던 것일까. 아무런 흠이 보이지 않는데도 냉정히 버림받은 탱탱했던 푸름을 기억해 내려는 것일까. 그녀의 흰 피부에서 반사되는 칠월의 햇살이 눈부시게 화사해서 못내 서러웠다. 그녀의 육십 목전에 둔 화사한 슬픔이 나의 목울대를 울컥하게 했다. 여고 시절, 무참히 짓밟아버린 담임선생은 그녀의 모습을 기억이나 할까.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를 야욕의 손으로 꺾어야만 했을까.

아무리 종족본능이요 대자연의 섭리라고 하지만, 수탉의 일방적인 짝짓기는 강압적인 횡포나 다르지 않았다. 당숙모는 암탉 열 마리에 수탉 네 마리 비율이면 암탉들이 견뎌내기 힘들다며 처분하라고 당부했다.

수탉들이 붉은 볏을 덜렁거리며 덤벼드는 광경을 보면 폭군이 연상되었다. 수탉 한 마리가 암탉을 노리면 남은 녀석들도 줄줄이 덤볐다. 그 무자비함에 암탉들은 무조건 도망쳤다. 암탉들은 끝까지 쫓아오는 수탉을 피하려고 난간으로 황급히 뛰어오르기도 했다. 그것은 암탉들의 지혜요 자기 보호 본능일 터였다. 제아무리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수탉이라도 겨우 발가락만 버티고 설 수밖에 없는 난간 위에서는 짝짓기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난간에 겨우 올라서서 암탉을 호시탐탐 노리는 수탉에게서 뱀의 날름거리는 속내가 고스란히 엿보였다.

수탉이 무자비하게 짓밟고 올라서는 통에 암탉 열 마리의 등에는 깃털이 없었다. 아니, 깃털이 다시 돋을 새가 없었다. 수탉이 부리로 찍었던 암탉의 정수리에도 깃털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수탉들의 무자비한 짝짓기가 징그러워서일까. 그녀가 마당에 던져 놓은 장대를 나도 모르게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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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

김 미 수필가 수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피가 돌지 않는 환자의 몰골이었다. 병자의 바짓가랑이 잡고 활발하게 뛰어노는 어린것들처럼 수탉 4마리와 암탉 10마리가 그 빈집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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