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세월이 머무는 마을[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3. 2. 15. 09:23

박 철 한

온 누리에 두꺼운 눈 이불이 덮였다. 고추바람에 나풀거리던 푸새들도 모처럼 잠이 들었는지 들판은 숙숙하다. 골짜기 눈길을 굽이돌아 다다른 시골마을, 지붕위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곳에는 마치 어릴 적 할머니라도 계시는 듯 아늑하기만 하다.

마을입구의 널따란 논배미에는 솔잎머리를 위로 뻣뻣이 세운 큼지막한 눈사람이 수호신 마냥 버티고 서있다. 제법 나이가 들었는지 턱에 솔잎수염까지 난 눈사람이 부리부리한 솔방울 눈으로 뚫어지게 바라본다.

저만치 비탈진 눈길에는 아이들 대여섯이 미끄럼을 타느라 시끌벅적하다. 그윽한 시골마을에 웬 아이들일까? 다가가서 말을 건네자 방학을 맞아 할머니 집에 놀러 온 아이들이란다. 매서운 추위에 해뜩발긋하니 상기된 두 볼을 하고서도 신나게 대나무스키를 타는 어린 가객(佳客)들, 아무리 보아도 컴퓨터게임이나 하는 요즘 아이들 모습과는 다르다. 영락없는 예전의 눈 덮인 고향마을 모습으로 두 눈이 휘둥그렇게 될 만한 진풍경이다.

옛 추억을 만지작거리지 않을 수 없다. 대나무를 쪼개 마디를 다듬고 끝을 불에 구워 오늘날의 스키모양으로 구부려 만든 것이 대나무스키다. 표면이 매끄러운 대나무인지라 마디만 다듬으면 눈길에서 아주 잘 미끄러진다. 눈이 쌓인 날이면 비탈길을 밟아 눈을 다지고 그 대나무스키를 신나게 타고 놀던 어린 시절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당장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고샅을 따라 출장하려던 집으로 들어서니 수더분한 인상의 지긋한 아낙네가 숫저운 표정으로 반긴다. 외양간에는 새끼를 일곱 마리나 낳았다는 우걱뿔이 담불소가 한가로이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외양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커다란 가마솥이 걸렸고 쇠죽바가지와 건더기를 긁어모으는 구부정한 나무 고무래까지도 눈에 띤다. 아궁이 곁에 수북이 쌓인 장작더미와 마당 한쪽에는 여물을 써는 작두가 자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그 소에게는 여태껏 쇠죽을 쑤어주는 모양이다. 오늘날에 또 어디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으랴.

구유에 주둥이를 쑤셔 넣은 우걱뿔이가 목에 달린 워낭을 딸랑인다. 목덜미에 멍에 굳은살이 선명하여 물으니 산 자드락의 밭뙈기는 아직도 저 소가 쟁기질을 한단다. 소의 나이를 의식하였는지 주인의 설명이 이어진다. 내다 팔고 다른 소를 키울 생각도 했으나 쟁기질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아 길들여진 저 소를 계속 키우고 있노라고.

실제로 소에게 쟁기질을 가르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앞으로 나아가기,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돌아하기, 멈추기 등을 뜻하는 명령어를 소가 알아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쟁기를 잡은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이 별도로 앞에서 이끌며 끈기 있게 훈련을 거듭해야한다. 소가 스스로 쟁기질을 하려면 멍에를 씌우는 목덜미에 굳은살이 박이고 애를 삭여 이골이 날 쯤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예전의 일소들은 매일 주인이 끓여주는 여물죽을 먹고 언제나 주인과 일터를 오가며 고락을 같이했다. 더구나 일소 하루에 사람이 이틀 품을 갚는 품앗이도 했었는데 그것은 소를 가족의 일원인 일꾼으로 여겼음을 말해준다. 오늘날, 새끼를 낳으면서도 이롭을 넘기지 못하는 암소들과 사릅이 되기 전에 생을 마쳐야하는 고기소들은 오직 인간의 식욕을 채우기 위해서만 길러진다. 그 우걱뿔이야 말로 사람과 한 가족으로 십여 년을 살고 있으니 이 세상 어느 소가 부러우랴. 우공의 평온함이 간잔지런한 두 눈에 배어난다.

여기저기 시선이 멈추는 곳마다 어린 날의 오붓한 고향정취가 한가득하다. 집터서리 자투리땅에는 마늘 싹들이 봄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눈 위로 쭈뼛쭈뼛하니 머리를 내밀었다. 마당에는 지난봄에 암탉이 직접 알을 품어 깼다는 토종닭 네댓 마리가 노닐고 처마 밑을 가로지른 간짓대에 즐비하게 매달린 곶감들은 호랑이가 줄행랑을 칠만하다.

한참 만에 일을 마치고 집을 나오려니 불에 구운 고구마를 내미는데 접시를 든 두 팔에 정이 한 아름이다. 처음 아궁이를 보았을 때 “고구마를 구워먹으면 참 좋겠다.”라는 손의 말을 듣고 일부러 장작불에 고구마를 구운듯하다. 가슴 뭉클한 그 정성에 말도 잊지 못하고 껍질을 벗기는 둥 마는 둥 하여 입에 넣었다. 그 구수한 고향 맛을 어찌 잊으랴. 소를 한 가족처럼 여기며 여태껏 여물죽을 쑤어주는 정성과 손을 대하는 따사로움에서 엿보이는 것은 주인의 가없는 하늘마음이다.

고샅을 나오니 들어올 때 시끌벅적하던 비탈길은 잔자누룩하고 논배미의 눈사람만 동그마니 서있다. 그저 예전의 집과 생활용품만을 갖춘 민속마을과는 달리 고박한 생활상과 사람들의 웅숭깊은 정서에 옛 모습이 고스란하다. 세파에 휩쓸리기 쉬운 그 옛 정서를 여태껏 어찌 보듬었을까? 물처럼 흐른다는 세월이 마냥 머무는 마을인가 보다.

오늘날 곳곳에서 전통을 보전(保全)하며 느리게 사는 지역정서를 꾀하는 슬로시티를 표방하였다. 사람들이 물질문명의 풍요로운 삶을 좇으면서도 인간의 정서만큼은 예전의 모습이기를 바라는 까닭을 알듯하다. 마을을 나서려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갔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심정이다. 산모퉁이를 돌아설 즈음 마음속에는 두 손이 모인다.

“세월이여! 부디 이 마을에 오래오래 머무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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