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시> 벽을 말하다[미래뉴스&미래교육신문제공]

교육정책연구소 2019. 2. 21. 11:27



조기호시인

 

벽이 당신 앞에 마주설 때

그저 멋진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서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직 벽을 알지 못하는 말이다.

 

벽은 거울처럼 자신을 비춰줄 수 없어서 답답하다.

당신이 즐거워하는 멋진 꿈을 떠받들며

그렇게 기우뚱거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등줄기를 곧추세워야 하는지에 대하여

하얗게 초승달이 돋고 질 때마다

크고 작은 당신의 추억들을 쓸어안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아픔을 간직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그러나

홀로 흔들리며

당신 뒤에 숨어서 쓸쓸히 살아온 벽

사랑이란 

하나씩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라는

 

벽은 오늘도

당신의 하늘을 향하여,

자꾸만 구부러지는 허리를 뒤로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머리에서 발끝까지 촘촘히 박힌

못들을 보듬을 것이다.

 

끝내 등을 보이지 않는 벽

한사코 껴안고 살라 하는 벽

 

여태껏

녹슨 못 자국 하나 가져보지 못하였다면

눈물 젖은 무릎 한 켤레 가져보지 못하였다면,

벽에 대하여

어리석음에 대하여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슬픈 일이다. 아니 참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가 하나씩의 그림을 간직하고 기뻐하는 일이란,

그리고 그것의 뒤편에 쓸쓸히 숨어 앉은

또 하나의 그림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일이란.

 

궁금하다면 지금 당신의 그림을 떼어보라.

그리하면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가 당신과 마주할 것이다.

당신의 뒤에서 당신을 위하여 말없이 살아왔던 어둔한 벽이,

그리고 촘촘히 그 가슴에 구멍을 뚫었던 날카로운 못 자국들이

무지하고 범속했던 당신의 욕망으로 하여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행복인양, 한사코 그 모든 아픔을 껴안으며

날마다 등줄기를 곧추세우는

저 어리석은 벽의 심사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더 나누어주지 못하여, 다 내어주지 못하여

죽도록 괴로워했던 적이 있었는가?

당신이 간직한 그 멋진 풍경 너머의 하늘을 향해

감히 묻거니

사랑을 한다는 것이 두렵지 않은가?

문득 당신의 대답이 궁금해진다….

 

 

 

【조기호 약력】

 

▪ 광주일보(84) 및 조선일보(90) 신춘문예 동시 당선

▪ 2000년 전남시문학상 및 2002년 목포예술상 수상

▪ 전남시인협회부회장, 목포시문학회장, 목포문인협회장 역임

▪ 목포연산초등학교 교장 퇴임

▪ 현) 「목포문학상」 운영위원 및 「한국동시문학회」이사

▪ 현)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 ‘동시창작’ 강의

기사더보기:

http://www.miraenews.co.kr/news_gisa/gisa_view.htm?gisa_category=02000000&gisa_idx=117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