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김수기
별스럽지 않은 어떤 배려
신문에 기고하여 발간한 칼럼집을 발송하기 위해 우체국 창문을 밀었다.
늦은 시간 이어서인지 창구는 한산했고 직원들은 업무처리에 저마다 말이 없었다.
도심 근교에 위취한 우체국 탓도 있겠지만 그날따라 우체국은 유난히 한가롭고 차분한 가운데 가끔씩 손님들이 우체국 문을 밀어댈 뿐 별다른 어수선함이 없었다.
책 무게를 달고 전산 작업을 하는 도중 나는 우체국 창구를 이리저리 살피며 벽에 붙은 여러 가지 벽보와 우체국 창구 상품 안내 광고까지 사방을 둘러봤다.
각종 보험과 예 적금에서 어린이 보험까지 다양한 안내문이 손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 눈이 창구 여직원에게 다시 자리를 잡았을 때 여직원의 컴퓨터 자판위로 파리 한 마리가 머뭇거리고 여직원은 무심결에 그 파리를 향해 손을 저어 댔지만 파리는 쉽사리 자리를 뜰 줄 모르고 주변을 맴돌았다
이번에 그 여직원의 손동작은 신경질이 주렁주렁한 매서움과 함께 재차 파리를 박살 낼 심산이었지만 역부족을 느낀 건 바로 나였다.
그때였다. 여직원은 그 파리를 포기한 채 시선을 곧 바로 나에게 옮기곤 빙그레 웃었다.
지금까지의 자기 파리잡기에 대한 본인의 황당한 실패가 쑥스럽다는 의지 일거라 생각하여 나도 따라 미소를 흘렀다.
서로 나눈 의미심장한 어렴풋한 미소의 의미.
그런 사이 등기 우편물의 발송처리가 완료될 즈음 그 여직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손님, 방금 제가 신경질을 보이고 손을 휘저은 불쾌함을 이해해 주십시오. 손님 앞에 서 삼가야 할 태도를 보여 죄송합니다. ”
하며 양해를 구하는 입장이었다.
젊은 미모의 여직원에게 얄밉게 구는 그놈의 파리는 그 여직원의 입장에서 볼 때 신경질을 내고도 남는 망나니임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는 언뜻 어떤 답변이나 대꾸를 못하고 망설이다가 뭔가 대답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입을 열었다.
“ 죄송하기는요, 저는 불쾌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고객에 대한 배려가 대단하십니다.”
하며 등기 영수증을 받고 우체국 문을 밀었다.
집에 오는 길에 방금 우체국 창구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고객에 대한 직원의 태도를 갖추려는 그 여직원의 속샘은 요즘 유행하는 아니 입으로만 유행하는 배려와 소통과 겸손과 낮은 자세 봉사를 치유하는 작은 실천의 본보기였다.
달려드는 파리를 방치 할 수도 있고, 기다란 파리채를 들고 달려들어 박살을 낼 수도 있지만 작은 손짓으로 이를 해결하려던 고운 마음이 그나마 고객에게 실례가 됐을까 싶어 정중히 사과하는 창구 여직원의 업무 자세에서 그리고, 작은 미소로 고객을 전송하는 매너에서 지나치게 쌀쌀한 여러 기관의 창구와 크게 달라 흐뭇한 오후의 우체국을 되돌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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