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시룻번[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3. 5. 24. 09:22

김    미

무궁화 열차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언니가 서울에서 내 생일을 쇠자며 초대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타는 열차다. 앙상한 나무들은 시린 겨울날의 한기를 더했다. 차창 밖의 들판은 끝없이 이어졌다.

빈들 베어버린 벼 포기 사이에 얹힌 흰 눈을 보는 순간, 어린 날 따끈따끈하게 먹었던 시루떡으로 비쳤다. 나는 마치 산야를 감상하는 관객 같았다. 스크린처럼 들판이 스쳐 갈 때 산비탈 흙과 섞인 눈빛은 어떻게 봐도 한 켜의 팥시루떡이었다.

나는 이 떡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언니는 음력 이월이면 내 생일 떡이라며 어김없이 시루떡을 했다. 가마솥에 시루를 걸어 떡가루에 팥고물로 켜켜이 앉혔다. 마지막으로 시루와 가마솥이 한 몸처럼 시룻번을 바르는 일이다. 김이 빠져나가지 않게 떡가루를 이겨 솥 둘레에 촘촘하게 발랐다. 시루를 걸어 찌는 일은 시룻번의 역할이 컸다. 이 작업이 완전하지 않으면 떡이 제대로 익을 수 없다며 온 정성을 다했다.

어머니는 사람과의 관계도 이와 같다고 했다. 서로 간에 존중해 잘 받들어야만 그 관계가 단단하게 유지될 수 있는 법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이 작업만은 감시자처럼 철저하게 단속했다. 시롯번을 붙일 시 용변을 보는 일도 금했다. 조왕신의 부정을 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몸을 뒤틀고 시롯번 바르는 일은 떡을 찌는 일보다 더 공력을 드렸다. 그런 후에야 언니는 차분하게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불을 지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엌은 시루떡 익어가는 냄새로 가득 채워졌다. 아궁이 앞에서 나란히 불 지피는 언니와 내 얼굴은 익어가는 고구마 빛깔이었다.

언니는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식기 전에 드시게 한다며 한 접시씩 고샅 집집을 빠짐없이 돌리게 했다. 아이들이 많거나 어른이 계시는 집은 한 조각씩이 더 올라갔다. 어른이 계신 집부터 서둘러 가게 했다. 나는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표정에 더 신났다. 살갑게 전해주던 손길과 고향 마을 고샅이 아련히 다가왔다.

언니는 솜씨가 좋고 유순했으며 웃음 많았지만, 말수는 적었다. 어머니는 말수가 적은 언니가 시집가서 어떻게 살기나 할까 걱정이 많았다. 어머니는 언니가 결혼한 후 집안으로 젊은 여자가 들어서면 가슴이 철렁했다고 당신의 심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곤 했다.

언니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 무렵 곱게 단장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언니는 결혼식장에서 많이 울었다. 식장에서 신부 화장을 진하게 했던 언니는 눈물 때문에 마스카라가 얼굴 전체로 번져 내렸다. 결혼식을 마친 후 나 역시 언니가 없는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서 발을 뻗고 한없이 울었다. 제발 언니를 데려오라고. 하도 서럽게 우는 나를 달래느라, 집안 어른들이 진땀을 뺐다. 그날 내 주머니에는 내가 좋아하는 강정과 지전이 두 장이나 들어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 언니가 집으로 올 것 같은 마음에 언덕이 훤히 보이는 돌다리에 앉아 언니를 기다렸다. 그곳은 마을에서 오가는 사람이 훤히 다 보였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내가 병이 날까 싶다며 언니 얼굴 잠깐 보자고 집을 나섰다. 새 사돈 어려우니 대문 사이로 한 번만 보고 오자 했다. 생전 처음 가는 도시였다. 차들은 정신없이 오고 갔고 검은 연탄재가 길목 여기저기에 묻어 있었다. 큰길에서 들어간 골목길에는 집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나무 대문이 언니네 집이라고 했다. 중매한 작은 어머니가 집을 안내했다.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나를 대문 틈으로 디밀었다.

그곳에서 보이는 사람은 내가 꿈에도 못 잊는 언니였다. 언니는 작은 키에 저고리 소매를 걷어붙이고 종종걸음치며 장독대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는 언니 옷자락만 봐도 눈물이 나왔다. 속울음을 참느라, 바로 보지 못했다. 형부가 방문을 밀고 나오자 서로 힐긋거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왜 그렇게 서운했던지 다시는 언니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가마솥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처럼 눈물이 계속 나왔다. 옷소매로 쓱쓱 문질렀다. 내 생각으로는 언니도 울고만 있을 줄 알았다. 어두워지니 자고 가라며 잡아끄는 작은 어머니의 손도 뿌리쳤다. 어머니를 재촉해 집으로 왔다. 어머니는 하룻밤 더 자고 내일 언니 얼굴 한 번 더 보고 가자며 나를 달랬다. 나는 인제 그만 봐도 된다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작은집 식구 염려를 뒤로하고 달밤에 어머니 손잡고 집으로 왔다. 정류장에서 우리 집까지집까지 한 시간은 더 걸어야 했다. 둥근달이 산 중턱에서 우리 모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름달은 양손에 전등을 받들 듯 비추었다. 어둠이 스며든 밤길은 고요했다. 두 개의 그림자도 속삭이는 모녀의 대화를 듣는 듯 소리 없이 따라왔다. 두 사람의 발소리는 박자감이 있었다. 어머니는 혼잣말처럼 큰딸이 잘사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다 잊어버리고 잠을 자도 되겠다고 했다.

말수가 적었던 언니는 엄마가 염려했던 것처럼 쫓겨 오는 것이 아니라, 시댁 식구들을 잘 품었다. 뒤죽박죽 섞인 세간살이처럼 시끄러웠던 시동생들의 흠도 일절 말하지 않았다.

언니는 어떤 상황에도 웃음으로 대했다. 시동생들은 언니를 가리켜 세상에 다시없는 큰형수라고 했다. 지금도 언행은 여전하다. 언니 주변에는 그동안 함께 했던 이웃들과 유년시절 친구들이 울타리처럼 버티고 있다. 봄, 가을이면 언니는 할머니 군단처럼 배낭을 메고 여행을 다닌다. 과묵했던 언니의 성격은 오히려 사람들과 좋은 관계 유지에 도움이 되었다. 언니는 지금도 사는 일이 녹록지 않건만, 늘 까르르 웃는다. 언니는 사람관계의 시롯번이었다. 서로 간에 김이 빠져나가지 않게 관계를 편하게 이어주었다. 그런 언니가 내가 어디쯤 오느냐고 자꾸 물어왔다. 내가 도착 시각에 맞춰 따끈한 팥시루떡을 내놓으려고 시롯번 붙이는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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