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무궁화의 자존심[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2. 6. 15. 10:03

박 철 한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란 말이 있다. 열흘 동안 붉게 피어있는 꽃이 없고 권세는 십년을 넘기지 아니한다는 말이다.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일순간에 지고 마는 꽃에 비유한 그 말은 일시적인 권세나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결코 남을 업신여기거나 자만하지 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백일홍(百日紅)’이란 이름의 한 해 살이 초화(草花)가 있는데 실제로 꽃이 백여 일 동안 핀다. 그렇다면 어떤 꽃이든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시든다는 말과 모순(矛盾)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과 ‘백일홍(百日紅)’의 의미는 이렇다. ‘화무십일홍’은 한 송이의 꽃을 전제로 하는 말이며 ‘백일홍’은 한 그루의 식물체를 전제로 한다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국화과의 백일홍은 칠월부터 시월까지 꽃을 피우는데 먼저 핀 꽃이 시들어도 계속해서 다른 꽃대가 나와 피어나므로 그와 같은 이름을 얻었다. 일년생 초화(草花)인 백일홍 말고도 여름부터 가을까지 계속 꽃을 피우는 식물로 낙엽관목(落葉灌木)이자 매끄러운 줄기가 특징인 배롱나무가 있다. 배롱나무도 한 송이의 꽃은 여느 꽃처럼 피었다가 십일이 못 되어 시들지만 다른 꽃들이 계속 피어나서 백여 일을 이어간다. 그러니 배롱나무 전체를 놓고 보면 오랜 기간 동안 계속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배롱나무를 일명 백일홍나무라고도 하는데 원래 백일홍나무가 배롱나무로 변하였을 것으로 추측될 뿐 확실치는 않다.

우리의 나라꽃으로 ‘섬세한 아름다움’이란 꽃말을 가진 무궁화도 꽃피는 기간이 백여 일이나 된다. 무궁이란 이름은 중국에선 무궁화를 목근(木槿)으로 표기하며 ‘무친’과 비슷하게 발음되는데 그것이 ‘무긴’으로 되었다가 무궁(無窮)이란 한자어를 취음하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은 예로부터 무궁화를 우리 고유어로 ‘무우게’라 하였으며 그 말이 무궁으로 변하여 한자음을 따서 쓰게 되었단다.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무궁화는 끝없이 피는 꽃이란 뜻이니 그 생태를 감안할 때 꼭 알맞은 이름이다.

무궁화는 좀 특이한 개화습성을 가지고 있다. 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해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꽃송이가 떨어지고 다음날 새로운 꽃이 핀다. 당일 피어 당일 지는 방식으로 백여 일을 반복하니 웬만한 크기의 무궁화나무 한 그루에서 일 년이면 수 천 송이의 꽃이 핀다. 식물체의 여러 꽃 중에는 나팔꽃처럼 워낙 가냘프고 약하여 아침 일찍 피었다가 낮에는 오므라드는 하루살이부터 길게는 일주일까지 그 화려함을 유지하는데 대부분 퇴색되어 볼품없이 되어서도 상당히 여러 날을 지지 않고 버틴다. 그런데 꽃송이가 화려한데다 크고 두툼한 무궁화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니 뜻밖이다. 중요한 것은 무궁화나무가 시든 꽃송이를 기어코 당일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식물체의 입장에서 품위를 유지하려면 꽃이 화려할 때는 당연히 붙잡고 있어야 하겠으나 퇴색되어 볼품이 없어지면 즉시 떨어뜨리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어쩌면 무궁화나무는 남에게 볼품없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꽃이 가장 화려한 하루만 붙잡고 떨어뜨려 다음날 새로운 꽃을 피우는지 모른다. 남에게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무궁화나무의 자존심이 어지간하다. 하긴 대한민국의 나라꽃이니 그만한 의지는 있어야 하리라.

애국가 후렴에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구절이 나온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일컬어 “민족성이 군자답고 무궁화가 아름답게 피는 나라”라고 예찬했을 정도로 예전에는 삼천리 방방곡곡에 무궁화가 많았다고 한다. 그와 같은 기록이 아니라도 사십여 년 전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무궁화 가로수를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웬만해선 보기 어렵다. 전국을 여행하며 자연스레 눈에 띠는 것이 가로수지만 이웃 일본의 나라꽃이라는 벚나무만 즐비할 뿐 우리의 나라꽃인 무궁화는 좀처럼 눈에 띠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궁화가 산야에 흔하게 자생하는 식물도 아니니 가로수나 공원의 식물들처럼 인위적으로 심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무궁화를 볼 수 있으랴.

태극기가 휘날리는 깃대 끝에는 무궁화의 꽃봉오리 모형이 장식되어 있다. 만약 외국인이 방문하여 나라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주위에 무궁화가 없다면 겨우 태극기 끝이나 가리키며 “저게 바로 나라꽃의 봉오리다”라고 말 할 수밖에 없지 않으랴. 전국 곳곳에 무궁화 공원을 조성하거나 무궁화 가로수 심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모양이다. 현재로선 애국가 후렴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구절이 무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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