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나는 집안에 틀어박혀 드라마 ‘미생’을 몰아보기 했다. 평소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는 내가 소위 말하는 드라마 몰아보기의 중독에 빠져 2박 3일을 보낸 것이다. 드라마 몰아보기란 방영이 끝난 드라마를 연속으로 다시 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하여 ‘인생순삭’(인생이 순간적으로 싹 지나간다)이라고도 한다.
미생은 2012년 웹툰을 원작으로 2014년 20부작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되었다. 미생은 ‘원인터내셔널’이라는 종합상사에서 이루어지는 직장인의 애환과 현대인의 삶을 잘 그려내며 방영 당시 직장인들 사이에서 ‘미생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주인공 ‘장그래’를 비롯해 직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 펼쳐가는 스토리 전개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며 드라마에 빠져들게 한 성공 요인이었다.
미생은 스펙과 학벌, 사무직과 노동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노동환경과 취업구조와 같은 우리 사회 아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치열한 인턴 생활을 버텼지만 다시 계약직이라는 현실과 마주한 장그래의 모습, 입사 동기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심지어 탁월한 업무 성과를 보였지만 정규직 동기들과 다른 대우를 받았던 그의 모습은 우리 사회 초년생의 현실이기도 했다. 권력 앞에 힘없는 하위직은 고개 숙여야 했고, 자신의 성과를 상사가 빼앗아 가도 그저 속으로 울분을 삼켜야 했으며, 일상이 돼버린 성차별과 폭언 속에 여직원은 숨죽여야 했고, 워킹맘은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죄인이어야 했다.
미생이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흥행과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지 약 10여 년의 시간이 지났다. 당시 우리 사회는 미생이 담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인식하며 이를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직장 내 비정규직 비율을 낮추고, 성희롱과 성차별을 근절하며,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고, 공정과 정의가 바로 서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에 ‘장그래 법’이라 하여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고용 안정을 위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성폭력과 성차별에 대항해 사회 전 영역에서 ‘미투’운동이 확산되었으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한 각종 육아 지원 정책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그런데 과연 10여 년이 지난 2021년 오늘, 우리 사회는 미생 속 세상보다 더 좋아졌을까? 통계청(2020)에 따르면 경제활동인구 중 취업률은 60.4%에 불과하며, 이중 41.6%가 비정규직이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62.8%로 갈수록 심화되고 있으며, 임금불평등 또한 3.64배로 점차 커지고 있다. 또한 직장 내 갑질은 32.5%로 몇 년째 30%대를 유지한 채 줄지 않고 있으며, 여성 노동자 74.0%가 직장에서 성차별을 경험했고, 폭언, 반말, 성희롱, 허드렛일, 성별 임금차별, 채용 성차별, 승진배제 등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분명 우리 사회는 과거보다 더 진보된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삶도 과거보다 더 나아졌을까? 공정과 정의가 사회 곳곳에 살아 숨쉬고,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을까? 10년 전 미생이 담고 있는 세상과, 앞으로 10년 뒤 내 아이가 직장인이 되어 살아갈 세상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그 답은 우리 안에 있다. 변화는 더디다. 그러나 계속 행동해야 한다. 변화는 조금씩 켜켜이 쌓여 어느 틈에 우리 삶에 다가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생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우리가 바꿔 놓은 세상을 돌아보고, 우리가 바꿔 갈 세상을 그려본다. 미생이 아닌 완생의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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