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한민족과 기록문화[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3. 4. 19. 09:22

박 철 한

봄볕이 따스한 날, 가까운 산에 올랐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할 즈음 저만치 어느 묘소에서 시제를 지내는 듯 사람들이 옥작거린다. 유교의 영향으로 예로부터 조상숭배 정신이 남달랐던 우리겨레다. 유교문화는 의례의 형식주의, 신분계급의식, 남여차별 등 폐단도 없지 않으나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리게 된 것은 유교예절 때문이었다. 시대가 변하여 제사풍속도 쇠퇴하고 있다지만 아직까진 일 년에 한 번씩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정성을 나타내는 의식이 우리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기야 뿌리 없는 나무가 없으리니 시대가 변했다 하여 어찌 자신의 뿌리를 소홀히 대할 수 있으랴.

20세기 베스트셀러로 꼽힐만한 유명한 소설로 미국의 ‘알렉스 헤일리’가 쓴 ‘뿌리’가 있다. 그 소설이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 데는 소설의 내용보다도 정작 다른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작가 조상의 실제 이야기라는 점과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작가의 눈물겨운 노력이 감명 깊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고발적인 시각으로 쓰인 소설의 내용도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이 사실에 근거하여 극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소설의 주인공인 ‘쿤타킨테’는 작가 외할머니의 할아버지의 외할아버지로서 작가는 소설주인공의 7대손이 된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 먼 조상이 아프리카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끌려온 노예였으며 그 이름이 ‘쿤타킨테’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아프리카 작은 부족마을의 이름과 쿤타킨테라는 이름만 알 뿐 어느 나라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작가는 자신의 뿌리를 찾기로 작심한다. 각고의 노력으로 그토록 넓은 아프리카 대륙의 수많은 부족마을 지명을 일일이 수소문하여 비슷한 이름을 가진 마을을 알아내고 그곳으로 직접 찾아간다. 그곳에는 문자나 기록문서도 없었으며 오직 마을의 역사가 이야기로만 전해 내려오는 곳이었다. 그런데 작가의 노력이 하늘에 닿았는지 그곳 역사를 말로 전수하는 노인으로부터 200여 년 전에 노예사냥꾼들에게 많은 부족사람들이 끌려갔으며 그중에 ‘쿤타킨테’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머니에게 들은 조상의 이름과 같음을 확인한 작가의 심정이 어떠했으랴. 작가는 책에 “세상에 태어나 그때처럼 오래도록 서럽게 울어 본 적이 없었다.”라고 적고 있다.

그 후 작가는 노예매매문서와 기록물 등을 확인하며 조상의 행적을 찾아 터울거린다. 우리처럼 족보가 없는 미국에서 200여 년 전에 살았던 조상의 행적을 찾기가 어디 쉬운 일이었으랴. 결국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쿤타킨테가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두 다리가 잘리면서도 결혼을 하여 딸을 낳고 그 딸이 아들을 낳았으며 그 아들의 친손녀가 바로 자신의 외할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내기에 이른다. 실로 눈물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 ‘뿌리’가 발표되었을 당시 미국에서는 한동안, 뿌리 찾기 운동이 일어나 “한국처럼 족보를 만들자”라는 의견까지 나오기도 했단다. 사실 우리에겐 어느 집안이나 족보가 있어서 조상의 행적을 찾는 일이 별것 아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만약, 수백 년 전의 조상까지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는 우리의 족보를 본다면 경탄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조상숭배와는 별개로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우리겨레의 정신문화를 속속들이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 중에 기록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2019년 현재 세계기록유산은 총 432건으로 우리는 오스트리아 같은 16건이 올랐는데 그 많은 나라들 중 우리보다 많이 등재된 나라는 독일(24건), 영국(22건), 폴란드(17건), 네덜란드(17건) 등 네 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나라도 크고 역사도 깊은 중국이 13건에 불과하며 일본은 겨우 7건이다.

우리의 세계기록유산은 직지심체요절, 훈민정음 해례본, 조성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궤, 해인사 고려대장경판, 동의보감, 일성록,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난중일기, 새마을운동기록물,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유교책판, 조선통신사 기록물,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등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은 우리의 기록 문화를 가장 뚜렷하게 대변한다. 승정원은 조선시대 왕명을 출납하였던 기관이다. 승정원일기에는 왕의 하루 일과와 지시, 명령, 각 부처의 보고와 상소자료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 말고 이 세상 그 어디에 왕의 하루일과를 그토록 자세하게 기록한 예가 또 있으랴. 안타까운 것은 이전의 자료는 화재로 없어지고 1623년부터 1910년까지의 기록만 남았는데 그것만 해도 3,243책이나 되는 방대한 양이란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470여 년간의 역사를 담고 있는 기록물이다.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당초 실록에 3부를 더 필사하여 총 4부를 각기 다른 장소에 보관했기 때문이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한 조치였으니 기록물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실록은 사관들이 기록했는데 절대 권력을 가졌던 왕조차도 대신들과 정사를 논하며 사관을 의식할 정도였고 실록을 마음대로 볼 수도 없었다. 실록의 내용을 왕에게 유리한 쪽으로 고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니 거짓이 없는 역사를 후세에 전하려는 마음가짐이 그와 같이 만유루없었다. 무릇 기록이란, 실제 있었던 일을 훗날에 알리기 위함이니 거짓을 기록해서 무엇에 쓰랴.

‘천재불여둔필(天才不如鈍筆)’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 기억을 잘하더라도 둔한 글씨로 써놓은 것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우리의 기록유산이야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우리겨레의 정신문화다. 호랑이는 죽어도 가죽은 남는다는데 사람은 죽어도 기록물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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