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푸나무의 가르침[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3. 3. 22. 09:23

박 철 한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났다. 동장군이 아직도 자리를 뜨지 않고 우줅이지만 참다못한 봄기운은 그새 들녘을 비집고 들어와 파릇파릇 꾸미느라 애쓴다.

어린 시절 이맘때쯤의 추억을 되새겨 멀지 않은 자드락밭으로 냉이를 캐러 나섰다. 오늘날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냉이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으나 예전의 향수에 이끌린 발길이었다. 여기저기 냉이를 찾아다니다가 그런대로 캘만한 밭을 보고 바구니를 능준하게 채웠다. 저녁이 되자 새봄의 향기가 집안가득하고 냉이 국을 먹어보니 비닐하우스에서 가꾼 것과는 그 맛이 과연 다르다. 같은 냉이일진데 어쩌면 그토록 향이 진할 수 있으랴.

푸나무의 향을 통틀어 ‘피톤치드(phytoncide)'라 일컫는다. 러시아태생의 한 세균학자가 처음 발표한 그 용어는 희랍어로 ’식물의(phyton)‘라는 뜻과 ’죽이다(cide)‘라는 뜻을 가진 단어의 합성어다. 피톤치드를 구성하는 물질 중에는 향기와 무관한 성분도 있기는 하나 대부분이 향성분이다. 피톤치드는 푸나무마다 제각기 독특하여 사람에게 향기로운 성분에서부터 냄새가 고약한 성분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왜 푸나무의 향을 일컫는 말 속에 하필 ’죽이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일까? 그것은 푸나무가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는 병원균, 해충, 곰팡이 따위에 저항하여 그들의 번식과 생장을 억제하려고 내뿜는 방향성 물질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허브나 한약제로 이용되는 성분들은 모두 피톤치드로서 푸나무의 자람을 방해하는 미생물과 해충에게는 독이 된다. 삼림욕이라 하여 우거진 숲속에 들어가 신선한 공기로 숨을 쉬며 나무의 기운을 받으면,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이 활력을 찾는가 하면 앓던 병이 낫기도 한다. 이는 피톤치드가 인간의 병원균에도 저항성이 있음을 뒷받침한다.

농작물은 사람이 적당한 간격으로 심어 물과 비료를 주고, 주위의 잡초는 물론 농약으로 병해충까지 막아주며 가꾸는데 자생하는 푸나무보다 피톤치드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그 까닭은 물과 양분이 충분하니 땅속 깊이까지 뿌리를 뻗으려 하지 않고 병해충을 막아주는 피톤치드 또한 농작물 스스로 덜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농작물에 잡초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두면 잡초와의 경쟁에서 지고 만다. 한편 다량원소만 들어있는 화학비료 위주의 농사는 양분의 불균형과 유익한 토양미생물이 증식하지 못하여, 농작물에 병해충이 발생하므로 농약을 쓰지 않을 수 없으니 결정적으로 문제가 있다. 인간이 어렵게 농약을 만들어 뿌려도 병해충이 금방 그 농약에 견디는 힘을 갖추므로 계속 새로운 약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물생육 필수원소가 고루 들어있는 퇴비 위주의 농사는 유익한 토양미생물 영향으로 농작물이 병해충에 강하다. 따라서 오늘날은 퇴비로만 농사를 지으며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농업이 대세다. 즉 화학비료가 퇴비를 따르지 못하며 농약으로 병해충을 이길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친환경농업이 탄생하였으니 인간이 자연에 백기투항을 한 것이다.

산이나 들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푸나무는 농작물과 다르다. 가뭄으로 물이 부족할 때를 대비하여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하고 햇빛을 잘 받으려면 주위의 다른 식물들 틈에서 부단히 애써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병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면 피톤치드를 많이 만들어 항상 주위에 발산해야 한다. 따라서 같은 종의 식물이어도 사람이 밭에 심어 가꾸는 것보다 산야에 자생하는 것의 향이 훨씬 더 진하다. 곧 산야의 푸나무를 밭에 옮겨 심거나 씨앗을 받아 심고 가꿔도 자생할 때와는 그 향이 다르다. 또한 수목(樹木)이 엄청난 소음에 시달리면 피톤치드 분비가 약화되거나 마비된다고 한다. 그것은 푸나무가 주위 환경에 따라 스스로의 기능을 조절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자연의 오묘한 이치가 참으로 경이로울 뿐이다.

우리나라 한 가정의 평균 자녀수가 1.0명에도 미치지 못한단다. 그토록 자식들이 귀해서 인지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 스스로 처리해야 할 일을 지나치게 나서서 해결해 주면서도, 정작 간섭해야 할 사항은 오히려 방치하는 경우가 흔하단다. 이처럼 자녀들을 과잉보호하면 험한 세상에서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는 인간의 도움 없이는 잡초에게 치이고 마는 농작물처럼, 자녀들이 연약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과 같으리라. 또한 고기와 가공식품 위주의 어린 자녀들 식습관을 방치하면, 마치 농작물에 퇴비는 주지 않고 물과 비료만 많이 주어 뿌리가 깊게 뻗지 못하도록 하는 이치와 같지 않으랴.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작물을 과잉보호했던 지난 50여년의 잘못을 이제야 깨닫고, 친환경농업이 자리를 잡아가는 까닭을 되새겨야 하리라. 그것이 곧 산과 들에서 스스로 자라는 푸나무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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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나무의 가르침

박 철 한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났다. 동장군이 아직도 자리를 뜨지 않고 우줅이지만 참다못한 봄기운은 그새 들녘을 비집고 들어와 파릇파릇 꾸미느라 애쓴다. 어린 시절 이맘때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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