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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미래뉴스&미래교육신문]

교육정책연구소 2020. 4. 23. 11:09



최성광(광주광역시교육청 장학사, 교육학 박사)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인류 역사에서 한 종족과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과 자연재해 같은 치명적인 위기는 수없이 많았다. 잉카족은 유럽인과의 전쟁으로 문명과 함께 소멸했고, 중세 유럽 흑사병을 비롯한 각종 전염병은 지금도 사람들을 위협하는 아주 강력한 위험 요소이다. 위기는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닥치지만 그 속에서 어떤 이는 죽고, 어떤 이는 살아남아 역사를 만들어 왔다.

우리민족의 역사에서도 민족의 존폐가 달렸던 위기의 순간은 숫하게 많았다. 고조선부터 지금까지 1000여 번의 외세 침략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정확한 근거 여부를 떠나 우리 역사를 통해 감각적으로 느낄 만큼 위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 수많은 침략의 역사 중 현재까지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물리적 침입은 조선말 일본에 의한 강제점령으로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우리는 민족혼까지 빼앗질 정도로 물리적 문화적 위기에 처했었다. 그 폭압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일제에 저항하며 죽었고 더 많은 사람들은 숨죽이며 살았다. 그런데 그 암흑의 시기에도 빛을 보며 살아남은 이들은 있었다. 소위 말하는 친일파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탄압받던 시기에 일제에 비위를 맞추며 민족을 배반했다. 일제는 나빴지만 친일은 더 나빴다. 그럼에도 그들은 친일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들을 짓밟고 강자에게 복종하며 기회를 엿보며 사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여기고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생존방식이 생물학적으로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외부의 위협으로 생태환경이 바뀔 때 빨리 적응한 개체들이 살아남거나 우성이 되는 것,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는 같은 민족을 핍박하고 온갖 파렴치한 짓을 하며 살아남았고, 해방이후 그들은 친미파가 되어 충성의 대상을 일본에서 미국으로 갈아타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부자와 권력자로 득세하며 다수의 서민들 위에 군림하고 살고 있다. 그래서 살아남은 개체가 강한 개체이며,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이 나왔는지 모른다.

거시적인 역사와 이념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이와 같은 일들은 자주 목격된다. 삶에 대한 가치와 철학 따윈 안중에 없이 돈과 권력, 출세와 안위만을 지상목표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며, 아랫사람에게 혹독하지만 윗사람에게는 관대하며, 오로지 자기 일만 우선이고 중요하게 여기는 그릇된 인성을 지닌 이기적 유전자들이 생존의 방식이라는 이름으로 보통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상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이들의 성공경험은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강화되어 악행의 확대재생산이 반복된다. 자연의 생존법칙을 인간의 역사에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일상의 기회주의적 자세가 생존의 방식이라는 궤변에 반대한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 그 차이는 목숨보다 고귀한 가치이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남았는지, 살아남아서 무엇을 하였는지가 중요하다. 인간에게 기회주의적 처세는 생존을 위한 자연의 적응 방식이 아닌 자신의 출세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이기적 욕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평범한 우리 일상의 삶 속에서부터 증명되어 거대한 역사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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