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중독되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 돋친다고 했지만, 나는 하루라도 도서관에 들르지 않으면 불안한 기운이 몸 안에 번졌다. 도서관에 중독된 이유를 굳이 찾아보았다. 집 바로 옆에 도서관이 있다. 몇 걸음 걸어 읍내로 가는 길에 고개만 우측으로 돌리면 내 눈에는 ‘무안 공공도서관’ 명칭이 뚜렷하게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형제집이라도 되는 양 늘 보아도 반가웠다. 일이 있어 못 가는 날은 못 가 아쉽고 갈 수 있는 날은 갈 수 있어 기쁜 곳이었다.
결혼 직후 옆 마을에 도서관이 들어선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자주 들리게 되리라는 생각은 못 했다. 그래도 도서관이 들어선다는 소식은 반가웠다.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 때는 마음뿐이었지 갈 수 없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가끔은 데리고 책을 대출하기 위해 들렀다. 그리고 도서관은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았다. 이렇게 일 만하다 죽는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고민하다가, 나도 도서관에 가야 하는 이유라도 만들고 싶었다. 매일 등교하지 않아도 되는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다. 이런 정신없는 와중에 공부가 말이 되느냐며 남편이 말렸다. 말리니 더욱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일단 입학하면 졸업은 천천히 해도 되니 어딘가에 적을 두고 공부를 시작해 보고 싶다고 했다. 방송통신대학 공부는 스스로가 하지 않으면 언제나 그 자리였다. 공부해야겠는데 자영업을 하다 보니 늘 사람들이 북적거려 어려웠다. 일이 산처럼 쌓였고 그 일이 다 돈이라고 생각하니 공부와 일 사이에서 갈등도 생겼다. 차라리 일을 모르는 체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몸을 피했다. 처음에는 새벽부터 죽어라 일하고 잠깐의 틈을 이용해 다녔다. 어라, 도서관 학습실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잠이 쏟아졌다. 거의 눈을 떠보지도 못하고 잠만 자다가 집으로 온 날도 있었다. 왜 그렇게 잠이 쏟아지던지 옆 사람에게 부끄러웠다. 잘못하다가는 코골이라도 할 것 같아 긴장되었다. 사시사철 쾌적한 환경에서 엎드려 잠을 실컷 자고 일어나면 얼굴에 누름꽃처럼 책 자국이 그려져 있었다. 도서관에서 부족한 잠을 푹 자고 나니 몸이 개운했다. 처음에는 도서관은 지친 내 몸에 활력을 되찾아주는 곳이었다.
20년 전 도서관 관장은 매일 오다시피 하는 나의 정체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차 한잔하자며 학습실까지 들어왔다. 민망했다. 생각처럼 책을 많이 읽지도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 들통이 날까 봐 피했다. 그가 나중에는 학습실까지 와 인사했다. 나는 우수한 성적은 아니었지만, 도서관을 다니며 방송통신대학을 무사히 4만에 졸업했다. 그 이후에도 학습실에서 책을 읽게 되었다. 그래도 잠은 여전히 쏟아졌다. 고백하자면 내 얼굴에 주름이 많은 이유가 엎드려 잠을 많이 잔 탓인가 생각까지 들었다. 도서관 직원이 매일 출근 도장을 찍듯 오는 내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내 뒤를 따라 유리창 너머로 나를 살폈다고 했다. 당연한 순서였지만, 일단은 쾌적한 환경에서 실컷 잠을 잤다. 결국은 도서관에 잠자기 위해 오는 여자로 낙인이 찍혔다. 어느 날은 그 여직원이 내게 숙박비 받아야 하겠다고 했다. 나는 당연한 요구라고 가끔 차를 대접했다. 도서관이 맺어준 소중한 사람과 인연이었다. 누군가는 도서관은 어머니였다고 했지만 내게 있어 도서관은 종교였다. 영육을 채워주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도서관이 친구였다. 그러니 억울하거나 울적할 때도 도서관으로 갔다. 가만히 일의 전후를 되짚어가며 무엇이 문제인가?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당장 포기를 해야 하는지 가만히 열람실로 들어가 책 서가에 진열된 책 제목만 읽어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너무 기뻐도 도서관을 찾았다. 너무 방방 뛰어 그 기쁨이 남의 눈에 거슬릴까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 도서관엘 평소처럼 노트북을 가지고 들렸다. 내 자리는 지정석이 될 만큼 매일 앉게 되었다. 길지 않는 시간이지만 잠깐 얼굴만 내밀고 가기도 했다. 그 자리에 하얀 쪽지가 있었다. 나는 누가 쓰레기를 안 치웠나 싶었다. 하얀 종이에 메모가 있었다. ‘노트북을 쓰시는 분께’라고. 무슨 일인가 읽다 보니 노트북 사용하는 소리가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얼마나 벼르다, 쓴 편지라고 생각하니 미안해 그대로 학습실을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하나 그동안 몸담고 살아왔던 집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막막하고 쓸쓸했다. 계단을 내려 집으로 내려오는 길은 사랑했던 고향 땅을 등지고 타지로 떠나는 기분이랄까? 찹찹하기만 했다. 며칠간 입맛도 잠도 못 이루었다.
고심하다 도서관 관장을 찾아갔다. 원래가 대범한 성격에 못 미치는 탓에 몇 번을 망설였다. 잠을 못 이룬 채 벌떡 일어나 베개를 놓고 도서관 관장과 면담을 하는 실습도 했다. 도서관 직원들은 머무는 시간이 2년 정도인지라 얼굴 익히기도 힘들었다. 관장과 면담을 신청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관장에게 내 사정을 말했다. 도서관에서 노트북을 사용해도 될 장소 좀 물색해 달라고 했다. 얼굴도 똑바로 못 보고 어리바리하게 나의 요구사항을 말했다. 관장은 알다시피 이 도서관은 장소가 협소해 어떠하면 좋겠냐 했다. 그 말은 맞다. 장소가 정말 비좁아 매해 공사를 했다. 이쪽저쪽 옮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나중에는 열람실에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도서관 이용자들이 오며 가며 소란스러운 점은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관장은 내 요구를 받아주었다. 직원에게 콘센트도 마련하게 했다. 어찌나 기쁘던지 그날은 기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만의 서재를 거저 얻은 기분이었다. 글을 쓰다가 자유롭게 서가에 비치된 책을 자료로 볼 수도 있었다. 물론 절차를 밟아야 하겠지만. 뒷날은 다른 직원들 미안해 새로 마련해 준 자리를 찾아가기도 어색했다. 하루를 머뭇거리다 도서관 열람실에 들어섰다. 사서 선생은 기다리고 있었다며 공손하게 대해 주었다. 내로라하는 작가도 아니다 보니 작가라고 말도 못 해보고 살았다. 사서 선생은 자꾸 ‘작가 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나는 졸지에 열람실 서가에 수많은 책을 보며 노트북을 당당하게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다. 정리 정돈된 수많은 책만 보아도 나는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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