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개봉한 지 50일 넘은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을 뒤늦게 보았다. 통영 견내량에서 한산 앞 바다로 이어지는 스펙터클한 전쟁 씬이 인상적인 영화다. 허나 129분간의 상영시간 동안 나를 감동시킨 것은 이순신과 준사의 대화였다. 준사는 ‘도노’라 불리우는 일본인들에게 존경받는 군인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이 이끄는 해전에서 패하고 포로로 잡혔다가 이순신과 대화에서 감명받아 조선으로 귀화한 사람이다.
준사는 이순신에게 묻는다. “이 전쟁은 무엇이냐”고, 이순신은 “의(義)와 불의(不義)의 전쟁이다”고 말한다. 단순히 조선과 일본, 나라와 나라 간의 전쟁이 아닌 장수와 부하 간의 의리를 지킬 것인지, 아니면 부하를 희생물로만 생각할 것이지 대한 준사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이순신의 답변으로 보인다. 부하를 이용만 하는 일본 장수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던 준사는 이순신에 감명하여 이중첩자로서 이순신을 돕는다.
영화 한산에서 펼쳐지는 이순신과 준사의 대화와 이후의 준사의 행동을 보면서 세상의 모든 전쟁은 그 시대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물음과 철학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라는 ‘국가와 국가’, ‘국가들과 국가들’의 싸움뿐만 아니라 국가 내에서의 싸움 즉 ‘내전’(內戰, civil war)에서도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가’라는 질문은 존재한다. 스페인내전에 참전한 헤밍웨이가 던졌던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가’는 질문처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6.25전쟁,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1987년 6월민주항쟁 등이 그렇다.
그 중에 하나인 6월민주항쟁은 수많은 시민들이 독재에 항거해서 거리로 나와 싸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당시 누군가가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에 대한 답변은 아마도 딱 네 글자, ‘민주주의’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독재타도’를 외쳤으며,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피와 땀, 목숨으로 헌신했다. 그리고 당시 20대 대학생 신분으로 활약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국가와 사회 곳곳에 50대 기성세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소위 과거 ‘586세대’(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50대), 또는 현재 ‘86세대’로 불리우는 당시 6월민주항쟁에 선봉에 섰던 그들이 안타깝게도 지금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당시 항쟁의 중심에 섰던 수많은 이들이 ‘젊은 피’로 정치권에 수혈이 되었지만, 그들이 보여준 비민주성과 내로남불, 무능에 대다수 국민들이 실망했기 때문이다.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을 해서 ‘민주주의’를 쟁취했지만, 실상 ‘민주주의’가 무엇이지, 어떻게 실천해나가야 한지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었다’는 말처럼, 민주주의를 쟁취한 민주주의자가 아닌 독재와 싸우다가 독재를 닮아간 사람이 된 것이다. ‘586세대’가 태어난 1960년대의 대한민국 교육은 암기와 순응, 즉 충성만 하는 거짓 민주주의자를 만들어내는 체제였다.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학교운동장에 줄을 세워서 조회를 시키고, 교련시간에 군사훈련에 준하는 교육을 받아왔다. 그런 교육시스템을 거부하였지만, 민주시민이 되는 교육을 받아보지 못하고 대학에서 써클(동아리) 활동을 통해 이념적으로 무장된 투사가 되었지만, 민주주의 시스템이 무엇인지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체험하지 못한 세대였다.
그러한 세대가 민주주의 쟁취투쟁을 통해 민주헌법을 구현하고 대통령을 직선제로 뽑는 등 민주주의체제로 바꾸어갔지만, 실질적으로 독재에 물들어있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시스템은 바꾸지 못했다. 30대, 40대에 정치투쟁을 통해 권력을 쥐게 되었으나, 유능한 권력자가 갖추어야 할 민주적 소양, 공정성, 투명성, 이타심 등을 배우거나 쌓지 못했고, 무능한 권력자가 국민에게 횡포를 보이는 비민주적 행태, 불공정, 비도덕성, 내로남불 등으로 점철된 직업적 정치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 소위 ‘586정치인’의 모습이다.
이제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절차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교육시스템이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학생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교사나 민주시민교육을 하고 있는 강사까지 그러한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해 직접적인 훈련을 받아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요즘 퍼실리티 강사교육 등 민주시민교육을 실행하기 위한 훈련과정이 있지만, 민주주의는 단순히 ‘수강’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투쟁’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순신과 준사의 대화에서 임진왜란이 ‘의와 불의의 전쟁’이라고 얘기할 정도의 국경을 넘어 세계시민으로서 전쟁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목적과 이유에 대해 묻고 말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와 시간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교육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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