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숫돌[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3. 11. 15. 10:33
김   미

어릴 적 아버지가 일하는 자리에는 숫돌이 함께했다. 아버지는 일터로 나가기 전 하루 써야 할 농기구부터 챙겨 놓은 후 아침 식사를 했다. 아버지의 두 개의 숫돌 중 하나는 우리 집 수돗가 거치대에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일터로 가지고 가 수시로 무딘 날을 갈아 썼다. 숫돌은 아버지에게는 꼭 필요로 하는 것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그것을 무심하게 봤다. 숫돌이 가끔은 휩쓸려 다른 자리에 굴러다녀도 그러려니 모른 척 지나쳤다. 이웃집에 홀로 사는 친구 엄마는 갈아야 할 낫을 몇 자루씩 아버지에게 갈아 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그럴 때도 심혈을 기우여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숫돌에 날을 문질렀다. 숫돌에 날을 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몰아의 경지였다. 그곳을 지날 때면 ‘쓱’ 날이 갈리는 소리만 들렸다. 숫돌에 날을 갈 때는 물기가 마르지 않도록 몇 방울의 물도 적셨다. 그 물의 역할도 중요했다. 한쪽으로 갈다 보면 날이 엇갈리지 않는지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아버지는 날이 만족스럽게 갈아지면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후 연장은 따로 한쪽에 모시듯 두었다. 날을 가는 것도 원칙이 있었다. 아무렇게나 대충 문지르면 날이 무뎌지는 원인이 되었다. 아버지는 어떤 순간에도 숫돌을 이용해 날을 가는 일만은 맡아 했다.
숫돌은 주인이 쓸모없다고 여겨 버리기 전까지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어찌 보면 숫돌은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인을 이룸이었다. 숫돌은 자신이 희생한 만큼 그럴듯한 자리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있는 듯 없는 듯 허술한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숫돌은 한번 준비해 놓으면 잊어버리고 쓸 만큼 사용 기간도 길었다. 숫돌은 수돗가 어디에서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그대로 다 맞았다. 자신을 방치했다고 한쪽이 일그러지거나 망가지는 법도 않았다. 숫돌은 자기 몸이 닳도록 희생해 상대를 빛나게 했다. 닳고 닳아 뼈대가 드러나 두 쪽으로 나누어져도 일을 했다. 누군가는 두 쪽 중 한쪽을 들고 가 다급할 때 쓴다고 했다. 숫돌은 무딘 쇠를 날렵하게 갈고 닦아 상대에게 새로운 힘을 주는 역할을 충분히 감당해 냈다.
아버지는 가난한 종갓집의 장남이었다. 동생들과 자녀들 뒷받침하는 일은 당신 생전에 보람으로 여겼다. 사람으로 태어나 좋은 옷과 자신만이 배불리 먹는 일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다. 아버지는 의복과 먹거리도 좋은 것은 동생이나 자녀들에게 주길 원했다. 당신은 좋은 것으로 먹거나 입는 일을 죄악이나 되는 것처럼 멀리헸다. 당신으로 인해 형제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다 보니 일터로 다니는 일 외에는 외출도 즐겨 하지 않았다. 당신이 농토에 뿌린 씨앗들이 충실하게 잘 자라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도록 몸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는 농사짓는 일에서만큼은 대단한 지혜를 지녔다. 흙의 성질과 기후를 잘 조절하여 풍작이 되도록 온 정성을 다했다. 그만큼 씨앗 한 톨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수시로 살피는 마음이 성실한 열매를 약속했다. 아버지는 논밭으로 오가는 길에 남의 곡식도 뭔가 부족해 보이면 유심히 살펴 회생할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아버지의 손에는 항상 농기구들이 들려 있었다. 그런 아버지 노력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도시로 나와 유학 생활도 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몸은 닳아져도 우리 형제들은 도시에서 편안하게 학교생활이 가능했다. 그런 아버지가 자녀들이 보고 싶을 때는 농사일하기 어려운 비가 오는 날을 택했다. 아버지에 유일한 외출 날이었다. 그날이 마침 학교에서 친구들과 하교하던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버스 정류장 쪽에서 비척거리며 쌀가마니를 매고 오고 있었다. 당신은 비를 맞으며 쌀가마니는 비를 안 맞히기 위해 불편해 보이는 자세였다. 나는 제발 아버지가 아니길 빌었지만, 큰 키에 짧게 자른 머리와 무명 한복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아버지였다. 왜 그렇게 얼굴이 불에 댄 듯 달아오르기 시작하는지. 아버지와 친구들은 조금 후에 맞닥뜨려야 하는 길이었다. 친구들의 눈길이 아버지에게 쏠리는 순간이 두려웠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 그 길로 나는 다시 뒤돌아 교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친구들에게는 교실에 참고서를 두고 왔다는 이유를 댔다. 그날 아버지에게 평생 씻지 못할 불효를 했다. 그렇게 못난 딸을 위해 아버지는 몸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 죄를 씻을 길이 없었다. 그 불효가 지금까지도 나를 힘들게 했다. 친구들에게도 한없이 부끄러웠다. 아마 그때 친구들도 눈치를 채지 않았을까 싶어 그 친구들과는 연락도 두절했다. 내 불효를 헤아린다면 그 한 가지뿐겠는가 만은 비가 오는 날이면 유독 그 불효가 붉은 완장이 되어 나를 부끄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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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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