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광(광주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교육학 박사)
'결혼식장은 안 가도 장례식장은 간다.’ 슬픔과 기쁨의 무게를 이처럼 잘 담아내는 말이 또 있을까? 한국인은 기쁜 일보다 슬픈 일에 함께하여 타인을 위로하고 보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최근 코로나19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게 되면서 결혼 청첩장을 받게 되면 축의금만 보내고 예식에 참석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반면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접하면 KF94 마스크를 쓰고 손에 알콜 소독제를 범벅한 채 빈소를 찾았다. 음식도 안 먹고 상주와 잠깐 인사만 드리고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게라도 찾아가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슬픔과 기쁨 중 더 근원적인 감정은 어느 것일까? 누군가와 사랑할 때 느끼는 기쁨보다 누군가와 이별한 후 느끼는 슬픔이 더 무겁고 진하게 느껴지지 않은가? 사랑의 기쁨은 마치 입안에 든 달달한 사탕과 같아서 사랑하는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의 슬픔은 기쁨의 순간보다 수십 배의 시간동안 아픔과 회한으로 남아 눈물이 되기도 한다. 슬픔은 기쁨이 넘어설 수 없는 무한한 깊이를 가지고 인간의 가슴 가장 밑바닥에 자리 잡은 감정의 초석인 것 같다.
정호승 시인은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를 썼다. 시인은 슬픔과 기쁨을 대조적으로 사용하며 슬픔을 이타적 존재로, 기쁨을 이기적 존재로 의인화했다. 그러면서 슬픔이 기쁨에게도 슬픔을 주고,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고 하였다. 슬픔은 집에 귤이 남아 있어도 겨울 밤거리에서 추위에 떠는 귤 장수 할머니의 귤을 깎지 않고 사는 것이고, 기쁨은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이기적인 존재라고 하였다. 슬픔이 사랑보다 소중할 수 있는 것은 남의 아픔을 보듬고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존재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슬픔은 얼어 죽어 가는 사람에게 가마니 한 장 덮어주지 않는 이기적인 기쁨을 기다리며 기쁨이 이타적인 사랑의 소중함을 깨우치도록 하겠단다. 또 가난한자에게 고통뿐인 함박눈 내리는 겨울 대신에 봄눈을 데려와 소외된 사람의 슬픔을 위로하겠단다. 시가 갖는 함축적 의미를 머리로 분석하기 앞서 가슴으로 이해가 되는 시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기쁜 일보다 슬픈 일들이 많다. 누군가는 취업이 안 되어 고통 속에 청춘을 보내고, 집을 살 수 없는 누군가는 마음을 졸이며 살 곳을 찾아야 하고, 또 누군가는 억울하게 다치거나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수시로 접하고 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면 누군가 겪고 있는 슬픔에 연민과 동정이 생긴다. 그리고 슬픔의 대상이 곧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누군가를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슬픔은 이기적인 개인의 삶을 반성하게 하고 잊고 있던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촉구하게 된다.
기쁨보다 찬란한 슬픔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안정을 줄 것이다. 우리 사회에 슬픔을 던지는 사람들은 연탄재처럼 어느 한 때 남을 위해 자기 몸을 불태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주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슬픔의 댓가로 겪어야 하는 고통과 아픔이 헛되지 않도록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제도와 법과 문화 등을 분명히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슬픔이 불쏘시개가 되어 기쁨으로 승화하는 희생의 가치를 모두가 누리게 해야 한다. 인간 내면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 잡은 슬픔이 기쁨에게 말하고 있다. 나의 슬픔이 너의 슬픔이 되고 우리의 슬픔이 되어 메말라가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사랑과 기쁨이 넘치게 하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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