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
미연씨!
미연씨는 필리핀결혼이주여성이다. 결혼생활은 25년 쯤 된다. 건너 마을에서 살고 한 들판에 농사를 짓고 있었기에 대충의 가정 형편도 알 수 있었다. 시댁은 인근에서 농토가 좋은 위치에 넓게 자리 해 있다. 농사도 부자지간에 몸을 아끼지 않고 성실하게 지어 남들보다 수확도 풍성하게 거두는 농가였다.
30년 전만 해도 이 지역은 이모작이 활성화 되던 시절인지라 들판이 경주를 하듯이 짧은 시기 외지 사람들의 손길을 빌려 농작물을 심고 거두었다. 넓은 들판이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농기계소리, 급하게 움직이는 풍경이 마치 개미의 분업처럼 철저하게 진행되던 시절이었다.
그 중 단 한 농가만이 천천히 느리게 전통적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었다. 남들은 농기계로 일을 하면 늦어진다며 더 빠른 차량을 통해 농작물을 거두지만 그 농가는 리어커로 농작물을 부자지간에 거둘 만큼만 싣고 날랐다. 아들은 앞에서 끌고 아버지는 뒤를 밀었다. 남들보다 뒤 늦게 농사가 이루어지니 내 눈에는 그 부자의 농사짓는 거동이 신기하게만 보였다.
남들은 모내기를 마무리하고 장마가 시작되면 물꼬를 살피기 위해 들녘을 다니지만 그 부자는 비에 흠뻑 젖은 채 여전히 리어커를 끌고 농작물 싣어 나르곤 했다. 이웃 농가에서는 늘 그런 사람들이라 여기며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지나쳤다. 아버지는 자유스럽지 않는 걸음걸이로 뒤를 따르고 아들은 눈빛도 마주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밀고 나아갔다.
생활방식도 남들과는 다르게 살아가고 있었다. 남들은 외출복과 작업복을 철저하게 구분을 해서 입고 다니지만 그 부자는 구분이 없이 오로지 어두운 색상의 옷차림과 검정고무신을 싣고 다녔다.
짐작대로 부자지간에 모든 일을 몸으로 하니 농사비용도 덜 들고 의복비나 생활비도 적게 쓰니 통장잔고도 많아 알부자로 통했다. 그런 부자의 안타까운 사연은 아들이 혼기를 넘었지만 짝을 이룰 수 없다는 거다. 아들은 뭔가 한 박자가 늦게 행동으로 이루어졌다. 세상 낙이 없을 것 같아 자꾸 눈길이 갔다.
어느 날인가 그 댁에 며느리를 맞았다는 것이다. 말을 전하는 어르신마다 친정 나라가 달랐다. ‘일본, 필리핀,베트남’에서 온 며느리‘ 라 했다. 들녘에서 사람들은 며느리에 대해 모두 궁금해 했었다. 그리고 걱정도 많았다. 아무리 다른 나라에서 온 며느리라지만 자린고비처럼 생활을 강요하면 버틸 수 있을까? 였다. 걱정이 지나친 사람들은 때론 간섭도 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 내외를 읍내의 아파트로 분가를 시켜야 한다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꿋꿋하게 한 집에서 사는 새 며느리를 사람들은 불안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나 새 며느리는 들녘 사람들을 걱정을 덮어버릴 만큼 의연하게 잘 살아주었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오일장에도 다니고 들판을 들러 보고 다닌다는 거였다. 사람들은 새 며느리 시집살이에 모두 놀란 눈빛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새 신랑의 다른 눈빛과 환한 미소는 들판의 봄을 예고했었다. 아주머니들은 ‘오메 총각이 고개를 들고 웃는 날도 있네“라고 농을 걸 정도였다. 더 좋은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미연씨는 8년이란 세월동안 아기가 없어 지켜보는 사람들은 애가 탔다. ’어서 밥값을 해야지‘라며 새댁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새댁이 어서 아기가 생기기를 간절하게 기대를 하다가 지칠 무렵 아기가 있다는 소문은 동네를 들뜨게 만들었다. 아기가 태어나기를 모두가 기다렸다.
평소 장애로 걷기가 불편했던 시아버지가 마을 앞 도로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 후에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어렵게 되었고 장애인 전동차로 겨우 마을 안을 다니게 되었다. 연로하시니 차츰 거동이 불편해지고 18년 동안 병원에도 모시고 다니며 병간호를 했다. 그렇게 변함없이 수발을 하는 며느리건만 생활비를 주는 법이 없었다는 거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 직장생활도 하며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것이 복잡하고 힘겨워 중고 소형차를 사고 싶다는 며느리의 말에 기겁을 하며 절대로 못 사게 말리더라는 거다. 그녀는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친 탓인지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 가게 되는 상황까지 되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혈관질환이었다.
낯선 타국에서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힘겨운 생활은 이어졌다. 시어머니의 치매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측은한 마음만 들었다. 한 가정의 기둥이 되어주는 그녀가 언젠가 고생한 날이 밑거름이 되어 활짝 웃게 될까 싶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시련은 끝이 없다. 아빠를 닮은 사랑스런 딸이 지적장애로 등급을 받았다고 전해 준다. 시름에 찬 그녀에게도 언젠가는 웃는 날이 오면 두 손 잡고 기뻐해 주리라. 미연씨 힘내요
http://www.miraenews.co.kr/news_gisa/gisa_view.htm?gisa_category=02060000&gisa_idx=16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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