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닭 한 쌍이 우리 집 마당으로 이사를 온 날이었다. 토종닭은 구멍 뚫린 빈 라면 박스에 담겨 있었다. 몇 번에 걸쳐 부탁한 토종닭이고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토종닭은 다른 닭들과 쉽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당분간은 따로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거였다. 토종닭 주인이 빈집 여기저기를 살펴보더니 예전에 외양간이었던 곳을 선택했다. 토종닭집으로는 바닥이 흙이나 모래가 있는 곳이 적절하다는 거였다. 그곳에서 박스에 든 토종닭 한 쌍과 만나게 되었다.
다른 닭들과 다르게 모양새가 작았으며 색채도 화사했고 몸체도 날렵했다. 보통의 닭은 새로운 환경에는 한쪽 구석진 곳으로 몸을 숨기건만 토종닭은 당당했다. 두리번거리는 눈망울은 사람과 맞닥뜨린 쥐의 눈망울처럼 반짝거렸다.
토종닭의 주인은 사라져 가는 토종을 보존하기 위해 귀촌했다. 그녀는 토종 씨앗이며 토종인 우리 것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녀는 토종을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이 강했다. 어르신들이 모일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토종 씨앗들을 나누고 받고, 씨앗을 보전하는 일에 사명을 부여받은 군사의 몸놀림 같았다. 농사일이 마무리되면 토종 종자 나누기를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고 험한 산촌까지 다녔다. 검정 치마에 무명저고리를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한 길을 고수 하는 사람에게서 묻어나는 의연함이 느껴졌다. 그녀와 가까이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왜 저렇게 복잡하게 살지, 대충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될 일을 하는 생각이 들자, 답답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한 알의 씨앗을 얻기 위해 다듬고 말리며 보물 다루듯 지켜내는 정신에, 그녀를 향한 공경심이 생겨났다.
편하고 경제적인 수익만 따져 색깔도 명분도 없이 흐물흐물해지는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가 되었다. 그녀는 생활 자체도 옛 방식을 고수하며 장작불을 지펴 밥을 지어 먹었다. 빨랫감도 머리 위에 이고 물이 흐르는 저수지 아래로 다녔다. 그녀는 저수지 하류 바윗돌에 걸쳐 앉아 빨랫감을 치대 흔들어 빨았다. 입으로 바람소리를 내가며 옷에 붙은 땟물을 흘려보냈다. 그 소리를 듣다 보면 뭔가 다른 세계와 내통을 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 깨끗하게 빤 옷을 마당 한가운데 바지랑대를 세워 바람과 햇살에 말렸다. 집 마당에 들어서면 그녀는 온 우주를 받들며 사는 사람 같았다. 산속에 농장을 일군 그녀는 감나무, 대추나무, 열매를 보고도 말을 걸어주고 나무들에게 수고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 집 마당으로 온 토종닭 한 쌍이 자라는 모습을 살피기 위해 수시로 닭장을 다녀갔다. 부디 잘 길러 다른 사람들과 나눌 것을 다짐했다.
닭을 오랜 세월 동안 기르다 보니 닭도 공동생활의 원칙이 분명히 있었다. 수탉은 암탉을 부리로 찍는 법이 없었다. 수탉끼리 싸움이 나면 그들은 승부를 분명하게 가렸다. 한 번 승부에서 밀려난 수탉은 항상 꼬리를 사리고 구석진 자리로 슬슬 피했다. 패자 수탉이 어쩌다 암탉과 사랑을 나누려다가 승자 수탉의 눈에 띄면 사정없이 수난을 당했다. 수탉은 또한 모이를 보면 먼저 먹는 법이 없었다. 항상 암탉을 부르기 위해 신호를 보냈다. 새빨간 리본 같은 볏을 흔들며 소리를 냈다. 암탉을 부르는 수탉은 모이를 입으로 찍는 시늉만 할 뿐 먼저 입에 넣지 않았다. 암탉이 달려와 먹는 것 같으면 그때야 수탉은 모이를 입으로 찍어 먹었다. 그것이 수탉으로서의 책임감인 듯했다. 나름의 원칙대로 빈집을 독차지하며 살아왔던 마당에 토종닭이 이사를 온 후 주인 닭(육계, 청계, 오골계) 토종닭의 기세에 눌려 구석진 자리로 밀려났다. 토종닭은 작은 체구에 비해 사납고 날카로웠다. 토종닭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자신의 짝인 암탉을 보호하는 본능도 놀라웠다. 다른 종의 수탉들이 기세 좋게 활보를 치고 사는 토종수탉에게 몇 번 도전장을 던졌다. ‘닭싸움 구경하듯 한다’더니 작은 체구에 온몸 깃털을 고슴도치의 털처럼 세우고 덤볐다. 목숨을 걸고 덤비는 맹수들의 싸움터 같았다. 토종수탉에게 기가 질린 육계 수탉은 슬쩍 뒤돌아 줄행랑쳤다. 한 번 부딪쳐 보길 바랐건만 실망스러웠다. 그 체격에 저 작은 토종수탉에게 밀리다니 모이도 주기 싫었다. 그동안 키웠던 공력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토종수탉의 깃털만 비쳐도 깜짝 놀라며 다른 닭들은 슬슬 피해 다녔다.
토종수탉은 외로워 보였다. 그래도 다른 닭들의 뒤를 따라다니는 애처로운 자세는 취하지 않았다. 무리와 어울려 다니는 근성을 벗어난 것 같은 저 당당함이 얄미워 보이기까지 했다. 한 달 전 새벽이었다. 그날따라 안개가 자욱해 한 치 앞도 분간 할 수 없었다. 걷는 내가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침 출근길이 걱정되었다. 나의 하루 시작은 닭에게 모이를 주는 일이었다. 빈 마당을 향해 들어섰다. 마당에는 닭들이 발길질로 모이를 헤치지 못하게 플라스틱을 말아 놓은 모이통이 텅텅 비어 있었다. 하루를 먹을 수 있게 모이통을 채우고 돌아섰다. 토종수탉이 오기 전에는 열 명의 암탉을 거느리고 다녔던 수탉 두 마리가 꽁지가 다 빠진 채 마당 귀퉁이에 숨어 있었다. 한 마리는 맨드라미꽃 같은 벼슬도 찢겨 있었다. 비 맞은 수탉 꼴이었다. 처량 맞다 못해 청승맞아 보였다. 토종수탉에게 당한 모양이었다. 토종수탉은 저 작은 몸체에서 기선 제압하는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꽁지 털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세우고 뒤뜰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감나무 아래 토종 암탉의 둥지 곁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토종 수탉은 암탉이 알을 품고 있어 수시로 보호를 하고 있었다.
토종은 옛것만의 의미가 아니었다. 본래의 정신임이 분명했다. 토종의 본질은 작고 뚜렷했다. 병충해와 자연재해를 견디는 힘도 강했다. 몸짓이 작고 수확량이 적다는 이유로 외면을 당하고 있다. 토종을 가까이하다 보니 내면의 세계와 마주하게 되었다. 자주 살피다 보니 내 뿌리의 힘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뭐든 많고 커야만 만족했던 지난날의 허영을 덜어내는 힘도 얻을 수 있었다. 매우 빠르게 변화를 거듭하는 현실의 불안감에 무엇이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 목이 휘도록 기웃거렸던 나를 단정하게 다듬는 힘도 길렀다. 토종은 결국 나의 본질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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